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김경식에게는 ‘사기꾼’이라는 별명이 있다. 이 웃지 못 할 별명은 바로 MBC ‘출발 비디오 여행’을 통해 붙여졌다. 그의 맛깔 나는 설명에 영화가 재밌을 줄 알고 봤더니 소개 영상만 못하다며 시청자들이 붙여준 애정 어린 별명이기도 하다. 본편보다 재밌는 예고편이라니 영화를 소개하는 재주를 타고났다.
김경식은 지난 2002년 5월 26일 ‘출발 비디오 여행’에 합류했다. 그때부터 맡고 있는 코너는 영화 대 영화다. 말 그대로 하나의 주제로 영화와 영화를 붙여 비교하며 소개하는 형식이다. 신작 영화가 대상이 될 수도 있지만 오래된 영화도 얼마든지 소개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김경식의 입으로 재탄생하는 영화는 사회 풍자를 적적히 곁들인 품격 있는 웃음을 자아낸다.
상암 MBC 방송센터의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녹화 현장에서 김경식을 만났다. 자신의 코너를 소개하는 장면을 녹화하고 나온 김경식은 스스로 별명 ‘사기꾼’을 언급하며 이야기를 이끌어나갔다. 영화에 대한 애정은 물론, 영화인에 대한 존중 그리고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드러냈다.
다음은 김경식과의 일문일답.
-‘사기꾼’이라는 별명은 어떻게 생각하나.
▲저도 속은 적이 있다.(웃음) 대본을 안 보고 영화 본 적이 있는데, 나중에 소개하고 난 다음에 ‘이 영화 정말 재밌었나’ 생각하게 되더라.
-이제 영화를 보면 잘될 것 같다는 느낌이 오나.
▲영화라는 자체가 이제는 개인의 취향이다. 뭐하나 재밌다고 우르르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장르만 보게 되더라. 워낙 많은 영화가 나오기도 한다. 다양한 영화를 보는 건 다양한 책을 보는 것만큼 좋다. 뭐든 편식은 안 좋지 않나. 다양한 취향을 조합해서 다양한 영화를 소개하는 것이 저희 프로그램이 계속 사랑받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멘트는 작가들이 전부 써주나.
▲거의 다 써주신다. 그래서 작가님들이 사실 위너다. 대단한 분들이다. 영화도 다 보고 글도 쓰신다. 저흰 사람들 귀에 익숙하게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것뿐이다. 그 우리 공을 다 받는 건 어폐가 있다.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우리 팀들이 한 거다. 1~2년 된 프로그램도 아니고 노하우가 있다. CP님도 녹화장에 오셔서 멘트 하나하나를 다 보신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되게 중요하다.
-어떤 멘트를 잡아줬나.
▲예를 들면 우리는 나무를 키운다면 프로듀서들은 숲을 보는 거다. 저번에 한 번 영화 ‘아가씨’(감독 박찬욱)를 소개할 때 너무 밝게 얘기한 경우가 있었다. 마지막 전달 단계에 있어서 톤 하나로 영화를 잘못 전달할 수 있지 않나. 이런 부분을 CP님이 섬세하게 잡아준다. 서로서로 시너지 효과가 나는 거다. 오래됐다고 잘나가는 게 아니라 현실에서 늘 자아성찰을 많이 하고 있다.
-오래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입장에서 자부심이 있을 텐데.
▲영화 전문 프로그램의 대명사가 됐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김생민 씨와 저를 비롯해 MC들은 솔직히 부담감이 있다. 오래될수록 더 그렇다. 이 명성이나 역사, 프로그램에 누가 되지 않게 잘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저 같은 경우는 틴틴파이브의 김경식, 또 어떤 타이틀이 이름 앞에 붙었는데 요즘은 ‘영화 대 영화’나 ‘출발 비디오 여행’의 김경식으로 알아주신다. 영화를 치면 제가 연관검색어에 나온다는 게 감사하다.
-요즘 시대엔 정보가 너무 많으니까 ‘출발 비디오 여행’이 좋은 영화를 선별해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시청률에 맞추다 보면 노멀하고, 전문가에 맞추다 보면 외톨이가 되어 버린다. 그런 차이를 극복하는 게 프로듀서들의 고민이다. 저는 그저 프로그램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양념역할일 뿐이다.
-일요일 오후 1시마다 방송하고 있다. 시청자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점심시간이 오고 있음을 깨닫는다.
▲시간 개념이 됐다. 그 시간 되면 ‘아 벌써 점심먹기 전이야?’라고 느끼신다더라. 예전에 전원일기가 그랬는데.(웃음) MBC 대표 프로그램이 된 것에 대해 오히려 제가 영광이다.
-‘신스틸러’ 코너를 통해 많은 조연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영화인분들이 저희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전 사실 미안한 부분도 있고 칭찬받을 부분도 있다. 재미없는 부분을 재밌게 만들거나, 평가가 좋았는데 비튼 경우도 있다. ‘출발 비디오 여행’의 생각은 그렇구나, 김경식의 생각은 이렇구나, 하고 공감해주셨으면 좋겠다. 이처럼 영화 한 편을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보여주는 게 장점이 아닐까. 영화를 다양하게 볼 수 있는 방법을 가이드해주는 프로라고 생각한다.
-영화 대 영화 코너는 풍자로도 주목을 받았다.
▲정치 풍자는 조심스럽다. 좋아하는 분들이 있는 반면 싫어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사회 풍자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다. 모든 판단은 시청자들이 하게끔 열어놓는 거지 절대 어떤 편을 들지 않는다. 영화에 대한 판단처럼 시청자들의 몫으로 남아있게끔 말이다.
방송 후 영화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거나 기대치를 낮춰주는 걸 볼 때면 책임감을 느낀다. 예전에 했던 영화도 재창조하고, 색다른 느낌으로 안 봤던 영화를 바라보고, 보조해줄 수 있다는 것 등 프로그램치고 순기능이 참 많다. / besodam@osen.co.kr
[사진] 이동해 기자 eastsea@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