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유진모의 취중한담] 2009년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의 비극적인 삶을 담은 권비영의 소설 ‘덕혜옹주’가 출간돼 대한민국 국민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모르고 살았던, 적지 않은 기성세대가 잊고 싶었던 역사적 비극을 한 몸으로 떠안고 살다 간 비운의 한 여인의 잊힌 굴곡과 굴욕의 한평생이 100만 명 이상의 독자들을 울렸다. 그리고 7년 뒤 섬세한 감정 선을 표현하는 데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울 허진호 감독이 동명의 영화 ‘덕혜옹주’(롯데엔터테인먼트 배급)로 스크린에서 그녀를 부활시켰다. 왜 하필 덕혜인가? 왜 하필 지금인가?
영화는 1961년 어수선한 서울신문사 편집국에 들어선 중장년 기자 김장한(박해일)의 등 뒤를 좇으며 시작된다. 부장 자리에 앉은 장한은 일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즉시 짐을 싸 도쿄로 떠난다. 그곳에서 그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함께한 옛 전우 복동(정상훈)을 만나 덕혜를 찾고자 그녀의 발자취를 더듬어간다.
다시 시간은 1919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에 의해 황제의 자리를 아들 순종에게 물려주고 친일파 매국노들에 둘러싸여 고초를 겪던 고종은 소주방 나인 출신 귀인 양 씨(박주미)로부터 환갑인 1912년에 귀한 딸 덕혜를 얻은 뒤 그녀를 키우는 재미에 삶의 모든 낙을 얻던 차에 일본에 의해 독살당한다.
매국노 이완용의 오른팔인 한택수(윤제문)는 조선인의 일왕에 대한 충성을 유도하기 위한 선전에 수시로 덕혜를 이용하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덕혜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로서의 자존심을 지킨다. 하지만 악랄한 택수는 1925년 3월 양 씨의 안위를 볼모로 덕혜를 협박해 그녀의 일본유학을 강제로 진행하고 덕혜는 유모이자 유일한 친구였던 복순(라미란)과 함께 일본으로 떠나 이복오빠인 영친왕(박수영)과 그의 일본인 아내 나시모토 마사코(한국명 이방자)가 사는 도쿄의 집에서 머문다.
역사적 사실은 덕혜가 아직 10대 중후반이던 1926년 오빠 순종이 죽고, 1929년 양 귀인마저 세상을 떠났지만 영화는 양 씨의 죽음을 덕혜가 이미 성인으로 성장한 뒤로 조정한다. 덕혜는 수학을 마치고 성인으로 성장한 뒤 수시로 귀국하려 하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택수의 힘에 밀려 뜻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한 훤칠한 일본군 장교가 나타난다. 그는 생존의 고종이 부마로 점찍었던 독립운동가 집안의 자제 장한이었다.
덕혜는 변절한 장한이 무척 못마땅해 근처에도 가기 싫지만 알고 보니 그는 집안의 뜻을 이어받아 독립운동을 하며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덕혜와 동갑이지만 조카인 왕자 이우(고수), 대한제국 황실 근위대장 출신 김황진(안내상), 그리고 복동과 함께 덕혜 영친왕 왕비 등을 상하이로 망명시킴으로써 전 세계 열강들에게 한일합방이 강제였음을 알려 독립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게끔 만들려는 작전을 꾸민다.
그러나 이 작전은 우유부단한 영친왕 때문에 큰 위기에 봉착하고, 결국 집요하고 간계한 택수의 계략에 의해 작전에 참여한 거의 모든 사람이 죽거나 실종되며 덕혜는 일본에 의해 강제로 대마도 백작 소 다케유키(김재욱)와 결혼해 딸 정혜를 낳는다.
시간은 다시 1961년으로 되돌아온다. 장한은 수소문 끝에 다케유키의 집을 찾아내지만 다케유키는 그를 냉대하며 덕혜에 관한 질문을 원천봉쇄한다. 완력으로 다케유키를 제압하고 집안에 들어간 그는 다케유키가 재혼해 꾸린 새 가족들을 본 뒤 닥치는 대로 살림살이를 뒤지다가 다케유키와 심한 몸싸움을 한다. 한차례 폭풍이 지나고 마주한 두 사람. 다케유키는 “저는 그녀를 버리지 않았습니다”라며 덕혜의 소지품을 내놓곤 그녀가 조현병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음을 알려준다. 두 사람이 이혼한 후 정혜는 자살했다.
