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데이빗 메이어 감독)가 그랬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잭 스나이더 감독)에 엄청난 기대감을 가졌던 DC스튜디오의 팬들의 반응이 그 이상의 실망으로 변하자 ‘수어사이드 스쿼드’에 대한 희망이 더욱 커졌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마찬가지, 아니 더 참담했다.
그래도 하나는 남았다. 바로 할리 퀸(마고 로비)이다. 아직도 DC를 믿고 응원하는 마니아들은 할리 퀸을 별도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분리독립작품을 원하고 있으며 한편으론 조커(자레드 레토)의 비중이 지나치게 미미했다며 할리 퀸과의 더 깊고 풍부한 사연과 활약을 그려달라고 아우성이다. 결국 할리 퀸에 대한 지지와 관심은 마고 로비라는 배우의 매력과 더불어 조커라는 악당이 만들어내는 가장 독특한 정체불명의 캐릭터가 바탕이 됐기 때문일 것이다.
DC코믹스가 창조했지만 결국 히스 레저라는 걸출한 배우에 의해 예측이 불가능한 광적 인격체 형성의 방점을 찍은 조커는 그래서 요절한 레저를 아직도 수많은 마니아들이 잊지 못하게 만드는 가운데 조커를 연기한 배우로 이전에 잭 니컬슨이 있었고, 이후에 레토가 있지만 그 누구도 레저를 뛰어넘을 순 없다는 평가를 ‘감히’ 단언하고 있는 것이다.
레저의 유작이 된 ‘다크 나이트’에 대해선 해석이 분분하긴 하지만 걸작이라는 데 대해선 이견의 여지가 없다. 다만 이 영화의 주인공이 제목대로 흑기사인 배트맨(크리스천 베일)이냐, 궁극의 악당이면서도 인간미가 느껴지는 조커냐, 그것도 아니면 백기사인 ‘투 페이스’ 하비 덴트(아론 에크하트)냐에 대한 체감온도가 각자 다른 것.
히어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고찰을 척추로 세운 영화는 많았지만 영화 좀 볼 줄 안다는 마니아들은 단연 ‘다크 나이트’와 ‘왓치맨’을 손꼽길 주저하지 않는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그린 ‘다크 나이트’의 세계관은 뭣이 정의고, 영웅이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이며, 그래서 그가 세상을 구원하고자하는 목적과 수단은 뭣인가를 묻는다.
그건 초반부터 등장한다. 배트맨의 활약이 본격적으로 펼쳐지자 부작용도 발생한다. 가짜 배트맨들이 창궐한 것. 이에 진짜 배트맨이 나타나 가짜들을 진압하자 그들은 “당신이 가진 권리가 뭔데?” “당신과 나 사이에 다른 점이 뭔데?”라고 묻는다. 이에 배트맨은 “난 보호대를 입지 않는다”고 조롱하듯 답하지만 여기엔 아전인수의 오류가 있다. 그의 배트슈트는 운동복보다 더 강한 방탄복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배트맨은 자가당착에 빠져있다. ‘핸콕’에서 핸콕은 잡범을 잡으러 스스로 출동한다. 슈퍼맨 같은 능력의 그는 그냥 간단하게 차량을 제압하면 될 것을 굳이 높은 건물 꼭대기 피뢰침에 꽂아놓아 엄청난 시 예산을 낭비하게 만든다. ‘헬보이: 골든 아미’에서 레드(헬보이)는 고대에서 깨어난 요괴나라의 왕자 누아다의 인류말살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시민들은 도시가 초토화되고 한 갓난아이가 위험에 빠진 단편적인 현상만 보고 “필요 없으니 떠나라”고 선을 긋는다.
나중에 핸콕은 경찰로부터 정식으로 사건현장 투입을 요청받고, 헬보이는 이미 대통령 직속으로 운영하는 비밀조직의 요원이지만 배트맨은 그냥 형사 고든의 개인적인 친분으로 움직일 따름이다. 따라서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은 사실 불법이다. 조커를 잡겠다는 시민정신은 좋지만 불특정 다수의 재산을 파괴, 손괴할 자격은 없다.
게다가 그의 히어로 놀이의 시작은 부모를 죽인 범죄자들에 대한 복수심에서 출발했다. 토니 스타크가 테러조직에게 끌려가 죽을 뻔한 데 대한 복수심에 아이언맨을 개발해낸 뒤 조국을 위해 봉사한다면, 브루스 웨인은 그냥 자신의 트라우마 때문에 재벌의 편안한 삶의 대부분을 포기했다는 게 다르다.
여기서 법과 질서 그리고 정의와 영웅에 대한 꽤 진지한 질문이 나오고, 그 답은 바로 ‘백기사’ 하비 덴트가 담당한다. 지방검사인 그는 고담시에 창궐한 범죄자들을 대거 싹쓸이함으로써 영웅으로 부각되고, 사사건건 시에 경제적 손해와 시민들에게 공포감을 주는 배트맨은 어느새 법적 처벌대상으로 바뀐다.
