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없는 맥락도 스스로 만들어 가는 배우라 할 수 있을 듯하다. ‘W’로 6년 만에 안방극장을 찾아 온 한효주 이야기다. 그간 TV 보다는 스크린에서 활약했던 탓에 드라마 팬들에게는 서먹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그가 다시 한 번 만난 인생 캐릭터는 이 같은 우려들을 간단히 지워냈다.
배우 한효주의 최대 장점은 수수하면서도 맑고 깨끗한 외모 만이 아니다. 믿고 볼 수 있는 작품 고르는 눈, 그리고 망가짐도 불사하지 않는 연기 열정이 먼저다. 어느새 베테랑 연기자가 된 한효주, 그가 만들어 온 인생 캐릭터들의 맥락을 짚어 봤다.
#1. SBS ‘찬란한 유산’
MBC ‘뉴논스톱5’으로 연기자 데뷔를 마친 한효주는 KBS 2TV ‘봄의 왈츠’, KBS 1TV ‘하늘만큼 땅만큼’ 등의 드라마를 통해 존재감을 키워 갔다. 그런 한효주가 시청자들의 뇌리에 제대로 각인된 작품은 ‘찬란한 유산’.
한효주는 ‘찬란한 유산’에서 들판에 핀 풀꽃 같은 매력을 뽐내며 이승기와의 완벽한 호흡을 보여줬다. 가끔은 푼수 같지만 항상 싹싹하고 긍정적인 극 중 고은성을 통해 한효주는 다양한 배역에 대한 가능성을 활짝 열었다.
#2. MBC ‘동이’
‘동이’는 배우 한효주의 연기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일 듯하다. 한효주는 이 드라마를 통해 지난 2010년 첫 번째 연기대상을 품에 안았다. 당시 ‘동이’는 최고 시청률 33.1%를 기록하며 국민적 사랑을 받았고, 한효주는 대상 뿐만 아니라 인기상까지 받으며 ‘동이’ 열풍을 입증한 바 있다.
드라마 속 한효주는 특유의 단아하고 선 고운 외모와 어울리는 한복 자태 뿐만 아니라 재치 있고 강단 있는 캐릭터를 제대로 소화해내며 사극도 어울리는 배우임을 증명했다. 그의 사극 도전은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속 중전으로도 이어졌고, 이 작품은 그의 첫 ‘천만 영화’가 되기도 했다.
#3. 영화 ‘쎄시봉’ 젊은 민자영
이 영화는 한국 음악계에 뚜렷한 족적을 그은 뮤지션들이 모여 음악을 듣던 음악감상실 쎄씨봉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그린다. 한효주는 당대 젊은 음악가들의 뮤즈 민자영의 젊은 시절을 연기하며 누군가의 아련한 첫사랑으로 변신했다.
한효주는 이 영화 속에서 1970년대를 고증한 의상과 어우러지며 새로운 고전미를 창조했다. 포크 음악이 자아내는 감성적 분위기와도 맞아 떨어졌던 ‘쎄씨봉’ 속 한효주의 모습은 그야말로 ‘쎄씨봉(아주 멋짐, 매우 훌륭함)’이었다.
#4. 영화 ‘뷰티 인사이드’ 홍이수
원톱 주연, 독특한 소재. 영화‘뷰티 인사이드’는 한효주에게 도전적 작품이었을 터다. 극 중 홍이수로 분한 한효주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시도때도 없이 모습을 바꾸는 우진과 힘겨운 사랑을 나눈다.
우진 역으로 등장한 배우만 해도 두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니 감정 몰입도 만만치 않았을 듯했지만, 우진이라는 존재 내면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가는 홍이수의 성장담은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기 충분했다. 이 영화는 한효주의 ‘뷰티 인사이드’와 ‘뷰티 아웃사이드’까지 모두 만나 볼 수 있는 작품으로 회자되고 있기도 하다.
#5. MBC ‘W’ 오연주
한효주가 6년 만의 드라마 컴백작으로 고른 작품은 바로 ‘W’다. ‘뷰티 인사이드’보다 한층 독특한 소재가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웹툰 속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여자라니, 현실적인 이야기를 선호하는 국내 드라마계에서는 흥행이 어려울 공산도 컸다.
그러나 한효주와 이종석의 케미는 놀라웠다. 단 4회 만에 마니아층을 만들어 낼 정도로 탄탄한 스토리는 물론, 대중적 인기까지 얻어 냈다. 한효주는 ‘찬란한 유산’ 이후로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작정한 푼수 연기를 통해 완벽히 망가지며 시청자들의 박수를 받고 있는 중. 남자 주인공의 뺨을 때리자마자 입을 맞추고, 돌연 바바리맨처럼 맨몸을 보여 주는 등 맥락 없는 설정들이 난무하지만, 이조차 맥락 있게 만드는 한효주의 열연은 과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또 한 번의 인생 캐릭터를 만난 한효주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각 영화·드라마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