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의 원작 소설도 있는 '덕혜옹주'를 영화화 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처음 허진호 감독이 덕혜옹주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한 다큐멘터리에서였다. 그는 이 다큐멘터리를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고 꼭 영화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준비기간만 7년이었다. 옹주라는 신분 외에는 이렇다할 사건이 없는 인물을 재조명할만한 가치는 없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소설 '덕혜옹주'를 보고 또 그밖의 사료들을 보여 연구를 할수록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다. 특히 허진호 감독을 사로잡았던 것은 덕혜옹주의 귀국일, 공항에서 그를 맞이하는 노상궁들의 모습이었다.
"공항 장면이 없었다면 영화를 만들 생각을 못 했을 거예요. '아기씨'라는 그 말이 와 닿았어요. 그 당시에는 오십 대 중반정도 되면 할머니라고 불리던 때죠. 그렇게 나이가 들어서 아무 것도 기억을 못하는데 사람들이 '아기씨'라고 하면서 반기는 그런 비극적인 부분을 보면서 치유가 되는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이걸 영화로 하려고 하는데 반대가 많았죠. 쉽지 않았어요."
시대극이라 예산도 많이 들어가야 했고, 흥행이 어렵다고 여겨지는 여자주인공 영화였다. 그렇지만 허진호 감독은 베스트셀러로 많은 대중의 감성을 사로잡은 원작 소설과 덕헤옹주가 살았던 삶의 비극성을 믿었다.
'빅4'라 불리며 여름 성수기 대작들과 경쟁을 벌이는 것도 부담은 부담이었다. 큰 예산이 들어가는 데다 실존 인물을 표현하다 보니 대중적으로 적절하게 잘 전달하는 것도 문제였다. 결국 이를 완성할 수 있게 한 것은 철저한 준비였던 듯했다. 허진호 감독과의 대화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덕혜옹주에 관한 거의 모든 자료를 다 섭렵했다는 점이다. 영화 속에는 분명 허구적 요소가 있지만, 그가 만든 허구에는 그럴만한 근거들이 있었다.
"되게 고민했죠. 다큐멘터리는 아니지만 연대기적으로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엔 알려진 게 없고, 있을 법하거나 개연성 있는 사건들을 가져가면 어떨까, 했지만 그것에 대해 선을 지키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예고편만 본 일부 관객은 덕혜옹주를 독립투사로 그린 게 아니냐고 느끼기도 하시던데, 어디서 그렇게 느끼셨는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는 그렇게 그려지지 않아요. 그 선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극화시키는 것, 그리고 개연성과 정당성을 어떻게 조절하면서 가져가느냐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영화 속 덕혜옹주의 어린 시절은 무척 행복하게 그려진다. 허진호 감독은 실제로도 어린시절 덕혜옹주가 당시 신문에 덕혜옹주의 의상이나 근황을 다룬 기사가 많아 요즘의 '아이돌'과 비슷한 위치를 차지했던 점이나 '쥐'라는 동요의 작사를 할 정도로 영특한 면을 가진 소녀였음을 알렸다. 실제 영화에 묘사되는 부분이다. 더불어 덕혜옹주의 삶을 그럴듯하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일본 로케이션은 불가피했고, 부족한 예산에도 스케줄을 조절해 가며 알뜰하게 영화를 찍었다.
"다케유키와 덕혜의 결혼 생활은 공간을 찾기가 힘들었어요. 일본 촬영을 하는데 촬영 일정이 짧게 잡혀있었어요. 그래도 꼭 적합한 집에서 찍어야겠다 생각했죠. 다케유키가 덕혜옹주를 그래도 사랑하지 않았을까, 하는 장면이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설이 많았어요. (다케유키가) 돈을 노리고 결혼했다는 것도 있었고, 다리를 절었다, 곱추였다는 설도 있었고. 당시 조선일보는 다케유키와 덕혜의 결혼식 사진에서 다케유키를 지워버리기도 했죠. 그만큼 당시 조선 민중에게는 덕혜옹주에 대한 사랑이 있었던 거죠. 사진을 지울 정도이니 얼마나 속상했겠어요?"
'덕혜옹주'는 220만 관객을 넘으며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이 영화는 손예진이 10억을 투자한 것으로도 유명했는데, 영화에 대한 주연 배우의 자신감과 애정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인터뷰 시점은 개봉 전. 허진호 감독은 영화에 대한 확신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배우와 스태프들의 자신감 넘치는 반응에 많은 힘을 얻은 듯했다.
"시사회 때 손예진 씨가 굉장히 자신이 있더라고요. 스태프와 배우들도 이 영화의 어떤 결과물에 대한 자신감이 많은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이 경쟁이 많은 시장에서 잘 이겨나야 할텐데.." /eujenej@osen.co.kr
[사진] 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