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암기력에, 놀라운 소화력이다. ‘W’ 이종석이 극 중 엄청난 양의 대사들을 자연스럽게 전달하며 자신만의 ‘강철’을 만들어 내고 있다. 처음에는 드라마의 모든 설정을 대사로 설명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지만, 이종석의 강철은 이 같은 허점 마저도 맥락 있는 연기를 통해 캐릭터화했다.
지난 4일 방송된 MBC ‘W : 두 개의 세계’(이하 W) 에서는 만화를 찢고 나온 인기 웹툰 주인공 강철(이종석 분)이 자신을 창조한 오성무(김의성 분)와 조우하는 광경이 전파를 탔다.
강철과 오성무의 첫 만남은 아니었다. 앞서 강철은 호텔 옥상에서 괴한에게 칼을 맞고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현실 세계로 손을 뻗어 오성무를 붙잡고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오성무는 되레 강철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당시 강철은 오성무가 누구인지 조차 몰랐지만, 두 번째 만남은 많은 정보가 주어진 상태에서 이뤄졌다. 그리고 오성무를 향한 강철의 분노도 겉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날 오성무의 작업실을 찾아간 강철. 그는 자신에게 달려 드는 오성무를 제압해 자리에 앉힌 후 속내를 털어 놓는다.
“처음에 내가 무의식에 붙잡은 건 오연주씨가 아니었어. 당신이었지. 나한테 진짜 치명상을 입힌 건 그놈이 아니라 당신이었지. 당신 딸이 그 다음에 나타나 날 살려줬고. 아무도 모르더군요. 나를 찌른 범인이 두 명이라는 걸. 아무 증거도 없어서 입 다물고 있었지만 난 짐작하고 있었지. 맥락도 없이 나를 죽이고 싶어 안달난 그놈이 당신이라고. 그땐 당신이 어떤 존잰지도 몰랐지만. 여기서 나를 만들었나보지? 그 알량한 손가락을 놀려대면서. 여기서 나를 죽일 궁리도 했고. 돈, 명예, 성공 다 맛보고 나니까 이제 내가 필요 없어져서. 나를 만들고, 나를 괴롭히고, 내 인생을 롤러코스터 태워서 당신은 그걸로 성공하고 명예를 얻었지. 그래놓고 이제는 죽이겠다고 칼로 찌르고 약물을 주사하고 트럭으로 받고. 그리는 걸로도 모자라서 직접 칼을 쥐고 날 찔렀어. 살려달라고 하는데도 잔인하고 냉정하게. 여기서 기다리는 동안 당신에 대해 알아봤어. 얼마나 유명하신지 인터넷에 이름만 쳐도 정보가 차고 넘치던데.”
가히 폭발적인 양의 대사들을 쏟아 붓고는 숨을 돌리는가 했더니, 오성무의 과거까지 설명을 시작하는 강철이었다. 보기만 해도 숨이 가쁘고, 단순히 외워서 읊는 것만도 어려우리란 짐작이 가지만 이종석이 이를 해냈다. 심지어 그 와중에 강철 캐릭터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연기력까지 뽐낸다.
처음에는 오연주(한효주 분)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됐기 때문에 강철의 대사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1화가 끝나고 2화가 시작되자마자 강철의 발화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4화에서 10년 절친이자 개인 비서인 윤소희(정유진 분)가 오연주를 위기에 몰아 넣었을 때 전화로 이를 꾸짖는 장면은 압권이다. 강철을 연기한 이종석의 깨끗하고 또렷한 발음도 이에 한몫 했다.
‘W’를 통해 드라마 보는 눈을 또 한 번 입증받은 이종석이 이번에는 대사 잘 살리는 배우로 자리매김할 듯하다. 다소 긴가민가했던 문어체 말투도, 무지막지한 대사량도 묘기를 부리듯 찰떡 같이 소화해 낸다. 이제 이종석이 아닌 강철은 상상할 수 없다. 배우 입장에서는 조금 힘들겠지만, 강철이 아무렇지도 않게 단숨에 내뱉을 긴 대사가 점점 기다려진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W’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