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수목드라마 '원티드'(극본 한지완, 연출 박용순)가 18일 16회를 마지막으로 종영된다. 톱 여배우 정혜인(김아중 분)이 유괴된 아들을 찾기 위해 범인이 시키는대로 리얼리티 쇼를 진행한다는 내용을 담은 이 드라마는 사실 갑에 맞서 싸우는 을의 처절한 외침을 그려내고 있다.
정혜인은 아들 현우(박민수 분)를 데려간 범인의 요구에 따라 생방송 리얼리티 쇼 10회간 진행해야 했는데, 범인이 내건 조건은 미션 성공, 시청률 20%였다. 이를 지키지 못할 시 현우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 이에 혜인과 경찰, 방송팀은 매일 범인의 요구대로 미션을 수행하고 생방송을 진행했는데 그 과정에서 이 리얼리티 쇼와 관련된 인물들이 모두 7년 전 사건과 얽혀있음을 알게 됐다.
13회에서 밝혀진 범인의 정체는 바로 혜인의 선배이자 PD였던 최준구(이문식 분). 그는 8년 전 유해성이 있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아내와 아이를 잃었다. 이를 폭로하기 위해 피해자들을 수소문했던 최준구는 참담한 현실 앞에 좌절했고, 결국 치밀한 계획 아래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형과 동생을 잃은 나수현(이재균 분)과 손을 잡고 범행을 저지르게 된 것.
그리고 지난 15회 방송에서는 과거 무관심과 이기심으로 일관했던 정혜인의 죄까지 밝혀졌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이기심과 '나 아니면 알고 싶지 않아'라는 무관심이 낳은 결과는 너무나 참담했다. 이를 알게 된 정혜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선언을 했고, 최준구에게도 죗값을 받으라고 일침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과 소름돋을 정도로 치밀하게 짜여진 극 전개에 시청자들은 매회 감탄과 극찬을 보내고 있다. 물론 시청률만 놓고 본다면 아쉬울 수밖에 없지만, 이렇게 높은 완성도와 폐부를 찌르는 메시지를 전하는 드라마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 16회 집필을 마친 소감은 어떠한가요?
"아직은 실감이 잘 나지 않습니다. 우선은 마음껏 자도 되는데 잠이 잘 오지 않고요. 대본을 수정하는 꿈을 자꾸 꿔요. 믿을 수 없을 만큼 행복하고, 제가 잘 못한 것들이 생각나서 아쉽고, 빨리 다음 작품을 쓰고 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실제 사건을 떠오르게 하는데,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습니다. 있었던 사건과 아이의 납치, 학대 등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에 있어서 애로사항은 없었나요?
"저보다는 방송사에서 이 작품을 기획, 편성하는 것이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원하는 대로 마음껏 해보라고 해주셨고요. 다만 극단적인 설정을 가져왔고, 허구의 작품인데 피해자 분들께 혹시나 상처가 되거나 누가 되는 부분은 없을까가 굉장히 조심스러운 일이었어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의 대표님을 만나서 내용을 설명 드리고, 혹시라도 원치 않으시면 다른 허구의 사건을 만들려고 했는데 다행히 괜찮다고 해주셨고, 어떤 시각으로 다루어야 할지, 어떤 표현을 삼가야 할지 미리 여쭤보고 최대한 그건 지키려고 했어요. 그래도 관련된 모든 분들께 만족스럽지는 않았을 거고, 그럴 수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이 어려웠죠."
- 극 속에는 다양한 인물군이 등장하는데, 리얼리티 쇼를 진행해야 하는 여배우와 PD, 방송국을 전반에 내세운 이유는 무엇인지, 또 미디어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킨 이유는 무엇인가요?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것들이 그 사회가 지향하는 것,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어떤 문제를 대하는 태도 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에 그런 면에서 방송을 보거나 들을 때 민감하게 여기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지금 이게 맞아? 우리가 이런 걸 보고 열광하는 게 괜찮은 거야?이렇게 만들어도 되는 거야?'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소재나 인물도 그 쪽으로 선택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 주제를 드라마로 만들어서 사람들한테 꼭 전해야지, 라는 생각보다는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놓고 보니 사실 내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구나, 를 깨닫게 됐습니다."
