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사랑과 진짜 범인을 찾는 흥미로운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다. MBC 수목드라마 ‘W’가 8회에서 재밌고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전개 속에 숨어 있는 ‘진짜 맥락’을 끄집어냈다. 바로 인간은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인간의 존엄성이다.
‘W’는 현실 속 여자와 만화 속 남자가 서로의 세계를 오고가며 사랑하는 이야기. 만화 속 남자인 강철(이종석 분)은 현실 속 여자인 오연주(한효주 분)의 아버지인 오성무 작가(김의성 분)가 어떻게 보면 창조주인 셈이다. 그동안 강철이 고난을 겪었던 일들이 만화 주인공의 극적인 이야기를 위한 오 작가의 의도였다는 것, 미심쩍었던 그리고 아등바등 도망치려고 했던 ‘진범’ 역시 오 작가가 실체 없이 그냥 집어넣었다는 것.
강철은 절망했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정할 수밖에 없는 이 황당하고 절망적인 현실이었다. 강철을 괴롭히며 가족을 죽이는 임무를 띤 진범 역시 정체성 혼란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 진범은 끊임 없이 ‘나는 누구야?’, ‘강철 어딨어?’, ‘어떻게 살았어?’라고 물으며 설정값에서 옴짝달싹 못 하면서도 자유 의지를 갖게 된 후 혼동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자유 의지를 갖게 된 만화 속 인물인 강철, 그리고 강철과 사랑하게 되면서 만화에서 주인공이 된 현실 속 여자 연주는 서로를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겪은 모든 일들이 꿈이었다는 설정을 삽입했다. 강철이 자신을 좋아하는 역할이었기에 연주를 택한 후 소멸될 위기에 처한 윤소희(정유진 분)를 비롯한 사랑하는 지인들을 지켜내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강철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만화이기에 상상의 나래로 펼쳐지고 모두 자신을 중심으로 흘러가며, 오 작가가 처음에 부여한 설정값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이 모든 끔찍한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만 우리 모두는 존재 가치가 있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변화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사랑하는 연주와 이별을 택하고 주변 인물들을 살리기로 한 강철의 행동은 모두를 뭉클하게 했다. 특히 존재 가치가 있는데 단순히 작가의 상상에 따라 펜대에 휘둘리는 자신을 비롯한 만화 속 인물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은 이 드라마가 사랑 이야기를 하면서도 마냥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현실적인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라 흥미를 한껏 강조하고 있지만 송재정 작가는 그 속에 인간의 존엄성을 끼워넣으며 너무 가볍지 않게 작품의 무게감을 채웠다.
앞으로 강철과 연주가 오 작가라는 창조주가 설정한 존재 가치를 뛰어넘어 존엄적인 인간의 자유 의지를 회복하고 운명에 맞설 수 있을지가 이 드라마의 향후 관전 지점인 셈이다. / jmpyo@osen.co.kr
[사진] 'W'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