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덕혜옹주'는 '손예진의 영화'라는 인식이 강하게 드는 작품이다. 타이틀롤 덕혜 역을 맡은 이가 손예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면 관객들이 더 가깝게 느끼는 인물이 있다. 바로 박해일이 맡은 김장한이라는 인물이다. 김장한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덕혜옹주를 가까이에서 관찰한 인물로 박해일의 말에 따르면 관객들로 하여금 덕혜옹주를 바라보게 하는 '렌즈' 같은 역할을 한다. 오늘(3일) 개봉하는 '덕혜옹주' 박해일과의 인터뷰를 공개한다.
-독립투사인데 로맨틱한 느낌이다.
시나리오의 마지막 버전을 봣을 때 허진호 감독님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진호 감독님의 감성이 있더라. 한 사람이 살아오고 살아갈 감성들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고 본다. 전작에서의 얼마만큼 달라질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했다. 군인이더라도 (멜로적인 느낌이 있는)그 부분을 예상했다. 감성에 충실하면서 덕혜옹주의 삶을 조명하면서 저라는 캐릭터가 관객들로 하여금 덕혜를 바라보게 하는 렌즈 같은역할을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영화에서도 그렇다.
-극 중 멜로가 노골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사소한 장면들이 아름답더라. 예를 들어 노인이 된 덕혜가 김포공항에 도착해 입국장에 들어서기 전, 그의 옷새무매를 다듬어 주는 장한의 모습이라던가..
그게 허진호 감독님 만의 연출적 힘이다. 연기적으로 뭔가 많이 하는 게 아니다. 모자를 하나 내려주는 것 뿐이고 머리카락 살짝 만져주는 건데, 섬세한 작은 무언가의 행동이 그런 것들을 감정으로 연결시키는 게 대단한 것 같다. 예진 씨도 그 장면이 많이 기억에 남는다고 하더라. 둘이서 내용적으로 본 건 일본이라는 공간에 오랜 시간 있다가 김포공항에 덕혜옹주가 일본에서 갇혀있듯이 살다가 62년에 귀국하는 거다. 그 기분을 갖고 실제로 촬영을 하다 보니까 궁녀들이 대기하고 있고, 뒷모습이 있다. 걸어가는 뒷모습이 인상 깊었다. 깊게 남더라. 장한의 입장에서는 그토록 오랫동안 조국으로 데려오고 싶었던 큰 염원이 이뤄진 거다.
-남자주인공인 작품도 아니고, 실화 소재도 부담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이 작품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시대, 암울했던 시대에 대해 진지하게 한 번 접근해볼 수 있는 계기가 있으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가 허진호 감독님의 책을 받고 거기서 제안 받은 김장한이라는 역할이 나에게 여러 작품을 해오면서 겪은 경험을 토대로 재밌게 해볼 수 있는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물론 제목이 '덕혜왕자'는 아니다.(웃음) 예진 씨와도 첫 작업으로서 서로 만나는 계기의 작품이었고, 허진호 감독님도 마찬가지로 여러 이야기를 해서 제가 안 할 이유는 없었다.
-영화에 '덕혜옹주의 남자'라는 제목을 붙여도 어울릴 것 같더라.
일단 (내가 맡은 김장한은) 가장 영화적인 캐릭터다. 역사 자료에도 고종의 딸 덕혜옹주가 어릴 때 약혼으로 맺어주려고 했던 사람이다. 기록이 거기까지 밖에 없어서 사실적 자료를 온라인으로 (언론 및 전문가들이) 보여주시면 알아보고 싶긴 하다. 단순한 영화이긴 하나 김장한을 더 알고 싶을 분도 있을 것 같고, 현실적으로 얼마만큼 맞닿아 있을까 나도 궁금하다.
-손예진과 첫 호흡은 어땠나
예진 씨는 워낙 준비가 잘 돼 있었고, 본인의 감정 때문에 매번 눈이 충열된 상황이었다. 신이 많다보니 감정을 옆에서 안 깨트리려고 멀리 떨어져있거나 집중하고 있으면 헤드폰을 듣는다. 음악으로 동기를 받나보다, 무슨 음악을 듣는지 한 번도 못 물어봤다. 무섭게 집중하더라. 그런데도 그러다가 본인이 정리가 된다고 싶으면 굉장히 농담도 잘한다. 옆에서 농담을 하면 내가 웃어줘야 하고 풀어야 다음 감정에 들어가는 걸 안다. 가끔은 '아 이거 웃어야 하나?' 싶기도 했다. (웃음) 그만큼 유연하다. 나중엔 나도 헤드폰을 꼈다. 같이 옆에서 헤드폰을 끼고 감정을 준비했다.
-영화를 보다보면 손예진과 닮아 보이는 장면들이 눈에 띄더라.
내가 노력을 했다. 사실은 허진호 감독님과 예진 씨가 더 닮았다. 호상이다. 그런데 나는 뱀눈이다. 두분이 그러니까 나도 그렇게 돼야할 것 같은 그런 게 있었다.
-유독 여배우들과 '케미스트리'가 잘 맞는 것 같다. 비결이 뭔가?
나는 여배우 복이 진짜 많다. 이번에도 마찬가지고. 앞으로도 그러면 좋겠다. 연기적으로 부딪히는 부분은 토론하는 부분에서는 열띤 토론을 하지만 사소한 걸 가지고 굳이 싸우지 않는다. 예민한 배우의 그런 정서들을 조심해야하는 건 맞다.
-'은교' 때 다시는 노역 분장을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번에 또 했다.
중독이 있나보다. 나한테는 작품을 통해 굉장히 좋은 경험을 했고, 배우로서 무기를 장착한 느낌을 갖게 됐다. 나라는 사람은 한 명이다. 배우의 확장성을 볼 때는 얼굴을 특수분장을 통해 캐릭터나 나이대를 확장시킬 수 있다는 건 장점이라고 본다. 관객들이 볼 때 그럴싸하게 작품에 잘 녹아들게 보인다면 성공이다. 그게 두 번째였고 그렇기 때문에 느낌에서는 조금 더 편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당분간은 안할 생각이다. 앞으로 또 할 가능성? 모른다. 나이가 거꾸로 가는 건 쉽지 않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브래드 피트처럼 갑자기 오토바이를 타고 10대로 넘어갈 수 있는 게 가능하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eujenej@osen.co.kr
[사진] 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