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직업 앞에 ‘국민’이라는 수식을 달고 있는 기분은 어떨까.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 연기력을 지니고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사생활 면에 있어서도 청렴함을 유지해야 할 터다. 그런데 ‘국민 배우’로 59년을 살아 온 이가 있으니, 안성기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안성기의 연기 인생은 5살 때부터 시작됐다. 배우 김지미의 데뷔작이자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은막 위에 첫 등장한 그의 아역 시절은 ‘하녀’ 속 故김진규의 잔망스러운 아들 창식 역으로 대표된다. 그러나 꼬마 안성기의 모습을 그리 오래 볼 수는 없었다. 청소년기 이후 배우 활동을 잠시 접었던 탓이다.
고교 시절 베트남전이 발발했고, 안성기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로 진학한 후 ROTC에 지원할 만큼 참전에의 의지를 불태웠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며 그는 다시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야시’, ‘우요일’ 등의 작품으로 시동을 걸던 안성기는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을 통해 완벽히 충무로에 안착하게 됐다.
‘국민 배우’이기 이전에 ‘원조 다작 요정’이었던 안성기는 출연작의 수 만큼이나 다양한 배역에 몸을 실어 왔다. 이지적인 외모와 고상하고 우아한 말씨와는 달리 나쁜 남자의 치명적인 모습부터 집도 절도 없는 각설이, 세상 다시 없을 악역까지. 부드러운 카리스마 속 어딘가 사연 있어 보이는 얼굴은 ‘기쁜 우리 젊은날’를 통해 극에 달했다. 수 년 간 커피 광고의 내레이션을 담당했던 특유의 온화한 목소리는 많은 이들에게 성대모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는 영화계 대표 미담 제조기이자 ‘배우들의 배우’이며, ‘가족 바보’로 통한다. 그야말로 털어도 먼지 하나 나지 않는다. ‘국민 배우’라는 별명이 전혀 아깝지 않은 59년의 연기 인생, 그는 2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 ‘사냥’을 통해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안성기는 극 중 문기성 역을 맡아 익숙하면서도 미지의 공간인 산 속에서 단 하루 동안 벌어지는 추격전의 주축을 담당하는 인물로 변신했다.
오랜 시간 육체 노동과 산행으로 다져진 캐릭터다 보니 백발이 성성하면서도 날렵한 근육질 몸매를 선보여야 했다. 실제로 지난 23일 첫 공개된 ‘사냥’ 속에는 안성기의 근육이 심심찮게 목격됐다.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안성기는 “운동을 워낙 좋아한다”며 “하루에 30~40분씩 걷거나 뛰고 나머지 시간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힘들더라도 꼭 하고 넘어가는 편”이라고 밝혔다.
‘사냥’ 속 자신의 모습이 ‘레버넌트’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나 ‘가을의 전설’ 속 브래드 피트가 연상됐다는 말에는 눈에 한가득 주름을 접으며 기뻐하기도. 그러면서도 “더 노력하겠다”고 말하는 그는 비단 배우가 아니더라도 본받고 싶은 어른의 모습이었다. /bestsurplus@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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