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관계 맺기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나고 자라는 과정에서 부모와의 관계부터 어려움을 겪는 이도 있을 것이고, 사회로 나올 때까지 무탈하게 타인과의 사이를 유지해 온 이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유치원 내지는 초등학교를 다니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관계 맺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는 대체로 몹시 까다로워서, 수많은 시행착오가 수반된다.
가장 이상적인 관계의 모습이란 소위 ‘갑’과 ‘을’ 없이 서로를 존중하는, 수평적인 것일 터다. 하지만 한 인간은 성숙해질 수 있을지 몰라도 두 사람 이상의 상호 작용이 필요한 관계까지 성숙하기는 힘든 법. 관계의 파국에는 언제나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기 마련이다. 영화 ‘우리들’에서는 난생 처음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에서 관계를 맺는 초등학생 여자아이들의 모습을 그린다.
이야기는 아이들이 피구 경기를 위해 편을 가르는 광경으로부터 출발한다. 각 팀의 대장 격인 아이들은 가위바위보를 해서 원하는 아이들을 자기 편으로 데려온다. 그 사이에서 선(최수인 분)의 눈은 빠르게 굴러가고, 얼굴에 떠 있던 옅은 미소는 사라진다. 선에게는 하늘만큼 거대할 이 관계에서, 그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요소였던 탓이다. 누구에게도 악의는 없었지만 누군가는 필연적으로 상처를 입게 됐다.
그러나 선은 친구 만들기에 최선을 다한다. ‘퀸카로 살아남는 법’의 레지나 조지 패거리를 연상시키는 보라(이서연 분) 무리와 친해지는 것은 선의 목표와도 같았다. 내내 자신을 탐탁치 않아 했던 보라지만, 선은 늘 쭈뼛쭈뼛 보라에게 말을 건네곤 했다. 어떤 모양이든 관계는 저절로 맺어진다지만, 이를 잘라내는 데는 의지가 필요하다. 선은 아직 관계를 끊는다는 것을 몰랐다.
선은 우연히 보라의 생일파티에 초대받는다. 그러나 애초에 선을 부를 생각이 없었던 보라는 잔인한 방식으로 선을 쳐낸다. 선물로 만든 팔찌를 쥔 채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며, 선은 순수한 궁금증으로 자문한다. “나한테 왜 그럴까?” 보라의 기막힌 배신에도 선은 울지 않는다. 대신 이 어찌할 바 모를 상황에 물음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따름이었다.
그런 선에게 구세주 같은 전학생 지아(설혜인 분)가 나타났다. 영국에서 살다 왔다는 지아는 선과 달리 집도 유복해 보인다. 학교에서는 늘 혼자고, 매일 술에 취한 아빠와 돈 벌기 바쁜 엄마 사이에서 쌓아둔 말이 한가득이었던 선은 지아와 꿀 같은 방학을 보냈다. 두 친구의 여름은 손 끝의 봉숭아물을 나누며 행복하게 흘렀다.
위기는 이내 닥쳤다. 부모의 이혼 후 할머니와 살던 지아는 선이 엄마와 사이좋은 한때를 보내는 모습에 이방인이 돼 버린 것 같은 쓸쓸함을 느낀다. 토라지는 것 말고는 마음을 표현할 수 없는 아이들은 또 한 번 관계의 어려움과 직면하게 된다. 거기에 보라와 지아가 한 학원에 다니게 되며 선과 지아의 사이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방학이 끝나고 갑자기 차가워진 지아를 보며 선의 얼굴에는 또 다시 물음표가 떴다.
보라를 사이에 둔 선과 지아 사이에 불이 붙었다. 험담부터 폭로전까지 가관이었다. 뚜렷한 이유가 없음을 알기에 상황은 더욱 답답하다. 한때 친구였던 둘은 함께 들였던 봉숭아물 위로 보라의 매니큐어를 바르며 첫 관계 끊기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선과 지아는 피해자가 됐다가, 또 가해자가 되기를 반복했다. 엄마와 선생님은 아이들의 어두워진 표정에 “말을 해야 알지”라고 채근하지만 말을 해도 알 리가 없다. 말을 하라고 해 놓곤 “또 나쁜 말 하지”라는 어른들은 이 관계의 적극적 방관자에 지나지 않는다. 선과 지아의 신경전은 하나의 반이라는 거대한 관계망 속에서 서로를 혼자로 만드는 파국으로 이어졌다.
실팔찌처럼 단단했던 두 소녀의 관계는 너무도 간단히 끊겼고, 아직도 선과 지아는 이 다음을 모른다. 딱지가 앉으려면 아직 멀었을 상처를 부여잡고 있던 선은 동생 윤(강민준 분)의 말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미성숙한 우리는 가끔 누군가를 때리고, 맞기도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관계의 수평이 맞춰질 수도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들’ 속의 아이들은 혼자 되기 싫어 버둥거렸지만, 어느 순간에는 붙들고 있던 관계의 끈을 놓을 줄 아는 용기도 보여줬다.
관계 자체에 회의를 느끼는 사람이 많다 하여 ‘관태기’라는 말까지 도는 요즘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 속 혼자라는 것은 견디기 힘든 상황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래서 적어도 회피형의 혼자 되기는 하지 않는 아이들의 고군분투는 대견했다. 동시에 이 이야기는 두 친구처럼 관계를 맺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 질곡의 세월을 버텨온 ‘우리들’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했다.
근육은 상처를 입을수록 더욱 강해진다. 감정의 근육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들’이 됐다가 홀로 남고 다시 ‘우리’로 변해 가는 선과 지아의 관계에도 분홍 새살이 돋고, 단단해진 근육이 또 다른 관계를 만들어 가는 동력이 되리라 믿는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우리들’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