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잘 짜여진 각본은 없다. 치밀하게, 또 촘촘하게 하나의 퍼즐을 맞춰나가고 있는 SBS 수목드라마 '원티드'(극본 한지완, 연출 박용순)가 종영까지 단 2회만을 남겨놓고 있다.
'원티드'는 유괴된 아들을 찾기 위해 범인이 시키는대로 리얼리티 쇼를 진행하는 톱 여배우 정혜인(김아중 분)의 고군분투기를 다루는 드라마로 납치, 유괴, 생방송 리얼리티 쇼 등 안방극장에서 다소 생경할 수 있는 소재를 다루며 초반부터 심상치 않은 문제작으로 등극했다.
아들 현우(박민수 분)를 데려간 범인은 정혜인에게 매일 밤 10시 자신의 미션대로 생방송 리얼리티 쇼를 진행할 것을, 무조건 시청률 20%를 넘길 것을 요구했다. 지키지 못할 시 현우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 결국 혜인과 경찰, 방송팀은 매일 범인의 요구대로 미션을 수행하고 생방송을 진행했다. 그런데 방송을 하면 할수록 이 리얼리티 쇼와 얽힌 인물들에게 하나의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이 밝혀져 갔다.
과거 유해성이 있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범인을 비롯한 공범의 가족들이 목숨을 잃었고, 이를 은폐하기 위한 대기업의 횡포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것. 처음에는 범인 찾기를 통해 시청자들의 추리 본능을 자극하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던 '원티드'가 사실은 지독하리만큼 잔인하고 끔찍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시청자들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그리고 14회 동안 너무나 촘촘하게 쌓아온 이야기 구조와 높은 완성도에 극찬을 보냈다.
범인은 알려진대로 리얼리티 쇼 '정혜인의 원티드'를 함께 만들어가던 최준구(이문식 분). 하지만 아직 그가 이 리얼리티 쇼 마지막에 무얼 하려 했는지, 또 정혜인의 죄가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공개되지 않았다. 앞으로 남은 2회 동안 또 얼마나 충격적인 전개가 이어질지 궁금증이 더해지는 가운데 모든 집필을 마친 한지완 작가에게 그간의 소회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2013년 여름 처음 아이디어를 떠올린 뒤 가을에 전체 줄거리 초고를 완성했다는 한 작가는 "당시는 지금의 이야기와는 많이 달랐다. 처음에는 연쇄살인범에 관한 책을 읽던 중 딱 네 줄 정도로 다루어진 사건을 보고 흥미를 느꼈다. 미국의 한 소년이 신문배달을 하는 중에 실종됐는데 경찰에서는 단순 가출로 여기고 제대로 수사를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소년의 잘린 머리가 강물에 떠내려온 거다. FBI에서 대대적으로 수사를 하기 시작했는데, 소년의 아버지가 수사를 거부했다.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냐는 거다. 그리고 몇 년 후 소년의 아버지는 TV 공개 수배 프로그램의 MC가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 속 소년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일까, 왜 그런 프로그램의 MC가 되었을까, 자꾸 상상하게 됐다. 여러 버전의 이야기를 거친 후 지금 버전의 이야기로 초고가 완성됐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 작가는 "그런데 쓰다 보니 장르물로서의 재미보다 미디어에 대한 비판의식이 강하게 드러났다. 평소에 제가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던 주제였다. 재미난 프로젝트의 정아름 대표님과 만나 이야기를 발전시키면서, 이게 이 드라마의 핵심이라고 점점 확신하게 됐다. 그래서 이야기 전체를 주제에 맞춰 다시 한 번 수정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던 중 2014년 절대 잊을 수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세월호 참사다. 한 작가는 초고의 3, 4부를 쓰던 중 일어난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한 달 정도 글을 쓰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 작가는 "저는 나름대로 아주 냉혹한 시선을 갖고 인물들을 극단적인 욕망 덩어리로 설정하고, 이기적인 행동을 하도록 하고, 비현실적인 설정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이 픽션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다"며 "여러 가지 사회 문제들에 관해 관심을 갖고 찾아보기 시작하고, ‘내가 시위를 하거나 SNS에 글을 올리거나, 후원을 하는 것 말고 고통받는 분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되더라. 이야기는 그냥 허구로서의 재미가 있는 게 최고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지금은 내가 글쓰는 사람으로서 이 사회에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자신이 사회적인 문제에 더 깊이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를 전했다.
"피해자가 있고, 명백한 가해자가 있지만, 책임을 지거나 용서를 비는 사람이 없다"가 우리 사회의 말도 안 되는 핵심적인 문제라고 생각했다고 밝힌 한 작가는 "그러면 지금 제일 오랫동안 고통받은 문제 중 하나를 다루고 싶다, 자칫하면 잊혀질 수 있는 얘기를 상기시켰으면 좋겠다, 지는 싸움을 오랫동안 해오신 분들의 이야기를 대신 전하고 싶다, 그런 생각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 문제를 다뤄보고자 했다. 어차피 다룰 거라면 피해가거나 에두르지 않고 직설적으로 해야 더 울림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라고 실제 현실에서 있었던 사건을 다루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 작가는 "비판적으로 보는 건 누구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잘못된 부분이 너무나 많다. 아주 거대한 악이나 소위 말하는 '갑'은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내 주변에서 일어나거나 내가 당사자가 될 때, 혹은 그걸 다루거나 바라볼 때 우리는 어떤 자세여야 할까,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뭘 할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라고 이 드라마를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밝혔다.
마지막으로 한 작가는 "어려운 일일 거라 생각했고, 조심스러웠는데 오히려 방송사에서 하고 싶은 대로 만들어보라고 하시더라"며 "아직 16회 집필을 마친 것이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우선은 마음껏 자도 되는데 잠이 잘 오지 않고, 대본을 수정하는 꿈을 자꾸 꾼다. 믿을 수 없을 만큼 행복하고, 제가 잘못한 것들이 생각나서 아쉽고, 빨리 다음 작품을 쓰고 싶기도 하다"라고 SBS와 시청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parkj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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