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 따지는 게 없다. ‘닥터스’ 김래원의 훅 들어오는 ‘사이다 로맨스’가 ‘닥터스’의 흥미를 확 높였다. ‘따뜻한 말 한 마디’, ‘상류사회’에서 뻔한 이야기 속에 직설적이면서도 감각적인 대사로 변주를 꾀했던 하명희 작가의 신공이 다시 한 번 펼쳐졌다.
SBS 월화드라마 ‘닥터스’는 하 작가의 특기인 로맨스 드라마. 예상되는 전개를 선택하면서도, 가끔 툭툭 튀어나오는 예상 안 되는 장치로 시청자들을 쥐락펴락한다. 드라마가 다 뻔한 이야기라고 했을 때 그 많이 본 이야기를 식상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작가의 필력이다. 하 작가는 늘 쉬운 구성을 택하면서도 노련하게 안방극장의 뒤통수를 치는데 재주가 뛰어나다.
특히 남녀의 감정을 전하는데 있어서 예상보다 반 박자 빠르게 치고나가며 설렘을 극대화한다. 뻔해서 편안하게 보고 있다가 갑작스러운 전개에 심장이 요동치는 것, 하 작가의 로맨스가 3연속 안방극장에 성공하는 이야기다. 인생과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화법이 로맨스와 만났을 때 두근거림은 극대화된다.
그래서 우린 ‘따뜻한 말 한마디’가 흔한 불륜 이야기가 아니었고, ‘상류사회’가 뻔한 재벌과 신데렐라의 사랑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았다. ‘닥터스’도 마찬가지다. 의사들이 병원에서 사랑하는 이야기가 되는 의학 드라마를 택한 하 작가는 그 속에서도 변화와 안주의 적절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홍지홍(김래원 분)과 유혜정(박신혜 분)이 사제지간을 벗어나 선후배 관계가 된 후 사랑을 펼친다는 설정은 매력적이지 않지만, 그 속에서 사랑을 시작하는 과정이 하 작가답게 통통 튄다.
지난 28일 방송된 4회에서 지홍이 13년 만에 혜정을 만난 후 두 사람이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사랑을 시작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빠른 흐름을 보였다. 재회 첫 순간에 “결혼했니? 애인있어? 됐다 그럼”라는 단 세 마디로 지홍의 마음을 확인한 시청자들은 두 사람의 로맨스가 급진전될 것임을 예상하며 열광했다. 따뜻하면서도 장난기 있고, 냉철한 듯 보이나 짓궂은 구석이 있는 남자 지홍은 그렇게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아직 4회밖에 되지 않았는데 두 남녀의 사랑을 응원하게 만드는 것은 그만큼 배우들이 탄탄하게 극중 인물들의 감정선을 쌓아왔기 때문일 터. 화려하게 포장하지 않으면서도 쫀쫀한 로맨스를 만들고 그 곁에 뭉클한 인간애까지 다루는 하 작가의 놀라운 필력이 ‘닥터스’의 인기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되고 있다. / jmpyo@osen.co.kr
[사진] SBS 제공, '닥터스'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