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상아로 완벽한 여성의 모습을 조각해 갈라테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름다운 이목구비와 부드러운 표정이 늘 그를 향했지만, 뽀얀 살결은 차디찼다. 매일 갈라테아의 완전무결함을 들여다 보던 피그말리온은 어느덧 자신의 피조물에게 사랑을 느끼게 됐다. 그 후 피그말리온은 갈라테아에게 숨을 불어 넣어 달라고 신에게 기도한다. 그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한 아프로디테는 갈라테아를 인간으로 만들어 주고, 둘은 부부가 된다. 그리스 신화 속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 이야기다.
지난 10일 방송된 MBC ‘W’에서는 웹툰 ‘W’와 강철(이종석 분) 캐릭터의 원안을 만든 것이 오연주(한효주 분)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림 솜씨가 좋았던 중학생 오연주는 공책에 자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남자를 그리고, ‘설정값’을 적었다. 오연주는 그가 아버지 오성무(김의성 분)의 웹툰 속에서 생동하는 것을 보며 자랐다. 이제는 그토록 오래 마음에 품어 온 강철과 입을 맞춰도 종이 맛이 나지 않는다. 오연주는 피그말리온, 강철은 갈라테아였다.
누군가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완벽한 남성상을 연기하기에 이종석은 모자람이 없었다. 185cm의 키, 말랐는데 은근 근육질인 데다가 태평양처럼 넓은 어깨. 오연주가 쓴 설정 그대로다. 이렇다 보니 친절하고 유머까지 있는 성격,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 하는 천재, 역전의 명사수이라는 설정 마저 전부 그의 것으로 소화해냈다. 그야말로 ‘만찢남’이라는 수식이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 중 하나다.
조각상이 만화 주인공으로 바뀌었을 뿐, 강철이 누군가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은 여전하다. 본디 생명이 없는 설정값에 불과했다는 뜻이다. 때문에 강철을 연기하는 이종석 역시 대사 톤 조절에 신경을 많이 써야만 했다. 초반 그의 무미건조한 문어체 말투는 자칫 연기력 논란으로 번질 수도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웹툰 주인공이라는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톤이기도 했다. 엄청난 양의 대사를 숨 쉴 틈도 없이 내뱉는 알파고급 암기력은 보는 이들의 혀를 내두르게 하고, 촉촉한 눈으로 전하는 감정 연기는 일순 숨을 죽이게 한다.
이처럼 이종석은 곧 강철이고, 강철은 곧 이종석이었다. 배우의 외양이 캐릭터와 꼭 맞아 떨어지는 데다가, 설정을 정확하게 이해해서 표현하고 있다 보니 캐릭터의 매력까지 배가될 수밖에 없다. 강철은 외모만 훌륭한 것이 아니라, 성격도 흠 잡을 데가 없다. 엄청난 재력은 보너스다. 오연주가 만든 인물이다 보니 오연주 맞춤형이기는 하지만, 이날 방송에서 강철이 만들어 낸 달달한 장면들에 설레지 않은 여성들이 있을까.
피그말리온의 간절한 염원 속에서 탄생한 갈라테아처럼, 오연주의 바람을 통해 강철이 2D에서 3D로 바뀌었다. 강철은 인생의 키를 오연주라 말했지만, 이 차원을 넘나드는 사랑의 키는 강철이었다. 그리고 강철로 변신한 이종석의 완벽한 활약은 극 중 모든 것의 맥락을 연결하는 접착제 역할을 톡톡히 해 냈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W’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