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정너’라는 말이 있다. ‘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라는 뜻이다. 예컨대 날씬하다는 칭찬이 듣고 싶어 괜스레 주변인을 붙들고 “나 살찐 것 같아”라고 말하는 식의 행동을 ‘답정너’라고 부르는 것이다. ‘뷰티풀 마인드’ 속 장혁의 행동이 꼭 이렇다. 남의 행동을 세세한 것 하나까지 짚어 가며 늘어 놓은 후 매번 “이럴 땐 대체 어떤 감정인 거예요”라고 묻는 그다.
지난 19일 방송된 KBS 2TV ‘뷰티풀 마인드’에서는 처음으로 타인에게 감정을 이입한 이영오(장혁 분)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 이영오는 계진성(박소담 분)을 향한 두근거림까지 깨닫고 이를 고백해 안방극장 설렘 지수를 최대치로 끌어 올렸다.
이날 방송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대하는 어린 이영오의 모습으로 시작됐다. 여자아이는 수줍지만 달뜬 표정으로 이영오를 좋아하는 자신의 마음을 설명한다. 나도 모르게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고, 백 미터 달리기를 한 것처럼 숨이 차고, 심장이 쿵쾅거리고. 그러다가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고. 여자아이는 끝내 “좋아한다”는 고백을 꺼내 놓지만, 이영오는 감정 때문에 몸에 변화가 온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이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건 호르몬의 장난에 불과하다고, 그는 굳게 믿는다.
이처럼 어릴 적의 이영오는 진짜 답을 몰라서 엉뚱한 질문을 하다가 가끔은 뺨을 맞기도 했다. 그러나 다 자란 후의 그는 이영오 자신이 늘 주워 섬기는 “모르겠으면 외우라”는 말처럼, 살면서 마주쳐 온 타인의 감정들을 통째로 외워 버렸다. 환자의 행동을 보고 증상을 짐작하듯, 그는 여태껏 봤던 남들의 행동들을 종합해 귀신 같은 예측을 내놓곤 했다.
계진성을 만난 후 이영오는 외운 채로 두었던 생소한 감정들의 근원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갑작스런 포옹 후 자신을 서먹하게 대하는 계진성에게 “이럴 때 여자 사람은 대체 어떤 감정인 거예요? 난 도저히 모르겠어서”라며 “두 사람은 열 번 이상 만났어요. 여자 사람은 수갑을 채우기도 하고 물에 몸을 던지기도 했어요. 여자 사람은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남자 사람을 못 본 척 도망가요. 눈이 나쁘거나 안면 인식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닌데 대체 왜 그럴까요?”라고 묻는다.
계진성에게 그런 그는 ‘답정너’일 수밖에 없다. 당사자 앞에서 그가 했던 행동을 하나하나 꼬집는 것도 모자라 왜 그런 거냐고 묻는다면, 대체 뭐라고 답을 해야 할까. 이영오가 감정 파악에 서툴어 그런 것이라 생각하려 해도, 가끔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진짜 ‘답정너’든 아니든, 계진성이라는 평범한 인간을 가장 솔직하게 해 주는 인물이 이영오라는 점은 확실하다.
입은 거짓말을 해도 몸은 거짓말을 못 한다더니, 소주병 뚜껑과 당첨되지 않은 복권을 계진성 모르게 숨긴 이영오가 결국 그 앞에서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기껏해야 3년을 넘기기 힘든 호르몬의 장난을 드디어 겪게 된 이영오가 자신을 찾아온 변화에 어떻게 반응할 지 주목된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뷰티풀 마인드’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