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뮤직]'전설' 양수경이 컴백에 성공한다면..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6.07.12 07: 15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요즘 가요계의 화두는 ‘응답하라 1980~1990’이다. 신곡 못지않게 리메이크작이 범람한다는 사실은 이미 새삼스럽고 요즘 청소년들은 히트곡의 원곡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를 정도다 ‘붉은 노을’이 이문세가 아닌 빅뱅의 원곡으로, ‘너의 의미’가 산울림이 아닌 아이유가 처음 부른 곡으로 알 정도다.
MBC ‘무한도전’이 특집으로 마련한 ‘토토가’는 확실하게 1990년대를 소환했다. 지누션과 터보가 재결합했고, 소문으로만 나돌던 젝스키스의 재결합이 현실화됐다. 아이돌그룹과 트로트로 양분됐던 가요계의 대세그룹 사이로 중년의 발라드 가수들이 야금야금 영역을 파고들던 틈새시장을 80-90 가수들이 확실하게 트로이카 체제로 재편하고 나섰다.
그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MBC ‘나는 가수다’ ‘복면가왕’ KBS2 ‘불후의 명곡’ SBS ‘판타스틱 헤어진 듀오’ 등 이른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여기에 1999년 9집 앨범을 끝으로 연예계를 떠났던 양수경이 사실상 20년 만에 출연한 KBS2 ‘불후의 명곡’으로 제대로 아날로그 정서를 소환하는 데 결정타를 날렸다.

말이 컴백이지 사실상 그녀의 활동속개는 또 다른 데뷔에 가깝다. 그녀는 20년 전부터 사실상 일체의 대중매체 노출을 피했다. 방송출연은 물론이고 연예인으로서의 대중과의 접촉을 완전히 끊은 채 ‘민간인’으로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녀와의 해후는 40대 이상의 대중에겐 오랫동안 헤어진 옛 연인과의 재회 같지만 30대 이하에겐 생소한 첫 만남이다. 컴백인 듯 데뷔 같은 이유다.
‘불후의 명곡’ 카메라 감독이 잡아낸 객석의 표정에선 그 어느 때보다 반가움과 놀람 그리고 감동이 추억이란 공통분모의 튼튼한 받침 위에 자리한 분위기가 진하게 풍겼다. ‘전설 양수경’의 히트곡을 열창하는 후배가수들의 뛰어난 기량에 의해 그녀가 얼마나 인기 높은 가수였고, 얼마나 훌륭한 히트곡을 보유한, 잊힌 가수였는지 새삼스레 입증됐다.
양수경과 각별한 인연이 있다며 울컥 눈물부터 쏟은 알리는 마치 이소라와 양희은을 섞은 듯한 음색과 창법으로 ‘외면’을 불렀다. 업비트의 재즈로 재해석한 그녀는 두성을 근거로 한 비성으로 노래를 부르더니 자유로운 두왑과 스캣 애드리브로 대선배의 수준 높은 음악성에 화답했다.
신예 걸그룹 더 러쉬는 ‘내일이 오면’을 마치 영화 ‘시카고’ 같은 분위기의 뮤지컬로 바꿨다. 적당한 R&B의 정서를 가미해 무척 버라이어티한 무대를 연출했다.
뮤지는 가수라기 보단 프로듀서로서의 음악성에 집중한 모습이었다. 그는 ‘이별의 끝은 어디인가요’를 선택해 의외로 오리지널리티에 충실하며 감성에 집중했다. 가장 양수경다운 이 노래는 양수경의 창법과 해석력 외엔 대안이 없다는 오마주였다.
노브레인의 ‘사랑은 차가운 유혹’ 선택은 그 누구도 예측이 가능한 결과였다. 퍼커션팀 라퍼커션을 특별게스트로 초청해 사이키록과 아프로록, 그리고 삼바까지 더해 마치 미국의 전설적인 아프로록그룹 오시비사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왜 록이, 그리고 밴드가 위대한지 이번에도 변함없이 입증했다.
양수경이 각별한 애정을 숨기려하지 않는 문명진은 ‘왜 문명진인지’ 만천하에 호통 치는 듯한 절정의 무대를 꾸몄다. 양수경의 히트곡 중 비교적 블루스 형식에 가장 가까운 ‘바라볼 수 없는 그대’를 선택한 그는 요즘 거의 안 쓰는 하몬드 오르간을 인트로에 도입한 뒤 기대했던 대로 재즈와 블루노트를 넘나드는 멜로디와 ‘인 더 그루브’로 듣는 이를 황홀경에 빠지게 했다.
