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영애가 죽음으로 '닥터스'에서 아쉬운 하차를 했다. 이미 정해져 있던 수순이었지만, 매회 심금을 울리는 대사와 명연기로 46년차 연기 내공을 보여주던 김영애라 더욱 아쉬울 수밖에 없다.
김영애는 SBS 월화드라마 '닥터스'(극본 하명희, 연출 오충환)에서 유혜정(박신혜 분)의 친할머니 말순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혼자서 국밥 장사를 하고 있는 말순은 사고만 치는 문제아 혜정에게 사랑을 듬뿍 주는 정 많은 할머니.
산전수전 다 겪은 탓에 욕을 입에 달고 살 정도로 입이 거칠지만 속내만큼은 그 누구보다 다정하고 따뜻하다. 말순의 애정 어린 시선은 닫혀 있던 혜정의 마음을 여는 키가 됐고, 이후 혜정은 할머니가 원하는 의사가 되기 위해 담임인 홍지홍(김래원 분)에게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결국 혜정은 아이큐 156임을 입증하듯 첫 수학 시험에서 1등을 차지했고, 그 길로 할머니에게 달려가 이 기쁜 소식을 알렸다. 두 사람이 부둥켜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닥터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또한 막말을 하는 혜정의 뺨을 때리고 밤새 마음 아파하던 말순과 그런 할머니를 안고 잠이 드는 혜정의 모습은 뭉클한 감동까지 안겼다. 혜정과 말순, 그리고 반려견 상추까지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아가는 장면이야 말로 '닥터스'를 애청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라 여겨졌다.
김영애와 박신혜는 실제 할머니와 손녀지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탁월한 연기 호흡을 뽐냈다. 차진 대사 처리는 물론이거니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애정이 한껏 묻어났는데, 지난 3회에서 구치소에 있는 혜정에게 밥을 먹인 뒤 집으로 향하던 말순이 흘린 눈물은 시청자들의 코끝까지 찡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수술 소식과 함께 "할미가 내 막장 인생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살고 싶은지 너한테 보여주고 싶었다"며 "너도 살아. 할미가 너 구해줄라고 뭐든 다 하겠지만 너도 너 위해서 뭔갈 해야 돼"라고 전한 진심어린 조언은 '닥터스'를 통해 하명희 작가가 말하고 싶은 기획 의도와 맞닿아 있어 더욱 진한 여운을 남겼다.
비록 김영애는 말순의 죽음으로 인해 '닥터스'에서 이른 하차를 하게 됐지만, 3회를 빼곡히 채운 그의 연기 내공만큼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테다. 제작진 역시 김영애에게 "질곡의 삶을 산 여인네의 모습과 할머니의 따뜻함을 정감 있고 설득력 있게 표현해 주셔서 드라마에 큰 힘이 됐다"라고 고마움을 표했다. /parkj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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