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이 올 줄 알았는가. 적어도 이 노래가 발매되던 8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룹 SS301의 허영생이 MBC 예능프로그램 ‘듀엣가요제’를 통해 파격적인 선곡을 선보였다. 무려 라이벌 그룹이었던 동방신기의 ‘주문’이다. 우승보다 놀라운 것은 허영생의 이 과감한 선택이다.
허영생은 지난 24일 방송된 ‘듀엣가요제’에서 이정혁과 듀엣 팀을 결성, 바다, 나윤권, 송지은(시크릿), 임정희, 존박과 대결을 펼쳤다.
이날 허영생은 3년 만의 예능 출연에 대해 분량 확보가 시급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처럼 재치 있는 입담을 통해 상대적으로 무대에 대한 기대치를 떨어뜨려놓은 것이 전략적으로는 성공한 것일까. 분명한 건 허영생이 자신의 무대를 향해 “엔딩에 어울리는 무대일 것 같다”며 자신했던 것을 그냥 스쳐지나가는 말로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물론 첫 타자부터 굉장했다. 파워풀한 가창력의 바다가 이번에는 애절한 발라드를 선보였기 때문. 지금까지 첫 순서에서 가장 높은 점수인 438표를 얻는데 성공하면서 이어지는 팀들에게 부담감을 주게 됐다.
새롭게 도전장을 낸 존박 팀과 임정희 팀이 줄줄이 아쉽게 고배를 마시면서 지난주 우승팀인 나윤권과 김민상이 나섰다. 이들은 이번에도 역시 강력한 우승후보였다. 그룹 노을의 달달한 ‘청혼’을 선택하며 여심을 사로잡았고, 점수 역시 446표로 최종 우승에 무리 없을 고득점이었다.
마지막 순서에 허영생이 나섰다. 전주까지 예상하지 못하다 첫 소절을 부르는 순간 모두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동방신기의 ‘주문’이었기 때문.
허영생은 과거 SS501로 데뷔해 2000년대 중반 동방신기와 함께 최고의 아이돌로 활동했다. 두 팀은 라이벌로 불렸던 사이. 시간이 훌쩍 흐른 후 쿨하게 동방신기의 노래 ‘주문’을 경연 곡으로 선택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무엇보다 이번 방송으로 6년 만에 1위를 차지하게 된 것도 허영생에게는 의미 깊은 일일 터.
이처럼 ‘듀엣가요제’는 일반인 파트너의 꿈만 이뤄주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그룹이 아닌 솔로로서 가능성을 인정받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지금까지 시도해보지 못했던 무대를 통해 스펙트럼을 넓히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과거 라이벌의 노래로 우승을 차지하는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모두에게 경연보단 ‘꿈’을 상징하는 무대가 아닐까. / besodam@osen.co.kr
[사진] '듀엣가요제'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