- 준비 기간이 굉장히 길었던 것으로 아는데, 집필 과정은 어땠나요?
"2013년 여름에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떠올렸고, 가을에 전체 줄거리 초고를 완성했는데, 지금의 이야기와는 많이 달랐어요. 그런데 쓰다 보니 장르물로서의 재미보다 미디어에 대한 비판의식이 강하게 드러났어요. 평소 제가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던 주제였죠. 재미난 프로젝트의 정아름 대표님과 만나 이야기를 발전시키면서, 이게 이 드라마의 핵심이라고 점점 확신하게 됐어요. 그래서 이야기 전체를 주제에 맞춰 다시 한 번 수정했습니다."
"그러다가 2014년 초고의 3, 4부를 쓰던 와중에 세월호 참사가 터졌는데 한 달 정도 글을 쓸 수가 없어서 완성을 못했어요. 저는 나름대로 아주 냉혹한 시선을 갖고 인물들을 극단적인 욕망 덩어리로 설정하고, 이기적인 행동을 하도록 하고, 비현실적인 설정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이 픽션을 압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는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여러 가지 사회 문제들에 관해 관심을 갖고 찾아보기 시작하고 ‘내가 시위를 하거나 SNS에 글을 올리거나, 후원을 하거나, 하는 것 말고 고통받는 분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이야기는 그냥 허구로서의 재미가 있는 게 최고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지금은 내가 글쓰는 사람으로서 이 사회에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이야기로는 어떤 걸 할 수 있는 걸까."
"'피해자가 있고, 명백한 가해자가 있지만, 책임을 지거나 용서를 비는 사람이 없다', 이게 우리 사회의 말도 안 되는 핵심적인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지금 제일 오랫동안 고통받은 문제 중 하나를 다루고 싶다, 자칫하면 잊혀질 수 있는 얘기를 상기시켰으면 좋겠다, 지는 싸움을 오랫동안 해오신 분들의 이야기를 대신 전하고 싶다, 그런 생각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 문제를 다뤄보고자 했습니다. 어차피 다룰 거라면 피해가거나 에두르지 않고 직설적으로 해야 더 울림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요. 어려운 일일 거라 생각했고 조심스러웠는데 오히려 방송사에서 하고 싶은 대로 만들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 혹시 시청자들이 놓친 디테일, 혹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드라마상의 시간이 한 회에 하루 혹은 반나절로 흐르고, 사건 전개 속도가 빠르다 보니 리얼리티나 개연성이 떨어져 보이는 상황이 있었을 수 있어요. 극적인 상황을 만들기 위해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배제한 부분도 있지만, 상황마다 자문을 받으면서 되도록 말이 되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되도록 간단하게 정보를 주고, 드라마 전체에서 한 번 설명한 부분은 일일이 설명하지 않다 보니 중간부터 보기 시작하거나, 그 부분을 놓치면 말도 안되는 상황이라는 오해가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제가 좀 더 효과적으로 표현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 '원티드'가 굉장히 완성도 높은 작품이긴 했지만, 장르물의 특성상 유입이 어려웠고 그러다 보니 시청률적으로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는데 작가로서 아쉬운 부분은 없었는지요?
"많은 분들이 함께 하는 작품이고, 시간과 노력과 돈이 어마어마하게 드는 일이잖아요. 시청률이 잘 안 나오면 아쉽다기보다 죄송한 마음이 큰 것 같아요."
- '원티드'는 어떤 의미의 드라마로 남을 것 같나요?
"이렇게 좋은 팀을 만나고, 시청자 여러분께 내보일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기적같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한테는 첫 작품이고, 또 몇 년간 정말 절실한 마음으로 썼던 작품이예요. 전체 줄거리만도 여러 가지 버전이 있고, 그 매일매일의 시간이 또렷이 생각날 정도로요. 그래서 아마 평생 잊지 못할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parkj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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