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작품 안에서 오로지 극중 캐릭터로만 보일 수 있는 것 말이다. 자신의 모습을 지우고 극중 인물로 살아가며 몰입력을 높이는 연기자야 말로 '최고의 배우'라는 찬사를 들을 자격이 있다. 그래서 실감나는 악역 연기를 펼쳤던 배우들이 현실과 드라마 속 세상을 혼란케 할 만큼 분노를 일으키고, 실제로 지나가다 욕도 들었다는 후기를 털어놓곤 한다. 배우로서 죄가 있다면 현실을 혼동케 할 만큼의 뛰어난 연기력 탓이다.
현재 인기리에 방송중인 tvN 드라마 ‘굿와이프’에서는 배우 유지태가 바로 그런 배우다. 극중 그가 맡은 역할은 가정에서는 따뜻한 남자이지만, 스캔들과 부정부패 의혹이 끊이지 않는 나쁜 남자 이태준이다.
지난 12일 방송분에서 태준과 아내 혜경(전도연 분)의 부부갈등이 더욱 심화됐다. 혜경이 정신적으로 의지하던 김단(나나 분)마저 태준과 불륜 사이였다는 걸 알게 되면서다. 이에 따른 배신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 여기서 태준은 세간의 시선을 더욱 신경 쓰며 혜경에게 화해를 강요했다. 지금까지 순종적이었던 아내였던 혜경은 “꺼져”라며 태준에 대한 적대심을 한껏 드러내면서 이날 방송이 마무리됐다.
지금까지 유지태는 선한 외모에 자상하고 로맨틱한 이미지로 잘 알려져 있었다. 특히 아내 김효진과의 러브스토리는 모든 여성들의 로망으로 등극했던 바. 김효진의 말 한 마디에 뉴욕까지 달려와 고백했다던 일명 ‘뉴욕 프러포즈’가 화제가 됐고, 임신한 김효진을 대신해 영화 ‘무명인’(감독 김성수)의 홍보를 지원 사격하기도 했다. 게다가 “김효진이 있어야 완성되는 남자”라며 그야말로 아내 바보의 모습을 보여 결혼 후에도 변함없이 다정한 이상적인 남편상으로 떠올랐다.
이러한 면모로 연예계 대표 ‘사랑꾼 남편’으로 이름을 올렸던 유지태다. 그런 그가 ‘굿와이프’에서는 실제 모습과는 180도 다른 야망가 남편으로 돌변한 것. 실제 모습과 작품 속 캐릭터의 모습이 이처럼 큰 차이를 보일 때 시청자들은 어색해 하고 작품에 몰입하지 못하기도 하는데, 유지태는 달랐다.
그는 ‘굿와이프’ 속에서는 나쁜남자 이태준으로만 보였다. 극중 혜경이 선함에 서 있다면 태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을 어두운 이면을 상징한다. 분노를 자아내는 장면도 있었지만, 몇몇 시청자들은 태준이 나쁜남자라는 걸 알면서도 ‘태준과 같은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고 이해하기도 했다. 작품 속 태준이라는 인간은 그런 욕망을 품는 것을 거리낌 없이 생각한다는 것이 설정값이기 때문.
이처럼 자신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캐릭터가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표현하고 있는 유지태야 말로 진정한 배우다. / besodam@osen.co.kr
[사진] tvN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