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화려한 배우와 제작진들로 꽉 들어찬 2016년 하반기 드라마계에서 작은 풀꽃 같은 작품 하나가 시청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있다. JTBC '청춘시대'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2006년 '연애시대'를 많은 이들의 인생 드라마로 만든 박연선 작가가 오늘날 청춘들의 이야기를 미화 없이 담아냈다. 스타는 없지만 담백하게 '쿨하지 못한' 청춘을 그려내고 있는 배우들의 호연도 일품이다.
가난하지만 사랑을 모르지 않는 대학 졸업반 윤진명(한예리 분), 사랑 앞에 당당한 척 해도 '연애 호구'를 자처하는 정예은(한승연 분), 모든 것이 다 새로운 새내기 유은재(박혜수 분), 극 중 걸크러시를 담당하는 강이나(류화영 분)에 19금 입담을 자랑하는 모태 솔로 송지원(박은빈 분)까지 입체적이고 현실적인 캐릭터들이 '청춘시대'의 하숙집 벨에포크를 배경으로 생동한다. 그 가운데서도 '청춘시대'의 웃음을 책임지는 송지원은 특히나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극 중 ‘여자 신동엽’이라 불릴 만큼 과감하고 파격적 언변을 일삼는 송지원은 한 번도 연애를 해 본 적이 없다. 스물 두 살이니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송지원은 반드시 올해 안에 처녀 딱지를 떼겠다며 열의를 불태운다. 모든 면에서 성실한 데다가 얼굴도 어디 가서 빠진다는 소리 들은 적 없고, 유머까지 넘치는 송지원이 이상하게 남자들에게는 인기가 없다.
뜯어 보면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조금의 정적이나 어색함도 참지 못하는 성격이 분위기는 제대로 띄울 지 몰라도, 쉽게 이성적 긴장감을 일으키기는 힘들다. 게다가 가끔은 수위 조절에 실패하는 아재 개그와 섹드립은 호불호가 갈릴 법도 하다. 보고 또 보면 송지원의 진가를 알 수 있지만, 소개팅이나 미팅으로 단번에 호감을 느끼기는 어렵다. 또 때로는 귀신을 본다며 정색하는 엉뚱함까지.
그런 송지원을 보면 지난 2006년 방송된 SBS ‘연애시대’의 유지호(이하나 분)가 떠오른다. 같은 작가의 펜 끝에서 탄생한 캐릭터라서 그런지, 닮은 점이 많이 발견된다. 각각 극 중 22세와 23세로 20대 초반인 둘은 짧은 머리에 긴 팔다리를 휘적휘적 젓고 다니는 외양도 그렇고, 선머슴 같은 성격에 특이한 사상도 비슷하다.
송지원과 유지호를 보는 주변의 반응도 유사하다. ‘청춘시대’ 속 송지원의 하우스 메이트들은 그가 허무맹랑한 소리를 할 때마다 “또 저런다”며 혀를 끌끌 차고, ‘연애시대’의 공준표(공형진 분)는 유지호에게 “쟤는 미쳤다”고 말하곤 한다.
겉으로는 발랄하고 고민은 커녕 생각도 없이 살 것 처럼 보이는 둘이지만, 종종 상처와 우울함을 드러낸다는 점도 같다. 특히 송지원이 귀기(鬼氣)를 느낀다는 설정은 UFO나 귀신 같은 기이한 현상들을 절대적으로 믿는 유지호로부터 따온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토록 안팎으로 꼭 닮은 송지원과 유지호라는 인물은 이를 연기한 배우들에게 ‘인생 캐릭터’였다. 이하나는 ‘연애시대’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아역 출신으로 잘 알려져 있었지만 아직 ‘한 방’은 없었던 박은빈은 ‘청춘시대’로 지대한 관심을 얻었다. 일본 인기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의 주인공 역할에 이하나가 가장 많이 언급됐던 것처럼, 박은빈 역시 노다메 역할에 어울릴 것이라는 의견이 속출한다.
‘연애시대’의 유지호는 드라마 속에서 사랑을 찾았다. 누군가가 엄청나게 적극적으로 들이대지도, 불꽃이 튀지도 않았지만 편안하고 소소한 사랑이었다. 반면 ‘청춘시대’의 송지원은 아직이다. 그 역시 유지호처럼 종국에는 첫 사랑을 얻을 수 있을지 주목되는 이유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연애시대’, ‘청춘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