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라고 생각해요. 말도 하고 걷기도 하고 우산도 씌워주고. 알죠? 나 천잰 거. 기능 많아요.”
세상에 이런 전봇대라면 완전 ‘땡큐’다. 전봇대 같은 남자가 되어주겠다는 말은 직접적으로 못했어도 이쯤 되면 벌써 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운빨로맨스’ 류준열이 황정음을 향한 로맨스의 불씨를 확 당겼다.
MBC 수목드라마 ‘운빨로맨스’(극본 최윤교, 연출 김경희)는 전혀 다른 두 남녀가 어떻게 서로에게 스며드는지 감정의 변화에 집중하고 있다. 부모님의 죽음과 동생의 사고로 미신을 맹신하게 된 여자 심보늬(황정음 분)와 어린 시절부터 천재로 자라 온 게임회사 CEO 제수호(류준열 분)는 어떻게 봐도 접점이 없는 인물들. 보늬가 개발한 게임 ‘이프’ 하나가 두 사람의 사이를 이어준 매개체가 됐다.
이처럼 처음은 게임이 매개체였다. 수호는 보늬의 게임을 통해 재기하려는 목적이 있었고, 보늬는 호랑이띠인 수호를 통해 자신의 액운을 풀고 동생을 살리려는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변화는 수호에게 먼저 찾아왔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주로 하는 수호에게 보늬는 그저 프로그램의 버그(오류)와도 같은 존재. 수호의 가치관에서는 전혀 해석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 보늬가 있는 것이다. 처음엔 호랑이띠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야 자신의 동생을 살릴 수 있다는 도사의 말을 그대로 믿고, 불길한 징조는 피해야 한다며 밤에 손톱도 안 깎고 빨간펜으로 이름도 쓰지 않는 보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신경 쓰인다며 곁을 맴돌았다. 까칠하면서 은근히 챙겨주는 ‘츤데레’와는 또 달랐다. 사실 이 정도면 정말 대놓고 챙겨주는 ‘착한 남자’에 해당했다. 성범죄자와 연루될 뻔한 현장에 경찰을 불렀고, 치한이 많다는 보늬의 말을 기억해 낯선 남자로 보이는 남자에게 덤볐고(물론 싸움은 못하지만), 실의에 빠져 비를 맞고 걸어가는 보늬에게 우산을 씌워줬다.
오로지 동생을 살리려는데 집중하고 있는 보늬의 눈에는 수호가 아직 잘 보이지 않는 상태이지만, 수호는 온몸으로 보늬가 좋다고 광고하고 있는 상태. 물론 이 역시 수호는 연기가 자연스러웠다며 자신하고 있지만, 여성 시청자들은 오히려 이 순수한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다.
대놓고 티를 내고, 늘 옆에서 지켜주려고 하는 이 남자를 누가 ‘츤데레’라고 할까. ‘착한 남자’로도 여심을 아는 류준열이 있어 수목의 밤이 설렌다. / besodam@osen.co.kr
[사진] '운빨로맨스'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