출세욕에 불타고, 개인적인 연애욕심에 눈이 먼 덴트를 고든은 ‘투 페이스’라 부른다. 이런 천박한 속성과 달리 미디어에 비치는 덴트는 빈틈없이 정직하고 올곧은 공무원이고 정의의 수호신이자 입신영달에 개의치 않는 히어로인 것이다.
이렇게 정체성에 고민하거나 가식적인 두 사람과 달리 조커는 정의내리기는 불분명하지만 자본에 대한 욕심이 없고 자신의 인생관이 명확하다는 것만큼은 불변이다. 그는 세계를 정복하겠다거나 엄청난 돈을 거머쥐겠다는 야욕이 전혀 없다. 그래서 더 무섭다.
그는 살인 자체를 즐기는 시리얼킬러가 아니다. 게다가 모든 행동에는 계획이란 게 없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는데 그 기준은 모든 인간이 감추고자 하는 천박한 속성을 겉으로 끄집어냄으로써 사람들의 가면을 벗기고 싶은 데 있다. 그래서 그는 고담시민의 목숨을 담보로 배트맨에게 가면을 벗을 것을 협박한다.
조커는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배트맨이나 덴트와 다르다. 건물 꼭대기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배트맨에게 제압당하지만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뿐더러 배트맨이 절대 자신을 죽이지 못할 것이란 확신을 갖고 있다. 그 이유는 배트맨이 고뇌하는 ‘정의를 위한 살인이 타당한가, 부당한가’의 답을 알고 있으며 배트맨은 또 다른 자신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배트맨과 덴트는 철저한 자본주의적 인물이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엄청난 재산과 웨인주식회사의 지분으로 호의호식하는 웨인은 말할 것도 없고, 덴트가 검사라는 사회적 지도층의 직업을 갖고 출세를 지향하며 언론플레이를 하는 가운데 사랑하는 여자 레이철 한 명이 사실은 가장, 그리고 유일하게 소중한 사람이란 점이 그렇다.
이에 반해 조커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발판이 된, 독일 관념론 철학을 완성시킨 근세의 체계적인 형이상학자 헤겔에 가깝다. 조커는 자기를 현실의 차별화된 위상으로 분열시키고 발전시키는 자기활동의 주체로 파악할 것을 주장한 헤겔과 맞닿아있다. 헤겔은 이성의 개념을 정-반-합, 즉 정립 반정립 종합을 거치는 과정으로 봤는데 덴트가 정, 배트맨이 반, 자신이 합이란 로고스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조커는 고담을 탈출하려는 대형 선박 2채에 폭발물을 장착한 뒤 기폭장치를 양쪽에 쥐어준다. 한쪽엔 선량한 시민이, 다른 한쪽엔 범죄자들이 타고 있다. 밤 12시까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폭파하지 않으면 양쪽 다 폭파하겠다고 겁박한다.
결론은 양쪽 모두 기폭장치를 버린다. 이건 희생이고 배려고 이타심이다. 배트맨과 덴트가 레이철을 놓고 고민하거나 이기심을 발휘하는 것과 다르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그린 영화 ‘희생’이다. ‘콘스탄틴’에서 수태고지천사 가브리엘이 인간세상을 무너뜨리기 위해 희생양으로 여형사 안젤라를 죽이려 하자 퇴마사 콘스탄틴은 타락천사 루시퍼를 불러 자신의 영혼을 주는 조건으로 안젤라를 구하도록 만든 뒤 자신도 살아난다는, 바로 희생의 힘이다.
의외로 세 주인공들에겐 이런 숭고한 희생정신은 엿보이지 않는다. 조커야 천하제일의 악당이니 말할 것도 없고, 덴트야 출세에 눈이 먼 고위급 공무원이라 그렇다 치지만 히어로인 배트맨은 의외다.
팀 버튼의 배트맨은 나름대로 정체성의 고민과 악당들의 처단에 대한 혼란은 있었지만 로맨틱한 낭만에 치중했다. 조엘 슈마허의 배트맨은 징징대는 로빈과 알프레도의 손녀를 챙겨주느라 연애도 제대로 못했으며 수많은 미치광이 적들을 상대하느라 철학적 고뇌에 몰두할 여념이 없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은 비리경찰의 틈바구니에서 고군분투하는 고든 형사에게 힘을 실어주고 덴트를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레이철마저 포기하지만 정작 조커에게 농락만 당하고 만다. 게다가 자신이 법을 지키지 못한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어둠의 기사(다크 나이트)가 돼 경찰의 추적을 피해 도망 다니는 신세를 선택한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조커는 아직 보여준 게 별로 없다. 자레드 레토가 새로 창조해낸 조커는 일단 비주얼 면에선 훌륭하다. 미국 쇼크록의 창시자 앨리스 쿠퍼 및 그의 후계자 마릴린 맨슨이 다분히 연상되는 외모와 단순하게 거칠면서도 심오하게 미친 캐릭터는 썩 잘 어울린다.
문제는 철학이다. 만약 조커를 앞세운 영화나, 조커와 할리 퀸을 파트너로 한 영화로 분리된다면 어떤 사고의 여지를 남길 것인가가 중요하다. 일단 데이빗 메이어나, 잭 스나이더는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