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화계 한 지인의 상가에 다녀왔다. 신예부터 중견, 그리고 원로까지 영화 감독들이 여럿 조문을 했다. 둘러 앉은 자리에서 어쩌다보니 홍상수 감독 얘기가 나왔고 누군가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어쩔려구 저러는 거지..처자식 생각은 안하나"
한국영화계의 거장이자 세계에서 인정 받는 홍상수 감독이 구설수에 휘말렸다. 영화인 상당수가 알면서도 쉬쉬했던 여배우 김민희와의 동거 사실이 21일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다. 홍 감독은 기혼이고 김민희는 미혼이니 불륜이다. 간통죄가 폐지됐다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 정서상 손가락질 받을 일이다.
정작 홍 감독과 김민희는 지난 1년 동안 둘의 열애 사실을 숨기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증권가 찌라시에서 '홍상수-김민희 동거'를 떠들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연인 관계를 지속했다. 어찌보면 떳떳한 불륜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불륜이 여지껏 보도되지 않은 건 홍 감독을 감싸는 주변 영화인들의 지극 정성이 통한 까닭이다. 칸과 베니스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가 사랑하는 한국 감독이 행여나 다칠까 부서질까 알면서 모른 척을 했고 입과 펜을 틀어막았다.
김민희가 주연을 맡은 박찬욱 감독의 흥행작 '아가씨'도 입소문 단속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오랜만에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명장의 수작이 출품됐는데 여주연 불륜설로 초칠 일이 없다는 것이 영화계와 언론 사이에서 공감대를 형성했다. '생활의 발견'(2002년)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004) '극장전'(2005) 등 숱한 연출작에서 영화감독의 별난 사랑을 그려온 홍 감독답게 본인 스스로 잘 정리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곁들여졌고.
하지만 홍 감독의 최근 처신은 주위의 기대와 달랐다. 자신의 신작에 김민희를 특별출연으로 캐스팅하더니 올해 칸국제영화제에 함께 다녀왔다. 홍 감독이 가족들과 어떤 식으로 정리를 했는지 몰라도 "해도 너무한다"는 볼멘 소리가 영화인 사이에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거꾸로 홍 감독이 어떤 식으로든 김민희와의 사랑을 굳히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홍 감독의 작품 속 주인공들 속내처럼 사랑은 죄가 아닐 것이며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릴지 모른다. 그래도 다른 나라에서 감독이 사랑에 빠진 날일지언정 스크린 속과 바깥 세상은 엄연히 다르다는 걸 조금은 인식해야되지 않을까 싶다./mcgwir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