벌써 23년이 됐다. 지난 1993년 ‘비디오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MBC ‘출발 비디오 여행’은 1994년 10월 23일 홍은철 아나운서와 배우 이일화의 진행으로 지금까지 쭉 일요일 낮을 책임지고 있다. MBC에서는 ‘피디수첩’에 이어 두 번째로 장수 프로그램이며, 시간대를 지킨 프로그램으로는 단연 첫 번째로 꼽힌다.
파일럿 프로그램이 생겼다가 한 달 만에 사라지는 요즘 시대에 한 시간대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만큼 내부적으로도, 대외적으로도 영화 전문 프로그램으로서 적수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모든 프로그램들이 바랄 장수의 비결은 어떤 것일까.
녹화가 진행되던 날 상암 MBC 방송센터 스튜디오를 찾아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오행운 CP와 MBC 서인, 양승은 아나운서, 방송인 김경식과 김생민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와 영화인을 대할 때 진정성 있게 가자는 것이 저희 프로그램의 모토다. 백화점식 나열은 지양한다. 많으면 10편의 영화도 소개할 순 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신작에 치중하지 않고 오래됐을지라도 의미 있는 영화도 재조명하고, 보다 깊이 있는 기획을 다루려는 것이 저희의 제작 방향이다. 요즘에는 시청자들과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페이스북 페이지도 운영 중이다.”(오 CP)
영화 정보 프로그램을 오래 진행하다 보면 영화를 보는 눈이 생겼을 법도 하다. 평소에도 영화를 좋아하지 않으면 오랜 기간 애정을 품고 진행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사회를 많이 간다. 최근에는 ‘아가씨’ 시사회도 보고 왔다. 기자분들 표정도 보고 왔다. 재밌으면 기자분들 표정이 좋다. 대박 날 것 같다고 예감했다. 또 뒷이야기를 취재할 때가 많다. 영화 끝나고 나서 코멘터리를 듣고 있으면 내가 놓쳤던 장면 많았다는 걸 느끼고, 다시 보면 색다른 재미가 있더라. 우리 프로그램이 깨알 같은 재미까지 알게 해 주는 좋은 프로그램이구나 싶다.”(양승은)
“개봉하기 전에 소개할 때 느낌 좋을 때가 있다. 최근에는 ‘곡성’이 그랬다. 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도 다가오는 게 있었다. 원래 영화를 좋아하긴 하는데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부터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게 되더라. 블로그 글도 읽고 감독들의 인터뷰도 챙겨보게 됐다.”(서인)
“아무래도 코너가 스릴러나 공포라서 신작이 잘 안 온다. 제 담당은 40대 이상의 아버지들이다. 극장을 잘 못 가는 아버지들을 위해 10분 동안 영화를 본 듯한 재미를 줄 수 있는 목적성을 갖고 방송한다.”
녹화 현장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점은 출연진들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프로그램에 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뒤엔 1회부터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제작진이 든든하게 지키고 있었다. 오랜 노하우는 출연진들에게도 든든한 믿음을 주고 동시에 자부심도 심어준 것. 김생민은 특히 ‘출발 비디오 여행’ 팀을 일컬어 합창단 같은 호흡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 제작진 팀이 1회부터 오늘까지 안 바뀌었다. 대한민국 방송에는 없다. 본사에서 그렇게 한 이유는 있다. 그래서 자부심이 있다. 특급 비밀의 노하우를 알고 있는데 통틀어 세련된 것 같다는 평가는 편집 덕이 크다.”(김생민)
“생민이형 같은 경우 목소리가 지문이다. 듣는 순간 이건 김생민이다. 스릴러 이야기를 해주겠다는 걸 첫마디에서 알겠다.”(서인)
“같이 현장에서 봤는데도 나중에 녹화본을 보면서 놀란다. 빠져든다. 출연진들과의 호흡 비결? 하는 도중에도 회의를 많이 하는 것이 비결이 아닐까. 서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니까. 항상 회의를 하면서 한다.”(양승은)
“경식이형은 영화 대 영화 콘셉트로 오락게임 광고를 할 정도다. 진짜 너무 웃겨서 깜짝 놀란다. 작가님들도 모이는 과정이 다르다. 그냥 방송작가가 아니다. 그런 노하우 쌓여서 쉽게 무너뜨릴 수 없는 거다.”(김생민)
국내 최초로 영화 전문 프로그램을 탄생시킨 ‘출발 비디오 여행’ 이후 2000년대 중반대부터 경쟁 프로그램도 생겨났다. 또한 시청자들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다양한 경로로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영화 정보 프로그램들이 고민할 것이 늘어났다.
그럼에도 ‘출발 비디오 여행’은 국내 방송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 정보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지난 5일 방송분은 일요일 전체 프로그램 시청률 중 8위에 올랐다는 것이 제작진의 설명. 시청자들의 여전한 애정과 관심을 실감케 하는 부분이다.
“요즘 IPTV 프로그램을 많이 모니터한다. 그 쪽이 앞서갈 수밖에 없는 게 우린 위클리인 반면 수시로 정보를 전달하더라. 그런 걸 원하는 시청자도 있다. 모든 걸 만족시키기 쉽지 않아 제작진도 고민 많다. 그럴수록 전문성을 지닌 우리만의 색깔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인들도 있고, 석 달 만에 한 번 보는 분도 있고, 매주 보는 분도 있다. 다양한 니즈를 충족시키기가 쉽지 않다.”(김경식) / besodam@osen.co.kr
[사진] 이동해 기자 eastsea@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