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터널'이 올해 극장가 여름대전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당초 우려와 달리 앞서 개봉한 '인천상륙작전'은 물론이고 롱런가도에 들어선 '덕혜옹주'조차 여유있게 따돌리며 박스오피스 선두를 달리는 중이다. '부산행' '인천' '덕혜'에 이어 가장 늦게 개봉한 이 영화는 이제 '부산행'과 함께 쌍천만 관객을 기록할 기대주로 손꼽히고 있다.
두 편 모두 넓게는 스릴러 장르라는 점에서 한 배를 탔다. 일부 관료들의 복지부동과 보신주의 그리고 늦장 대처를 비웃는 재난 블록버스터라는 사실도 똑같다. 전기료 폭탄에 집 안 에어컨도 못 키고 사람 빽빽이 들어찬 대형 쇼핑몰(여기는 누진제도 없는 에어컨 천국이고 소유자는 재벌들이다)로 몰리는 서민들에겐 '터널'과 '부산행' 속 이야기가 소설이 아니다. 답답한 현실이고 갑갑한 삶이기에.
보통 암울한 시대의 관객들 심리는 고단한 인생을 잊기 위한 영화를 고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왜 어떻게든 구조될려고 개밥까지 먹는 '터널'이고 좀비떼에 살점이 물려 뜯기는 '부산행'일까. 국민의 종복을 자처하면서 이들을 쥐고 짜서 더 배불리 먹고 사는 누군가에게 촌철살인의 경고를 주는 메시지가 두 영화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탓이다. 날카로운 풍자와 통쾌한 해학이 주는 대리 배설과 만족, 이번 여름 폭염 속에서 '부산행' '터널'의 쌍끌이 천만이 예고되는 배경인 듯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작품의 완성도가 중요하다. '터널'은 한 마디로 관객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영화다. 다른 배경들은 차치하고 영화가 주는 재미와 감동, 그리고 스릴이 값비싼 티켓 한 장의 가격보다 몇 배 월등했기에 이같은 흥행 독주가 가능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김성훈 감독이 있다. 누구냐고? 데뷔작 '끝까지 간다'를 통해 '추격자' 나홍진 감독 이상으로 대한민국 영화인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천재 감독이다.
이선균 조진웅 주연의 '끝까지 간다'는 지난 해 극장 흥행에서 입소문을 탄 관객 동원의 진수를 선보였다. 별다른 마케팅 없이 "정말 재미있더라"는 카더라 통신만 갖고서 박스오피스를 제압했다. 국내뿐 아니다. 미국의 영화 전문지가 선정한 21세기 베스트 액션영화 17위에 꼽힌 바 있다. 플레이리스트의 '현재까지 등장한 21세기 액션영화 50편(The 50 Best Action Movies Of The 21st Century So Far)'에서 한국영화 가운데 가장 높게 랭크됐다. 좋은 영화는 꾼들이 먼저 알아보는 법이다.
그런 김성훈 감독의 신작 '터널'은 천만영화로 등극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지난해 여름 천만 관객을 넘어선 '암살'보다 하루 늦은 개봉 6일만에 300만 관객을 동원했지만 매출 점유율이 날짜가 지날수록 더 높아지고 있다. '국제시장', '7번방의 선물' 등이 개봉 10일 만에 300만을 돌파한 사실을 감안해도 '터널'의 상승세는 무서울 정도다.
김성훈 감독은 OSEN과의 인터뷰(박현민 기자)에서 삐딱한 시선으로 삐뚤어진 요즘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는 특유의 취향을 드러냈다. 그 중 김 감독의 재치가 돋보이는 몇 마디를 그대로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앉아있는 자세도 삐뚤하고, 넥타이도 조금 비틀어서 매는 편이 좋거든요. 어쩌면 이건 뻔한 이야기일 수 있어요. '끝까지 간다'도 이번 '터널'도 말이죠. 비리 형사, 터널에 갇힌 남자, 그 뻔하디 뻔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하는 데 관심이 많아요. 오글거리는 뻔함은 피하고 싶거든요. 일단 비트는 게 제 취향입니다. 다행히 그 점을 관객분들이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한 남자가 무너진 터널에 갇히고 구조를 기다리는 내용이 담긴 '터널'은 단순 상황적 설명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어둡고 무거운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그 묵직한 상황 속에서, 유머 코드를 불쑥 삽입시켜, 관객의 웃음을 수시로 자아낸다.
"제 스스로 무거운 걸 못보는 것 같아요. 재난의 순간에 빠졌다고, 절대적인 슬픔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그 절망 안에서도 순간 순간의 웃음이 있지 않을까요.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대도, 부정과 절망, 분노, 긍정, 체념 등 감정의 단계가 있다고 하잖아요. 아마 영화 속 정수(하정우)라는 인물도 " 무너진 터널 안에서 그러지 않았을까요."
한 번 메가폰을 잡으면 끝까지 가는 김 감독, 그의 차기작이 벌써 궁금하다. /mcgwire@osen.co.kr
[엔터테인먼트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