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회 분량의 사극. 2년 간의 드라마 공백. 걸출한 선후배 배우들의 총출동. ‘대박’의 주연 장근석 앞에는 이처럼 장벽 아닌 장벽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러나 데뷔 20년차 배우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불안 요소로 여겨졌던 것들을 연기력과 카리스마로 극복해내며 3개월의 방영 기간 동안 극의 중심을 훌륭히 이끌어냈다.
지난 14일 방송된 SBS ‘대박’ 마지막회까지도 장근석의 활약은 돋보였다. 천출 콤플렉스와 어렵게 얻은 왕위에 대한 불안감으로 끊임 없이 자신을 경계하는 친동생 영조(여진구 분)에게 몇 번이고 신뢰를 얻으려 하는 백대길의 가련한 눈빛은 장근석이라서 더 절절했다.
장근석은 그 동안 극 중 숙종(최민수 분)의 아들이지만 육삭둥이로 태어나 버려진 영수, 투전꾼 백만금(이문식 분)의 아들 개똥이, 그리고 어엿한 성인으로서 홀로 세상에 우뚝 선 백대길까지 1인 3역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다채로운 모습들을 연기해 왔다. 처음에는 ‘운빨’만 믿고 패기를 부리던 청년이 진정으로 백성을 위하는 지도자로 성장하는 광경은 보는 이들을 감동시키기 충분했다.
숙종과 백만금, 두 아버지를 대하는 모습도 판이하게 표현됐다. 백만금과는 부자 지간인 동시에 평생의 친구처럼 편했다. 유일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던 백만금을 향한 그의 애정은 몹시도 끈끈했다. 반면 숙종에게는 앞에 두고도 그리워 하는 시선을 보냈다. 자신의 존재를 알면서도 버리는 것을 묵과한 숙종을 원망할 만도 한데, 친아버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분노가 없었다.
숙적 이인좌(전광렬 분)과 맞붙을 적에는 불꽃이 튀었다. 이인좌를 그저 아버지를 죽인 원수로 여기던 그가 어느새 나라의 평안과 백성의 안녕을 위해 칼을 갈고 있었다. 백대길의 성장과 함께, 그가 이인좌를 처단하려는 목적 역시 사적 복수에서 대의를 향해 갔던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이 자연스러웠던 데는 사극의 황제 전광렬 앞에서도 묻히지 않는 장근석의 연기력이 한몫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볼 때면 나이대가 다른 두 호랑이가 마주하는 양 오싹했다.
친동생이자 왕이 된 영조와의 ‘브로맨스’는 단연 ‘대박’의 볼거리였다. 때로는 동무처럼, 때로는 형제처럼, 또 때로는 왕과 신하처럼 순간순간마다 달라지는 위치에도 시청자들이 혼란스럽지 않도록 중심을 잡았던 것은 두 사람의 호흡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뛰어난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 사이에서 장근석이 보여 준 연기의 완급 조절은 곧 드라마 ‘대박’의 힘이 됐다. 늘 배우 장근석의 다음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 장근석은 ‘대박’을 통해 또 한 번 이를 증명했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대박’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