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렘’은 본디 일부다처제의 상징이었다. 그 옛날 오스만 제국의 지도자 술탄에게 간택된 수많은 미녀들은 이 하렘에서 평생 한 남자만을 바라보고 살았다. 이제 공식적으로는 사라졌지만, 하렘이라는 단어는 현대에 와서 비유적 표현으로 쓰이곤 한다. 영화나 드라마, 혹은 만화 속에서 다수의 여성 캐릭터가 한 명의 남자 주인공과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경우 이를 ‘하렘물’이라 일컫는다.
하렘물이 존재한다면 그 반대 역시 가능할 터다. 보통 순정 만화를 통해 적지 않게 접했을 이야기로, 한 여자와 각양각색의 매력을 지닌 남자 캐릭터 여럿이 관계를 맺을 때 ‘역하렘물’이라는 단어를 쓴다. 이를테면 인기 소설을 원작으로 한 KBS 2TV ‘성균관 스캔들’은 역하렘물의 대표적 예다.
최근 드라마계에 이 같은 역하렘물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먼저 tvN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를 꼽을 수 있는데, ‘통제 불능 꽃미남 재벌 형제들’과 한 명의 ‘신데렐라’라는 설정 만으로도 역하렘 구도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은하원(박소담 분)과 강지운(정일우 분), 강현민(안재현 분)을 잇는 메인 러브라인이 예고됐지만, 그 밖의 관계들도 주목해 볼 만하다.
그런가 하면 2016년 하반기 치열한 청춘 사극 대결을 예고했던 SBS ‘달의 연인 - 보보경심 : 려(이하 달의 연인)’와 KBS 2TV ‘구르미 그린 달빛’도 한 여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잘난 남자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각각 이지은(해수 역)과 김유정(홍라온 역)을 여주인공으로 내세운 두 작품에 예비 시청자들이 거는 기대는 날로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인기드라마 ‘보보경심’을 원작으로 하며 고려시대 황실을 배경으로 하는 ‘달의 연인’에는 주요 황자만 여섯 명이 등장한다. 이 가운데 해수와 미묘한 관계로 발전할 황자가 넷이다. 여기에 이성적 감정은 없지만 절친으로 등장하는 황자까지 그의 곁을 지키니, 해수는 여성 시청자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기 충분할 듯하다.
동명의 웹툰을 바탕으로 만든 ‘구르미 그린 달빛’은 상기한 ‘성균관 스캔들’과 유사한 구도다. 남장여자 홍라온이 내시로 위장하고 궁궐에 나타나고, 왕세자 이영(박보검 분)과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러브라인은 매우 분명하지만, 홍라온은 공기처럼 주변을 맴도는 궁궐 내 남성들과 내시들에게 필연적으로 둘러 싸이게 될 듯하다. ‘성균관 스캔들’의 김윤희(박민영 분)가 그랬듯, 이선준(박유천 분) 말고도 문재신(유아인 분)이나 구용하(송중기 분) 같은 관계가 ‘구르미 그린 달빛’ 속 홍라온 곁에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여주인공을 구심점으로 전개되는 다각도의 관계성은 이 같은 역하렘물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시청자들 앞에 첫 선을 보이는 세 드라마, ‘가장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수식은 과연 누구의 차지가 될지 지켜 볼 일이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달의 연인 - 보보경심 : 려’·‘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구르미 그린 달빛’ 공식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