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덕혜옹주'(허진호 감독)가 역주행을 해냈다. 초기 같은 날 개봉한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앞서 개봉한 '인천상륙작전' 등에 밀리는 듯 보였던 이 영화는 개봉 3일 만에 두 계단을 뛰어오르며 뜻밖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6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덕혜옹주'는 지난 5일 하루 28만 2,805명의 관객을 동원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누적관객수는 81만 8,662명이다. 이 같은 속도로 본다면 이날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것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덕혜옹주'는 개봉에 앞서 '부산행', '인천상륙작전', '터널'과 더불어 성수기 개봉하는 한국 영화 '빅4'로 관객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뿐 아니라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결과물을 궁금하게 했던 작품.
다른 세 영화와 비교했을 때 '덕혜옹주'는 한 인물의 삶을 그린 드라마 장르라는 점에서 강점과 약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덕혜옹주는 책과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대중에 낯설지 않은 인물이다. 그런 그의 삶은 매우 드라마틱한 것으로 알려져 영화화에 관심을 갖는 예비 관객들이 없지 않았다. 여자 주인공을 내세운 드라마 장르는 요즘 보기 드문 종류이기에 40~50대 여성 관객층을 극장으로 불러 모을 것이라는 예상을 낳기도 했다.
다만, 이 영화의 약점으로 지적됐던 부분은 '부산행', '터널' 같은 재난 영화나 '인천상륙작전' 같은 대규모 전쟁 영화 같은 스펙터클한 재미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또 실존 인물의 삶을 그렸지만 중간 중간 픽션이 있다는 점에서 예고편을 통해 먼저 영화를 본 일부 관객들로부터 '역사 왜곡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도 해 불안함을 줬다.
다행히 역사 왜곡의 부분은 영화를 보고 난 관객들이 먼저 오해를 풀면서 해결됐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덕혜옹주가 독립운동에 가담한 것으로 그려지는 것 아니냐', '조선 왕실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냐' 등의 의심을 샀던 내용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해명하며 작품의 균형 감각을 칭찬했다. 예고편에서 독립운동처럼 보였던 사건들은 왕족 망명 작전을 그린 것이며 이는 실제 일제강점기 시도됐던 일들로 알려졌다. 또 말기 조선 왕조에 대한 미화보다는 이들이 지녔던 약점과 인간적인 면 등을 모두 그려냈다는 호의적인 평을 얻었다.
더불어 관객들은 블록버스터들 사이에서 눈물을 쏙 빼는 정통 드라마의 색다른 등장에 한 표를 던졌다. 거기에는 '한국 멜로의 거장'이라 불리는 허진호 감독의 연출력이 한 몫했다. 허진호 감독은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등 한국 멜로 영화의 클래식을 완성한 감독으로 이번 '덕혜옹주'를 통해서는 영역을 확장시켜 조금 더 대중적인 감성에 도전했다.
역시 돋보이는 점은 이 영화가 한국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억지 눈물을 짜내지 않는다는 것. '8월의 크리스마스'를 통해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안겨준 바 있는 허진호 감독인 만큼, '덕혜옹주'에서도 절제된 감정과 섬세한 연출이 한몫했다는 평이다. 더불어 '인생 연기'를 보여준 손예진을 빼놓을 수 없다. 손예진은 이번 영화에서 마치 주인공 덕혜옹주에 빙의라도 된 듯 신들린 연기를 선보였는데, 그의 연기가 다소 잔잔할 수 있는 영화에 큰 깊이를 부여했다. 여러모로 영화의 장점들이 힘을 발휘하며 관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고 있는 모양새.
과연 '덕혜옹주'는 3일 만에 차지한 박스오피스 1위를 자리를 지켜낼 수 있을까? 입소문의 위력이 어느 정도까지 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ujenej@osen.co.kr
[사진] '덕혜옹주'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