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릴린 먼로는 말했다. “할리우드는 키스를 2천불에, 영혼을 2불에 산다”고. 그리고 이 한 줄의 경구(警句)는 영화 ‘본 투 비 블루’ 속 한 뮤지션의 구애 멘트로 인용됐다. 공교롭게도 이 말은 주워 섬긴 이의 인생과 그를 원했던 세상의 꼴을 압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주인공 쳇 베이커(에단 호크 분)의 연주는 비싼 값에 팔려 나가지만, 삶은 경멸의 대상이니 말이다.
이야기는 쳇 베이커가 ‘웨스트 코스트 스윙의 창시자’로 칭송받던 시절부터 그의 몰락과 재기의 순간들을 재즈 선율처럼 즉흥적으로 배열한다. 클럽 버드랜드에서의 첫 무대, 선글래스를 쓴 채 등장한 쳇 베이커는 황홀한 연주로 청중을 사로잡는다. 트럼펫을 입에서 뗀 뒤에 입술을 스윽 닦는 동작까지 완벽히 ‘재지(Jazzy)했다’.
허나 그의 영광은 섬광 같았다. 감히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눈부셨지만 이는 잠깐이었다. 쳇 베이커는 마약으로 육신과 영혼을 탕진했고, 채 완성되지 못한 그의 자전 영화 속 세상은 사그라드는 재즈의 인기 만큼 텅 비어 있었다.
감독은 제인(카르멘 에조고 분)이라는 허구의 인물을 통해 구제불능 쳇 베이커를 구제해 보고자 한다. 쳇이 제인을 향한 진정한 사랑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든, 그저 그의 헌신을 이용했을 뿐이든 영화 속에서 쳇은 제인 없이 일어서지 못한다. 쳇 베이커는 오로지 자신만을 상처입히면서 산다는 오만을 부리지만, 그의 모든 성취는 주변인을 상처 입혀 얻은 것들이었다. 환호와 박수 속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는 자신을 제외하고, 그는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본 투 비 블루’가 쳇 베이커를 향한 뜨거운 연서로 다가오는 까닭은 이 영화를 통해 그의 삶이 몹시도 아름답게 그려진 탓이다. 쳇 베이커의 실제 인생은 영화보다 훨씬 비참했지만, 감독은 에단 호크라는 명배우의 열연과 음악, 가짜 사랑으로 그 위를 채색한다.
그 덕에 재즈 그 자체였지만 온전한 인간으로는 존재할 수 없었던 쳇 베이커의 일대기는 치명적 장애를 이겨낸 뮤지션 영화로서의 의미를 획득했다. 손가락이 없는 피아니스트와도 같을 앞니 없는 금관악기 연주자의 고통스러운 극기(克己)는 자못 절절하기까지 하다. 음악가의 약점은 신체적 결함보다 감정 불구일 것이라는 믿음을 깬 타고난 기술은 놀랍기까지 하다.
‘본 투 비 블루’의 ‘블루’가 우울함이 아닌 청춘의 푸르름으로 바뀌었을 지라도 쳇 베이커 자체를 연민할 당위성은 쉬이 생기지 않는다. 일생을 매력적인 상품으로 살았던 그가 보고 듣는 이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음악 뿐이었다. 극 중 인물들은 쳇 베이커를 ‘게으른 천재’라 부르지만, 그는 게으른 적이 없었다. 사랑에 빠져 본 적 없는 뮤지션의 중독적 삶은 마치 블랙홀인양 주변인들을 빨아들여 또 다른 중독을 낳았고, 그 자리에는 공허함과 스타일만이 남았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본 투 비 블루’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