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산행’에서 눈에 띄는 점은 흔한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민폐 여성 캐릭터가 없다는 점이다. 그만큼 ‘부산행’이 많은 고민과 연구 속에서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많은 영화에서 민폐 캐릭터를 등장시켜서 위기를 유발하고 억지스러운 스릴과 감동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다. 관객은 바보가 아니기에 기승전결이 없이 무작정 들이미는 감정에는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부산행’이 잘 만든 영화라는 것은 그런 뻔한 민폐녀가 없다는 것이다. 영화 속 성경(정유미 분)과 수안(김수안 분)은 전혀 민폐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소비되지 않는다. ‘부산행’이 한국형 좀비 영화로서 갖춘 또 하나의 미덕이다.
성경은 석우(공유 분) 다음으로 임기응변에 뛰어난 사람이다. 아이를 가져서 몸은 무겁지만 주변의 상황을 살피고 최적의 대안을 만들어낸다. 좀비들이 보이는 것을 쫓는다는 것을 알아채고 창문에 물을 뿌려 신문지를 붙이는 모습은 보는 관객의 쾌감을 준다.
성경은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남편인 상화(마동석 분)의 도움은 받지만 절대 감정에 휩쓸려서 다른 사람을 위기에 처하게 한다거나 조마조마하게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신의 몸도 챙기기 힘든 상황에서도 기차에서 처음 본 아이인 수안을 항상 챙긴다. 임산부이기에 몸을 사리는 경우도 없었다.
수안도 마찬가지다. 수안은 이기적인 아빠 석우와 달리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마음이 있는 착한 소녀다. 그런 수안의 모습은 석우가 보기에는 답답하고 싫지만, 혼자만 살아남아서 의미가 없다는 메시지를 차곡차곡 쌓아간다. 흔히 보는 아역 캐릭터처럼 떼를 쓰거나 이상한 호기심을 발휘해서 위기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도 특별하다. 수안은 어른스럽긴 하지만 다른 영화에서 아역을 활용하는 방식처럼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워서 징그러운 모습도 전혀 없다. 그저 마음씨 착한 초등학생으로서 관객에게 큰 감동을 선사한다.
‘부산행’의 주인공은 부산행 열차를 탄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부산행’은 사람을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다. ‘부산행’이 단순히 여름 블록버스터로서 재미를 주는 영화에 머물지 않는 이유는 캐릭터와 상황에 대해서 철저히 계산하고 고민해서 살아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열심히 만든 ‘부산행’이 흥행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pps2014@osen.co.kr
[사진] '부산행'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