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유진모의 취중한담]지난 10일 밤(이하 현지시각) 미국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인 ‘더 보이스’에 출연해 인기를 끈 가수 크리스티나 그리미(22)가 플로리다 주 올랜도 플라자 라이브 극장에서 콘서트를 마치고 사인회를 하던 중 괴한의 총에 맞았다. 그리미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숨졌다.
용의자는 현장에서 그리미의 오빠에게 붙잡혔으나 자살했다. 현지 경찰에 따르면 그는 범죄 전력이 없는 플로리다 세인트 피터스버그 출신의 27세 남성으로 그리미를 공격하기 위해 올랜도까지 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구체적인 범행 동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직선거리로 4㎞ 떨어진 한 게이 나이트클럽에서 12일 새벽 인질극과 함께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해 최소한 50명이 숨지고 53명 이상이 다쳤다. 2007년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32명 사망, 30명 부상)을 크게 웃도는 피해자 규모로서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이다.
용의자는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 오마르 마틴(29)으로 범행 직전 911에 전화를 걸어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IS에 대한 충성서약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비틀즈 멤버였던 존 레논은 1980년 12월 8일 밤 뉴욕 한복판 자신 소유의 다코타 빌딩 앞에서 마크 채프먼이 쏜 총에 맞고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숨졌다.
레논은 1962년부터 1970년까지 폴 매카트니와 함께 비틀즈의 히트곡을 거의 전부 작곡 작사하면서 팀을 이끈 실질적인 리더였으나 멤버 중 가장 괴팍한 성향을 보였으며 특히 오노 요코를 만나면서 멤버들과의 불화가 잦아지며 이른 해산의 원인을 제공했다.
해산 후 그는 요코와 전위적인 예술가적 기질을 보이는가 하면 1965년 비틀즈로서 멤버들과 함께 받은 대영 제국 훈장 5등급(MBE)을 받았는데 당시 대중음악가로서는 이례적인 이 서훈을 후에 영국의 베트남전 참전에 대한 비판의 의미로 반납하는 등 반전운동과 평화운동이란 진보적 행동에 적극적으로 앞장선 바 있다.
따라서 그의 피살은 CIA 개입설 등의 의혹을 낳기도 했으며 채프먼은 살인현장에서 도망가지도 않고 서성이며 횡설수설하는 등 석연찮은 언행을 보였다. 당시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는 J D 샐린저의 전 세계적으로 250만 부가 팔려나간 베스트셀러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있었다고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뉴욕 출신의 고교생 홀든 콜필드. 그는 순결(성적인 한계를 벗어나 모든 정신세계의)을 지키고자 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지만 현실 곳곳엔 타락과 타협과 외설과 경박과 천박 등으로 똘똘 뭉친 자본주의적 집단 이기주의와 전체주의만 존재할 뿐이라 방황한다. 마치 베트남전 참전 후유증에 시달리는 ‘지옥의 묵시록’(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빌, ‘택시 드라이버’(마틴 스코시즈)의 트래비스, ‘야곱의 사다리’(애드리언 라인)의 제이콥 같다.
그는 타락한 동부를 떠나 서부로 가려고 하지만 여동생 피비의 순결을 지켜주기 위해 남을 것을 결심한다. 하지만 책은 그가 캘리포니아의 정신병원에서 회고하는 형식으로 펼쳐진다. 결국 그는 자신의 꿈을 위해 서부로 갔으나 역시 그곳도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지옥이었고, 그를 기다리는 것은 억압과 강제적 교육이었다는 결론으로 읽힌다.
그는 기성세대의 허위를 용기라 주장하는 기만에 환멸을 느끼지만 돈의 가치관이 삶의 의미라 강하게 주장하는 천박함에 현기증을 느끼면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어 결국 좌절할 따름이다. 아마도 채프먼은 이런 그의 기성세대에 대한 강력한 거부감과 비판정신을 잘못 받아들여 존 레논의 정신세계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뉴욕 한가운데 거대한 건물을 소유한 겉모습만 보곤 그를 기성세대의 표상으로 오해했을 것이다. 아니면 진짜 ‘기관’의 사주를 받았든지.
참혹한 총기 사고는 유럽 전역에서 목격되지만 중동지역을 제외하곤 미국이 가장 심할 것이다. 미국이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총기에 관대한 이유는 북아메리카 대륙 개척과 정착 등의 역사와 관계가 깊다. 길지 않은 미국 역사에서 총은 생존의 필수품이자 자존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서부개척 시대가 아니다. 미국은 IS의 천인공노할 테러행위를 교묘하게 이용해 경제적 이득과 정치적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려 하고, 더불어 IS의 고대유적 파괴를 발판 삼아 지구의 문화와 정신적 맹주가 되려 하지만 정작 나라 안에선 전례의 총기 사고조차 어쩌지 못하고 있는 허망함을 보이고 있다.