덕혜는 1945년 8월 15일 일왕의 패전 선언으로 그토록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당시 정권이 흔들릴 것을 우려한 이승만 정부가 해외의 왕족들의 입국을 금지시켜놓은 탓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렇게 원수의 나라의 허름한 정신병원에서 영혼이 시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장한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의 기자회견 때 ‘왜 아직도 해외에 체류 중인 왕족들의 입국불허 조치를 해제하지 않느냐’며 항의하고 이와 관련된 기사를 썼다가 요원들에게 붙잡혀 곤욕을 치른다.
덕혜는 1962년 1월 26일 장한의 부축을 받으며 드디어 꿈에 그리던 고국 땅을 밟는다. 그녀는 창덕궁으로 가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체취를 느낀다. 금세 돌아오리라 약속했던 14살 꽃 다운 소녀가 역사의 난도질에 세상 모든 풍파를 한 몸으로 다 떠안은 뒤 51살의 중년이 돼서야 비로소 돌아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확연하게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인 동시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별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비극이라 사실 영화의 내용은 새로울 것도, 크게 충격적인 사연도 없다. 하지만 소설이 100만 명 이상의 독자들을 울렸듯 영화의 비주얼과 대사와 메시지는 엄청나고 버라이어티하며 또 매우 무겁다.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봄날은 간다’(2001) 등의 전작을 통해 알려진 허진호 감독은 일상 속에서 사람들의 디테일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거나 끄집어내는 연출가였다. ‘덕혜옹주’에선 왜 허진호인지 미묘한 감정의 표출의 끝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의외로 긴박하고 긴장감을 주는 액션까지 만들어내는 이변을 연출한다.
그 숨은 액션의 복병은 바로 덕혜 영친왕 이방자 등을 상하이로 밀항시키려는 작전이 펼쳐지는 시퀀스다. 일본 유력인사들은 물론 특히 택수를 제거하려던 폭탄투척 작전에서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일본군의 총탄에 만신창이가 된 상하이 임시정부 요원이 죽어가면서 태극기를 꺼내들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칠 때 왜 지금 이 영화가 나왔는지 단 한 신으로 웅변한다.
그리고 일본군들에게 쫓기는 영친왕과 황진 등의 독립군 일행의 처절함, 또 다른 곳에서 일본군과 총격전을 벌이며 덕혜를 보호하는 장한의 활약상 등은 웬만한 전쟁첩보영화가 무색하리만치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생동감과 속도감을 자랑한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영화의 포인트는 허 감독이 드러내놓고 관객들을 울리는 가운데 단순한 감동의 선사나 애국심 고취가 아닌, 천근만근의 역사적 메시지를 웅변하고 삶의 페이소스(슬픔 연민, 파토스)에 대한 깊은 고찰을 말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영화의 구조는 덕혜라는 선과 택수라는 악의 큰 두 축이 기본뼈대다. 수사학의 주된 목표인 설득의 기능에 도달하는 방식들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연설 자체에 의해서 제공되는 설득의 수단에는 화자의 인품, 청중을 설득하는 감정적 소구, 그럴싸하게 예증되는 논거 자체의 세 가지가 있다”로 설명한 바 있다. 첫째는 에토스, 둘째는 파토스로서 정감적인데 셋째인 로고스는 이성적이다.
지금까지의 대다수의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전쟁터에 강제로 동원된 총알받이 혹은 군위안부 문제를 다뤘다면 ‘덕혜옹주’는 강제동원 노동자를 삽입했다. 일본에 끌려간 한인 노동자들의 불만이 거세지자 택수는 일본 정부의 사주를 받아 다이토중공업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충성을 유도하는 연설에 덕혜를 세운다. 절대 그럴 수 없다는 덕혜에게 택수가 위독한 양 귀인의 진단서와 입국 티켓을 내민 것. 여기까진 택수가 의도한 에토스이자 프로파간다(아지프로)다.
