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라효진 객원기자]동화 속 기사들은 평생 목숨을 바쳐 공주를 지키지만, 공주는 항상 왕자와 해피엔딩을 맞습니다. 그럼에도 공주를 향한 무한한 애정으로 일관하는 기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절절함만은 보는 이들의 콧날을 시큰하게 하기 충분합니다. 영화 ‘덕혜옹주’ 속 박해일이 맡은 독립운동가 김장한 역시 그렇습니다.
극 중 김장한(박해일 분)은 격동의 구한말 고종황제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막내딸 덕혜옹주(손예진 분)를 지켜 줄 정혼자로 낙점한 인물입니다. 김장한은 어린 나이에도 이를 거절하며 독립운동가의 아들이니 독립운동을 하고 싶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는데요. 하지만 김장한과 이덕혜는 유년 시절을 함께 보내며 마음을 나눕니다.
예상했던 것처럼 이덕혜는 친일파 한택수(윤제문 분)의 계략으로 일본 황족과 결혼하게 되는데요. 김장한은 조국의 독립과 덕혜옹주 지키기를 사명처럼 여기며 그렇게 증오하던 일본군이 됩니다. 적을 베기 위해 적진에 뛰어든 것이죠. 특히 덕혜를 향한 그의 마음은 무조건적 헌신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이처럼 영화 속에서는 시종일관 진지하고 비장했던 김장한을 연기했던 박해일이지만, 27일 열린 ‘덕혜옹주’의 기자간담회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순수함에서 나오는 귀여움을 마음껏 발산했습니다. 덕혜옹주 역을 맡은 손예진이 처음 완성된 영화를 보고 눈물을 쏟는 바람에 기자간담회가 지연되자, 박해일은 “늦게 들어온 것을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예진씨가 많이 우느라고…”라며 진중하게 말해 오히려 모두를 웃겼습니다.
‘덕혜옹주’의 김장한은 100% 허구의 인물인데요. 자료 하나 없이 시나리오에 의존해 연기를 해야 했던 박해일의 고생이 스크린을 타고 느껴졌습니다. 박해일은 “독립군 은신처에서 예진씨랑 감자도 먹고 하다가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여름 시장에 아주 시원한 액션 장면이 나옵니다”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습니다. ‘이 영화의 백미’와 ‘여름 시장에 아주 시원한’을 몹시 힘주어 말했기 때문이었죠.
그는 “‘괴물’ 때는 헛총질만 하다가 이번에 제대로 총을 배워서 쏴 본 것이 좋았습니다”라고 덧붙여 다시 한 번 회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습니다. 영화 ‘은교’에 이어 ‘덕혜옹주’에서도 노역 분장을 하게 된 것에 대해서는 “다리를 저는 연기를 했어야 했는데, 관절염이 계속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안경 쓴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두꺼운 돋보기를 꼈는데요. 제 연기를 커버할 수 있는 소품이 아닐까 싶어서 착용했는데 시력도 많이 떨어진 것 같습니다”라며 허진호 감독을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영화가 잘 돼야죠. 보험, 아니 보험이 아니고, 안과도 보내 주시고 그럴 텐데…”라고도 말했죠.
박해일이 생각하는 ‘덕혜옹주’의 관전 포인트도 궁금해졌습니다. 그는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으며 “첫 번째로 깊이 있는 드라마의 마스터라고 생각하는 허진호 감독이 돌아왔다. 두 번째는 허진호 감독과 손예진씨가 ‘외출’ 이후에 두 번째 작품으로 뭉쳤다. 거기에 저도 얹어서 참여했다. 농담이고요”라고 말끝을 흐렸습니다. ‘농담이고요’에 실린 수줍음이 그의 타고난 귀여움을 또 한 번 입증했습니다. 박해일이 세 번째 관전 포인트로 꼽은 것은 언급했던 ‘여.름.시.장.에’ 관객들이 재밌게 볼 수 있다는 점이라네요. 그는 “더운 날씨지만 이열치열, 뜨거움의 포인트로 다가가고 싶습니다”라고 밝혀 재차 취재진의 웃음보를 자극했습니다.
이 영화의 주역이지만 최근 음주운전 논란으로 회장에는 참석하지 않은 윤제문의 이름이 허진호 감독의 입에서 돌발적으로 나왔습니다. 이때 박해일은 “윤제문 선배가 악의 축이었습니다. 연기는 최고셨던 것 같습니다. 윤제문 선배의 연기를 보러 오십시오”라고 짐짓 능청을 떨기도 했죠.
그가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통해 보여 줬던 도화지 같이 새하얀 순수함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도 제대로 빛을 발했습니다. 절절한 순애보에 어울리는 깨끗하고 맑은 외모 역시 극 중 김장한 캐릭터를 돋보이게 만들었습니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의 슬픈 기사 김장한으로 변신한 타고난 귀여움의 소유자 박해일은 오는 8월 3일 ‘덕혜옹주’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osenstar@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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