현실적인 총기규제 법안 입법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드높지만 정치권은 각자의 이익을 헤아리느라 쉬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잔인한 살인사건과 ‘묻지 마’ 폭행사건이 연일 뉴스를 장식하는 우리나라가 그래도 그나마 낫다고 여길 법한 사례다.
각설하고, 레논이나 그리미의 사례에서 보듯 희한하게도 강력하고 일방적인 이념이 앞장서는 정치적 성향보다 개개인의 독특한 정신세계가 극단주의에 마취되기 쉽다. 물론 미국은 링컨 케네디 등 현직 대통령이 암살되는 엄청난 역사적 사고를 겪기도 했지만 현대에선 비교적 접근이 쉬운 연예인에 대한 테러와 총격이 눈에 띈다. 트럼프에게 총을 쏜 극단적 진보주의자는 아직까지 없다.
그리미는 레넌만큼의 슈퍼스타도 아니었다. 그녀를 살해한 용의자 혹은 그 행위는 절대 용서할 순 없지만 범행동기는 밝혀져야 한다. 만약 그 과정에서 정신적인 문제가 드러난다면 그리미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선 용의자와 더불어 사회와 정치권이 공동의 책임을 져야만 할 것이다.
유럽 북동부의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는 제정러시아와 소비에트연방(구 소련)의 지배를 받았지만 결국 독립한 각각의 국가다. 1985년 센겐협정 체결 이후 두 나라는 국경을 허물고 허물없이 왕래하며 한 국가처럼 지내고 있는데 그 소통방법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은 각자의 라트비아어와 에스토니아어가 있는데 라트비아 국민은 에스토니아어를, 에스토니아 국민은 라트비아어를 거의 모른다. 그래서 대부분 구 소련 시절 익힌 러시아어로 소통하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엉어를 많이 쓴다고 한다. 부족 혹은 민족은 조금 다를지 몰라도 미국처럼 매우 다양하고 판이하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유럽 변방의 작은 영토에 별로 부자는 아니지만 청정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배경이다.
만약 레논이 1973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해 뉴욕에 정착하지 않고 조국 영국에 머물렀다면 지금까지도 생존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미국, 그것도 미국에서 가장 번화한 뉴욕 한복판이라는 사실, 조국을 등졌다는 점 등이 아이러니하고도 공교롭게 느껴지는 사례다. 그가 고국을 등진 이유는 소득 수준에 따라 일괄적이 아닌 차등화된 방식으로 부과되는 세금 탓이었다. 영국은 엄청난 고소득자에겐 소득의 8~90퍼센트를 세금으로 매김으로써 서민을 지원해왔다.
우리나라는 재벌의 법인세는 낮춰주고 샐러리맨들의 세금은 더 떼어간다. 하루아침에 소매가가 2배 가까이 뛴 담배는 부자에게는 건강의 이유로 거의 안 피우는 암의 근원인 반면 속상한 서민들에겐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친구같은’(붙여 썼다) 존재다.
지난 12일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는 비틀즈의 오리지널 드러머 피트 베스트와 데뷔앨범 발표 직전 베스트가 해고된 자리에 앉은 행운아 링고 스타를 비교했다. 베스트는 한때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불행한 삶을 살았지만 공무원이 돼 매우 단란한 가정을 꾸려 굉장히 행복하게 살고 있다. 스타는 비틀즈가 된 게 행운이었지만 다른 멤버들의 눈치를 보며 굴욕적인 삶을 살았음을 회고했다. 교훈이 크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채프먼에 의해 오욕의 사례를 남기긴 했지만 현재에도 주는 교훈이 이번 총기사례를 통해 재차 입증됐다. 기성세대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패거리문화, 지나친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 남과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는 집단 이기주의, 그리고 아직도 고쳐지지 않고 사회 곳곳에 팽배한 계급문화와 등위 가리기 의식은 순수와 순진성을 추구하는, 아직 세속에 물들지 않은 젊은이들에겐 영원한 이방의 세계일 따름이다. 총기사고와 그 행위자는 나쁘지만 사회에 울리는 경종에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물론 호밀밭의 파수꾼이라고 해서 총을 매는 게 당연하단 얘기는 절대 아니다.
사족: 그리미 살해 용의자의 고향 세인트 피터스버그는 러시아에도 있다. 러시아 제2의 도시이자 북유럽과의 출입구로서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 바로 아래에 위치한 상트 페테르부르크(구 레닌그라드)다. 러시아와 미국의 이음동어, 세상만사 요지경이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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