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는 최고의 영화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최악이다.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명작과 망작 사이의 이른바 '괴작'들은 때로는 연구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영화는 취향의 예술일까 아니면 그 점수에 객관적 지표가 존재하는 것일까. 영화팬들이 주로 꼽는 한국영화 대표 괴작들을 살펴봤다.
-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
장선우 감독, 임은경·현성·김진표·명계남 등 출연.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와 시인 김정구의 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2'에서 영감을 얻은 SF판타지물. 희대의 괴작이라고 불린다. 당시 110여억원이라는 천문학적 제작비를 투입했지만 단 5억원 정도만 거둬들이는 처참한 흥행으로, 영화계를 휘청거리게 만들어 '성냥팔이 소녀의 재앙'이라는 오명어린 수식어를 얻게 됐다. TTL소녀의 신비주의도, 장선우 감독의 명성도 모두 깎아내린 영화. 하지만 당시로서는 당당히 할리우드에 비견되는 파격적인 도전을 행한 작품임은 부정할 수 없다.
- 지구를 지켜라(2003)
장준환 감독, 신하균·백윤식·황정민 등 출연. 이 영화를 '괴작'이란 카테고리에 넣는 것에 불만을 품는 관객들도 꽤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굉장히 취향을 타는 영화인 것 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외계인으로 인해 지구가 곧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믿는 병구는 외계인이라고 믿는 유제화학의 사장 강만식을 납치해 안드로메다 왕자와 만나게 해줄 것을 요구한다. 개기월식이 끝나기 전에 지구를 지키고자 하는 병구의 고군분투는 계속된다. 내용만 보면 황당무계한 SF물같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메시지로 가득찬 작품이다. 천진하면서도 다크한 독특한 개성으로 무장한 이 컬트극은 관객들에게는 외면을 받았지만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두고두고 회자된 비운의 명작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연극으로 만들어져 새로운 스테디셀러로 탄생할지 주목받고 있다.
- 다세포 소녀(2006)
이재용 감독, 김옥빈·박진우·이켠 등 출연. 인터넷을 통해 '다세포 폐인'이라는 열풍을 일으킨 온라인 만화의 실사화.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를 중심으로 안소니, 외눈박이, 반장소녀, 부회장, 도라지소녀, 테리&우스, 왕칼 언니, 두눈박이 등 이름만 들어도 범상치 않음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영화는 여러 에피소드들을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의 일대기에 맞춰 녹여냈다. 쾌락에 물든 무쓸모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만화보다 더 만화같은 스토리는 호응과 실망을 동시에 안겼다. 객관적인 평점은 낮지만,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는 것을 즐기는 관객이라면 한 번은 볼 만한 작품이다. 영화 '스캔들'의 이재용 감독이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시도에 도전했던 바다.
- 차우(2009)
신정원 감독, 엄태웅·정유미·장항선·윤제문·박혁권 등 출연.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우리나라 영화계의 장르적 지평을 조금은 넓히는 데 일조한 괴수물이다. 영화 '괴물'보다 더 재미있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한다(철저히 개인 취향에 근거). 스릴러와 코미디가 마구 뒤엉킨 이 영화는 비록 많은 관객의 선택을 받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시실리 2km' 등에서 펑키 호러라는 특이한 장르를 탄생시킨 신정원 감독의 마니아 층을 한층 두텁케 했다. 어드벤처 장르 안에 감독 특유의 스산함과 유머 코드가 있는 작품으로 한국 컬트 영화를 꼽을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 M(2007)
이명세 감독, 강동원·이연희·공효진 등 출연. 이토록 화려한 캐스팅 라인업을 자랑하는 이 작품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전혀 대중적이지 않았다. 총 관객수는 42만여명(영진위). 베스트셀러 작가가 결혼을 앞두고 문득 떠오른 첫사랑의 기억을 그린 미스터리멜로물. 충무로 대표 '스타일리스트'로 불리는 이명세 감독 특유의 미적 감각이 잘 살아난 작품이다. 이명세 감독의 영상은 언제봐도 감탄스럽다. 그러나 "그래서 내용이 뭔데?"란 수많은 감상평을 피할 수 없었으며 이 몽환적이고도 이미지 중심적인 영화는 많은 이들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장르에 목 마른 충무로 안에서 그 존재 자체에 의미를 둘 수는 있을 것이다. 강동원의 이색 필모그래피이기도 하다. / nyc@osen.co.kr
[사진] 각 영화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