일본이 마련한 원고를 조심스레 읽어 내려가던 덕혜는 마른 기침소리에 그 목소리의 주인공인 한 소녀의 손가락이 잘린 손을 본 뒤 피폐한 동포들을 하나하나 훑어가는 시선 속에서 파토스를 깨닫는다. 그리고 그 파토스를 기초로 한 로고스가 발현돼 원고를 무시한 채 언젠가 돌아올 조국의 광복을 위해 용기를 잃지 말고 살아남자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온다”고 역설하는 덕혜에 의해 그전까지 에토스에 압도당해있던 노동자들의 파토스가 로고스와 화해한 뒤 ‘아리랑’ 합창이 울려 퍼진다.
일본 고위층에게 차인 택수는 덕혜의 뺨을 때리고 이를 본 복순이 택수의 머리끄덩이를 잡아챈다. 정신을 차리고 두 여자를 폭행하려던 택수를 장한이 “보는 눈이 많다”며 만류한다. 역시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의 혼란이다. 영화 중 가장 감동적인 장면으로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감각의 제국’에서 무기력해진 이시다가 패전 후 돌아온 일본군의 처절한 행렬 속에서 더욱 절망하고 좌절하며 방황하는 신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허 감독의 ‘신의 한 수’다.
허 감독의 의도와 손예진의 열연이 만난 덕혜의 천변만화하는 감정의 출렁임은 영화의 가장 중요하면서도 관객의 심정적 격랑을 가장 크게 만드는 시퀀스들이다. 택수의 비열한 계략과 무지막한 무력에 의해 번번이 자의식의 박탈감을 맛보던 덕혜의 아픔과 광기는 해방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입국이 거부된 최악의 상황에서 미친 듯이 웃어젖히던 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리고 초로의 나이에 접어들어서야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하던 덕혜가 입국장 문이 열리자 눈앞에 모여든 호호백발의 할머니가 된 궁녀들의 “애기 씨”란 통곡에 적응하지 못하다가 두 번째 줄에 서있던 복순을 발견한 뒤에야 비로소 놀라움과 귀국했다는 현실적응 그리고 서러움과 반가움을 기본으로 한 만감의 충돌 속에서 우러난 복잡하고 미묘한 표정으로 일그러지면서 울음을 터뜨리는 시퀀스는 ‘이제 손예진은 선수 중의 선수’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든다. 영악한 감독은 덕혜의 흔들리는 감정을 핸드헬드 카메라로 담는가 하면 장면전환을 블랙아웃으로 처리했다.
이런 손예진의 모든 디테일의 구성과 완성은 허 감독이 주도했지만 박해일과 라미란이 없었다면 결코 화룡점정이 될 순 없었다. 이 심각한 영화에서 라미란은 복동과의 대화 속에서 명불허전의 웃음제조 솜씨를 뽐내는가 하면 택수의 수하들에 의해 폭행당하고 강제로 끌려 나가는 격한 감정의 충돌 신에서 ‘이 여자가 예능의 대세 맞나’라는 의아함마저 던져준다.
국내 남자배우 중 액션 멜로 코미디 드라마 스릴러 등 전 장르를 망라할 배우 중 박해일만큼 매력적인 이가 몇이나 될까? 관객들의 눈이 호강할 배우임에 틀림없다.
광복 후 덕혜는 입국이 거부돼 보안요원들에게 질질 끌려 나가지만 택수는 미군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유유히 입국한다. 이승만은 이름은 나오지만 얼굴은 안 나온다. 박정희란 이름이 거론되진 않지만 선글래스를 착용한 그는 누가 봐도 박정희다. 뭘 얘기하고자 하는지, 왜 지금인지 충분히 짐작이 가는 설정이다.
영화는 끝까지 관객의 마지막 남은 눈물 한 방울마저도 쥐어짜려는 듯하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즈음 스크린엔 마치 상형문자 같이 삐뚤빼뚤한 덕혜의 마지막 육필이 각인된다.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전하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이승만 정권이 버린 덕혜지만 덕혜는 끝까지 대한민국을 ‘우리나라’로서 사랑했다. 127분이 길지 않다. 12살 이상 관람 가. 8월 3일 개봉. /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덕혜옹주'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