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 좋은 배우"
'38사기동대'는 OCN 드라마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지난 6일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마동석x서인국의 브로맨스, 영화 같은 연출과 탄탄한 스토리가 한몫했는데 사기꾼이 판 치는 드라마라 악역들의 활약도 눈부셨다. 그 중심에 '가장 나쁜X' 안국장이 있었다. 이를 연기한 이는 배우 조우진이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이병헌의 팔목을 자르던 그 배우다. 조상무 역으로 단숨에 관객들의 눈도장을 찍은 그가 '38사기동대'에서도 끝까지 비열했던 안국장을 연기하며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2연속 악역으로 인기몰이에 성공한 주인공이다.
하지만 인간 조우진은 그간 연기한 두 캐릭터와 전혀 다르다. 허리를 90도로 굽혀 정중하게 인사하고 질문 하나하나에 진심을 다한 답변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래서 더 소름이 돋았다. 자신과 180도 다른 인물을 마치 실제 본인인 것처럼 연기하는 천생 배우 조우진을 만났다.
◆"안국장도 비열할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지 않을까요"
-'38사기동대'가 큰 사랑을 받고서 종영했어요.
"뭔가를 알 만하니까 드라마가 끝났네요. 제가 연기한 안태욱이 어떤 인생 목표를 갖고 어떤 방식으로 살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 만하니까 종영했어요. 시원섭섭하죠. 드라마를 시작하고 끝낼 때 가장 먼저 만나고 가장 늦게 헤어지는 게 의상팀과 분장팀이거든요. 마지막 촬영날 그분들께 손편지를 쓰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아 진짜 '38사기동대'랑 안국장과 헤어지는구나 실감이 났어요"
-이렇게 높은 시청률, 비결이 뭐였을까요?
"시청률이 올라갈 때마다 현장에서 모두들 놀라워했어요. 멍했죠. 그래더 더 열심히 파이팅을 외쳤고요. 대박 시청률의 비결은 무조건 팀워크예요. 스태프들의 아버지인 한동화 감독, 그 판을 깔아주는 한정훈 작가, 배우들의 삼촌 같았던 '마쁜이' 마동석 형님까지. 잘 끌어주신 덕분에 좋은 호흡이 나온 것 같아요. 현장에서는 실제로 더 많은 브로맨스가 차고 넘쳤답니다"
-조상무에 안국장까지, 비열한 연기를 왜 이렇게 잘해요?
"비열한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연기한 적은 없어요. 대본에 있는 그대로를 연기하면서 스스로 이 인물이 하는 행동과 말에 명분을 찾았죠. 그 나름대로 나빠야 하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안국장 같은 경우는 백성일(마동석 분)을 괴롭히는 역할인데 선배의 풍채와 대비되면 더 얄미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멸치처럼 보이려고 노력했고 안경이랑 머리스타일도 많이 고심했어요"
-이제 안국장에게서 빠져나왔나요?
"아직은 애쓰는 중이에요. 시청자분들은 안국장을 싫어하고 비열하고 얄밉다고 했지만 저는 이 친구에게 배운 게 많아요. 본인만의 고집이 있고 추진력이 있잖아요. 나쁜 쪽이긴 하지만 머리도 좋고요. 백성일이 따뜻한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면 안태욱은 본인의 야망과 가정을 지키고자 고군분투했어요"
-그러고보니 안국장이 가정적인 편이긴 하네요.
"천성희(수영 분)랑 복도에서 마주치는 신이 있는데 원래 저는 대사 없이 받는 둥 마는 둥 지나가라고 대본에 있었거든요. 그때 제가 감독님이랑 상의해서 '응 여보' 라는 대사를 쳤어요. 나쁜 안국장이지만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의외의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재밌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마지막회에 비리가 다 폭로됐을 때에도 아내한테 '늦게 들어갈 것 같다'고 전화하는 장면도 있었고요"
-그래도 안국장에 '38사기동대'에서 가장 나쁜 것 같아요!
