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이야기가 스크린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덕혜옹주의 삶을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 '덕혜옹주'가 오는 8월 3일, 관객들을 만날 채비를 하고 있다. 개봉에 앞서 다양한 시사회를 통해 먼저 '덕혜옹주'를 만난 관객들은 영화가 주는 깊은 울림과 배우들의 열연에 찬사를 보내며 벌써부터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는 상황.
특히나 실화가 주는 그 묵직한 힘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몰입을 돕고 진한 여운을 남기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물론 영화는 권비영 작가의 동명소설과 실제 덕혜옹주의 삶에서 모티브를 얻었지만 영화적 상상력이 더해져 탄생한 팩션이다. 때문에 극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이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하기엔 무리. 그러나 일제에 의해 희생됐던 덕혜옹주의 비참한 삶, 그것 하나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관객들의 눈시울을 붉히고 있는 중이다.
실제로 덕혜옹주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그것도 고종의 늦둥이 딸로 탄생과 함께 어마어마한 사랑을 받았지만 일제강점기, 조선 왕족들을 가두려했던 일제의 횡포에 희생돼 비참한 삶을 살다 간 여인이다.
1912년, 고종의 후궁 양귀인에게서 태어난 덕혜는 고종의 하나 뿐인 고명딸로 고종의 엄청난 총애를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짧은 거리의 유치원까지 가마를 태워 보낸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나 1919년, 덕혜 나이 8살 되던 해 고종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면서 덕혜옹주의 삶은 그야말로 암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덕혜에게 일본식 교육을 시키고자 했던 일본은 덕혜의 일본 유학을 강요했고,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홀로 일본 유학길에 올라야 했다.
일본 유학 시절 덕혜가 보온병을 늘 품에 지니고 다녔다는 일화 역시 유명하다. 이는 덕혜가 고종의 독살설을 믿었다는 뜻으로, 자신 역시 적국인 일본에서 독살당할까 두려워 보온병을 늘 지니고 다녔다는 것이다.
어머니 양귀인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슬픔에 이어, 덕혜는 1931년 일본 대마도 백작 소 다케유키와 결혼식을 올리며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일제의 의한 정략결혼. 당시 조선일보는 신랑의 얼굴을 삭제한 결혼사진을 올리며 분노를 표했고 이는 영화에서도 확인가능하다.
딸 정혜까지 낳고 결혼생활을 이어간 덕혜였지만 힘든 일본 생활은 덕혜의 마음까지 잠식한 것으로 보인다. 결혼 이후 덕혜는 조현병에 걸렸고 결국 소 다케유키는 자신의 아내 덕혜를 정신병원으로 옮기며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이렇게 끝이 난다.
어린 나이에 홀로 일본 유학, 독살에 대한 두려움, 어머니의 죽음, 일본인 남자와의 정략 결혼 등 기구한 삶을 살아야 했던 덕혜는 1945년, 광복 이후 고국으로 돌아가고자 하나 이마저도 금지를 당하는 처지에 놓인다. 조선 왕실의 부활을 부담스러워한 이승만 정권이 왕족들의 입국을 금지시킨 것.
그렇게 일본에 또다시 남겨진 덕혜는 1962년, 51세의 나이로 결국 고국으로 돌아와 낙선재에서 생활하다가 숨을 거뒀다. 향년 78세. 그가 가끔 정신이 온전해질 때 낙선재에 남겼다는 낙서는 다음과 같다.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전하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 trio88@osen.co.kr
[사진] '덕혜옹주'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