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보다 더 무서운 것은 '서울역'에 있었다. '돼지의 왕', '사이비'를 만든 연상호 감독의 색깔은 '부산행'보다 '서울역'에서 더욱 짙게 묻어났다. 쌍둥이인 듯 하지만, 두 영화가 보여주는 결말은 사뭇 다르다. 연상호 감독은 "'서울역'이 개봉하면서 '부산행'이라는 영화의 내적 의미가 달라진다"고 표현했다. '서울역' 속 비극적인 세계가 희망적인 '부산행'으로 이어진 것은 다행이다.
10일 오후 서울 중구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열린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애니메이션 '서울역'(연상호 감독)은 먼저 개봉한 실사 영화 '부산행'의 연작이자 프리퀄로 보다 강도 높은 사회 비판과 묘사가 돋보인 좀비 스릴러 수작이었다.
기본적으로 '서울역'이 그리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부산행'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 냉혹하고 디스토피아적이라 해도 무방했다. 무엇인가에 물려 피를 흘리며 절뚝절뚝 걷는 노숙자, 그리고 그를 돕기보다 눈살부터 찌푸리고 보는 시민들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시종일관 냉소적인 톤을 유지한다. 진짜 서울이, 서울 사람들이 이렇다면 살 수 있을까 싶지만, 한편으로는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차용한 것으로 보이는 것들도 많아 무거움을 느끼게 한다.
거리로 내몰려 성매매의 위협 앞에 내몰린 소녀, 모두가 피하고 배척하는 노숙자들의 삶은 무척이나 현실적이면서도 비참하게 그려졌다. '부산행'이 부산행 KTX에 탄 각계각층 사람들이 좀비들로부터 탈출하는 내용을 그렸다면, '서울역'은 좀비가 창궐한 서울역 인근에서 절대적 약자로 대변되는 노숙자와 거리의 청소년, 절대적 권력으로 군림하는 정부의 모습을 신랄하게 대비시키며 주제의식을 구체화했다.
영화 속 갑작스럽게 창궐한 좀비로부터 쫓기면서도 돌아갈 곳이 없는 노숙자들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정작 돕지 못한 채 엉뚱하게도 멀쩡한 사람들을 공격하는 정부의 모습은 비극적이었다. 특히 겁에 질린 노숙자들은 '부산행'에서 등장했던 무고한 노숙자의 모습과도 이어지며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생각하게 한다.
더빙을 맡은 배우들은 실사 영화 못지 않게 제몫을 해냈다. 거리로 내몰린 소녀 혜선 역을 맡은 심은경은 '부산행'에서 보여준 좀비 연기를 뛰어넘는 더빙 연기를 보여준다. 재난의 상황 속 딸을 찾기 위해 거리로 나선 아버지 석규 역을 맡은 류승룡은 소름끼치는 연기력으로 '명품 배우'의 가치를 보여주며 이준 역시 여자친구를 보호하는 남자친구 기웅 역으로 성우와 구분할 수 없는 능숙한 더빙 능력을 발휘했다.
연상호 감독은 두 작품을 통해 실사 감독으로서도 애니에이션 감독으로서도 능력을 입증했다.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를 극복한다면 스릴러로도 충분히 '부산행' 못지 않게 재밌는 '서울역'이 애니메이션으로서도 실사 영화 못지 않은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기대감을 준다. /eujenej@osen.co.kr
[사진] '서울역' 스틸 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