"'일리아드 오디세이'라는 책이 있는데 거기에 파리스 왕자가 있거든요. 그 때문에 전쟁이 벌어지고 트로이가 멸망하는데, 그림으로 보면 온몸에 불을 붙인 채 사방에 가서 불을 내는 인물이에요. 안태욱이 그런 것 같아요. 여기저기에 가서 온갖 나쁜 짓을 하잖아요. 저 스스로는 안태욱이 가정을 지키고자 그랬다고 생각해요. 대사에도 있는데 '먹고 살려고 그랬어요'라고 하거든요. 가정을 위해서 끝까지 나빴던 거라고 하면 더 나쁠까요?(웃음)"
◆'마블리' 마동석, '놀라운 배우' 서인국
-한정훈 작가는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요.
"열려 있는 작가예요. 대사와 지문 그대로 연기하는 게 아니라 배우들 의견을 많이 수렴해 주셨어요. 다음 작품이 훨씬 기대되는 작가죠. 저보다 2살 적은데 젊은 편이라 더욱 그래요. 사석에서 편하게 보는 사이인데 '당신은 미친 사람'이라고 했어요. 팬이 됐거든요. 배우에게 용기를 많이 북돋아 주는 작가랍니다"
-한동화 감독은 이번이 입봉작이라면서요.
"많이 따르고 싶은 인생 선배예요. 잘 이끌어주셨죠. 제게는 좋은 기회를 주셨으니 고맙고 고마운 분이고요. 지난해 9월에 처음 만났는데 그땐 '내부자들' 개봉 전이었거든요. 나름 잘 봐주신 것 같아요. 저는 정말 운이 좋았죠. 안국장 캐릭터를 함께 만들었는데 어여삐 여겨주셔서 고마운 분이랍니다"
-마동석 배우는 정말 '마블리'인가요?
"통이 정말 크신 분이에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쿨하고 마음이 깊으시죠. 제가 '형님, 이 장면에서 이렇게 하려고 합니다. 불편하지 않으세요?'라고 물으면 '얼마든지 들어와.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해주세요. 그래서 서인국과 '케미'도 그렇게 특급이었던 거겠죠. 사실 다가가기 힘든 선배였는데 촬영장에서 지칠 때마다 가장 먼저 파이팅을 외치면서 '셀카'를 찍자고 하셨죠. '마블리', '마쁜이'라는 애칭이 괜히 나오는 얘기가 아니더라고요.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선배예요"
-배우 서인국도 궁금하네요.
"저랑 부딪힌 장면이 좀 더 많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테이크를 여러 번 가게 되고 앵글이 달라지면 배우들 연기도 변하거든요. 서인국은 그 때마다 반응이 달라요. 노래 경연에서 1등한 친구가 이렇게 연기를 잘해도 되나 싶어요. 길게 만나보고 싶은 배우랍니다"
-현장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아요.
"제게 인간관계를 만들어 준 작품이 '38사기동대'예요.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해줬죠. 나무 심는 거랑 똑같다고 봐요. 좋은 사람들과 숲을 이뤘을 때 삶에 있어서 풍족하고 행복할 텐데 제가 이번에 그랬어요. 정말 고맙고 좋은 기회를 어었죠"
◆"멜로 욕심보다는 캐릭터 위주로"
-차기작은 뭐예요?
"'원라인'에선 비리 검사를 맡았고요. '더킹'에서는 조인성을 보좌하는 수사관이에요. '보안관'에서는 오랜만에 정장을 벗고 동네 아저씨를 연기하고 있고요. '리얼'에서는 어둠의 세력들의 대립 사이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해결해 주는 변호사예요. 상반기에는 법조계와 공무원으로 살았네요 하하"
-멜로라인 욕심나지 않아요?
"그런 질문을 많이 받긴 하는데 장르에 상관없이 주어진 캐릭터를 연기할 뿐이에요. 닮고 싶은 캐릭터라면요. 캐릭터를 파고 들다 보면 그 사람 성격과 삶의 태도가 보이는데 조우진이라는 나부랭이가 배울 수 있는 캐릭터라면 어떤 장르라도 콜이에요"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하고 싶은 한 마디요.
"보람이란 걸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응원과 격려에 보답할 수 있도록, 더 좋은 기회를 만들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좋은 작품과 캐릭터로 보답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comet568@osen.co.kr
[사진] 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네이버 영화 스틸, OCN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