대부분의 가수들은 악기와 편곡에 가창을 맞춘다면 그는 악기를 따라오게 만드는 보컬과 음악의 편곡 능력을 갖추고 노래를 부르는 독보적인 보컬리스트임이 맞다.
‘토토가’가 아이돌그룹 혹은 댄스뮤직의 원조를 소환했다면 양수경은 제대로 된 80-90의 아날로그 정서를 복구했다. 1990년대 중후반은 그 전에 윤상이 도입한 미디음악으로 인한 디지털음악 전성기의 포문을 연 시기다. 신시사이저 혹은 컴퓨터로 만들어낸 디지털 악기가 오리지널 인스트러먼트(생악기)를 밀어내고 편곡의 중심에 우뚝 서게 된 때였다. 현재 아이돌그룹의 콘서트에 세션맨이 없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따라서 ‘토토가’는 사실상 아이돌그룹의 뿌리 찾기고, 양수경의 컴백은 요즘 왜 박정현의 값어치가 인정받으며 이선희가 왜 위대한지 보여주는, 파퓰러화된 한국 가요의 전성기를 되살리자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양수경이 활동한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중반은 아날로그 정서상 최고의 황금기였다. 지금의 기획사의 기초가 된 초석이 지반에 깔렸으며 PD메이커, 즉 프로듀서 시스템이 시작됐다. 100만 장의 음반판매가 자리 잡았으며 대중가요 시장이 팝에서 가요로 완전히 넘어가는 데 가요관계자들이 혁혁한 공을 세웠다.
당시 가요계를 주름잡던 신승훈 김건모 등과 함께 양수경은 여자 발라드 계열에서 단연 독보적인 존재였으며 장덕 정수라 이선희 등 대형 여가수의 명맥을 잇는 적통의 선두주자로서 품격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춘 디바였다.
그동안 그녀 혹은 그녀 같은 가수들에 대해 대중이 얼마나 목말랐는지 증명하듯 ‘불후의 명곡’ 방송 직후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가 다시 화제가 되는 가운데 아직 발매도 되지 않은 신곡 ‘사랑 바보’가 엠넷 가요부문 차트 2위에 오르는 등 양수경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사랑 바보’는 변진섭 이승철 조관우 등에게 곡을 주고 음반을 프로듀싱하며 1980~90년대를 주름잡은 하광훈의 동생 하광석이 썼다. 그는  현재 형의 전성기 못지않은 맹활약을 펼치는, 몇 안 되는 아날로그 계통 프로듀서의 신흥 강자다. 그가 만든 히트곡은 조관우의 ‘영원’, 바비 킴의 ‘1년을 하루 같이’, 린의 ‘비밀’ 등으로 숫자를 떠나 그 무게감과 영속성이 꽤 듬직하다.
‘사랑 바보’는 재즈와 발라드의 기초뼈대 위에 가요적 정서를 풍부하게 접목한 고급스러운 라틴 발라드로서 하광석의 작곡과 편곡 기법이 돋보인다. 특히 인트로의 솔로 리프부터 듣는 이의 귀를 사로잡는, 이성열의 애절한 안달루시안 플라멩코 스타일의 토케(연주기법)가 돋보이는 어쿠스틱 기타 연주는 곡의 품격을 한층 살려준다.
뭐니 뭐니 해도 단연 빛나는 것은 현역에서 오래 떠났지만 한층 깊고 진해진 양수경의 가창력이다. 무려 17년의 공백이란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음정과 박자와 소화력은 매우 정확하고 하물며 창법은 진하게 무르익었다. 애절한 사랑의 감정을 더도 덜도 안 하고 오롯이 표현해내는 화법과 가창 스타일은 최근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인해 귀가 고급스럽게 변한 대중의 입맛에 모처럼 딱 들어맞는 정서로써 감동을 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현재 젝스키스를 대표하는 곡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댄스그룹 같지 않은 미디엄 템포의 러브 발라드 ‘커플’이다. 디지털은 세련되고 트렌디하지만 트래디셔널한 스테디 셀러의 영속성은 못 따라간다. 그래서 ‘불후의 명곡’과 ‘명예의 전당’이란 용어가 생긴 것이다. 양수경의 컴백은 그런 의미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오스카이엔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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