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보적으로 뽀얀 피부에 남자 치고는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지만 낮은 목소리와 나긋한 말씨는 뭇 여성들을 설레게 한다. 심지어는 입술에 난 상처까지 매력 포인트로 만들기도 한다. 배우 이종석은 자신의 연기력을 돋보이게 하는 데 외모라는 장점을 영리하게 사용할 줄 아는 배우다.
데뷔작인 SBS ‘검사 프린세스’에서 수석검사 윤세준(한정수 분)의 오른팔인 이우현으로 분했던 그는 당시 나이 스물 둘에 꼭 맞는 혈기왕성한 역할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실수를 하더라도 봐 주고 싶은 풋풋함이 안정된 연기와 맞물려 적지 않은 효과를 냈다.
SBS ‘시크릿 가든’에서는 파격적인 동성애자 연기도 감행했다. 이종석은 이 드라마에서 특유의 서늘한 눈매를 십분 활용했다. 극 중 썬에게 감도는 반항적이지만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는 분위기는 이 때문에 배가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흰 피부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빨간 머리를 한 채 무표정한 얼굴로 “바빠” “비켜” “꺼져” 같은 대사들을 읊는 그의 모습은 이종석이라는 이름을 대중에 제대로 알린 시발점이 됐다.
이종석의 얼굴에는 늘 청춘이 있었지만, 그가 반드시 대놓고 청춘 냄새 나는 역할만 맡은 것은 아니다. 그의 영리함이 빛나는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다. 외모만 보면 안하무인 재벌2세나 본부장 정도는 몇 번을 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데, 그는 MBC ‘W’를 통해 첫 재벌 연기에 도전했다. 그조차도 웹툰 주인공이라는 특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의외의 행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의사, 기자, 작곡가 등 전문직부터 운동선수, 군인, 심지어는 초능력자까지 한 적이 있다. 북한사람으로 등장한 적은 두 번이고, 사극에 나선 적도 있다. 가장 어울릴 것 같은 학생 역할은 의외로 두 세 번 정도다. 얼굴 낭비가 우려되는 필모그래피다. 그러나 해당 작품들은 모두 이종석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들을 남겼다. 배우 스스로가 배역에 완벽히 녹아들다보니 망가진 모습에서도 빛이 날 수밖에 없다.
현재 방영 중인 MBC ‘W’는 그의 ‘드라마 덕후’적인 안목을 다시 한 번 입증받은 작품이다. 앞일을 예측하기 힘든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 속에서도 극 중 강철의 훈훈한 모습은 언제나 칭찬의 대상이다. 늘 캐릭터의 얼굴을 스스로의 얼굴과 일치시키며 몰입감을 높여 주는 이종석, 연기로 얼굴을 잘 쓰는 배우라 불러도 좋지 않을까. /bestsurplus@osen.co.kr
[사진] ‘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