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있고, 명백한 가해자가 있지만 책임을 지거나 용서를 비는 사람이 없다."
지난 18일 종영된 SBS 수목드라마 '원티드'의 한지완 작가는 이것이 우리 사회의 말도 안 되는 핵심적인 문제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제일 오랫동안 고통받은 문제 중 하나를 다루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것이 바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 문제다.
'원티드'는 톱 여배우 정혜인(김아중 분)이 유괴된 아들을 찾기 위해 범인이 시키는대로 리얼리티 쇼를 진행한다는 내용을 담은 드라마로, 김아중 지현우 엄태웅 박효주 이문식 등이 열연을 펼쳤다. 촘촘하게 짜여진 극 전개와 매회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반전, 소름돋는 메시지 등 '원티드'는 방송 내내 참 만든 장르극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정혜인은 아들 현우(박민수 분)를 데려간 범인의 요구에 따라 생방송 리얼리티 쇼 10회간 진행해야 했다. 범인이 내건 조건은 미션 성공, 시청률 20%였다. 이를 지키지 못할 시 현우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이라 혜인은 경찰, 방송팀과 함께 매일 범인의 요구대로 미션을 수행하고 생방송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생방송 리얼리티 쇼를 통해 납치된 아이를 찾고 범인을 잡는 수사극으로만 여겨졌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아이가 납치되는 자극적인 이야기를 지상파에서 굳이 방영을 해야 하느냐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하나의 소재에 불과했다.
'원티드'는 회를 거듭할수록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사회문제를 건드리며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아동학대, 불법 임상 실험, 모방 범죄 등은 기본이고 시청률과 화제성을 위해서라면 뭐든 이용하고 왜곡하는 미디어의 폐해를 꼬집었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리얼리티 쇼를 통해 거론됐던 인물들은 모두 8년 전부터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과 연관됐는데, 그 중심엔 대기업 SG케미컬의 가습기 살균제가 있었다. 범인인 최준구(이문식 분)은 이 가습기 살균제로 아내와 아이를 잃었고, 이를 폭로하려 했지만 대기업의 횡포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그는 결국 자신과 마찬가지로 동생을 잃은 나수현(이재균 분)과 손을 잡고 치밀한 계획 하에 범행을 저지르게 됐다.
또한 이 드라마는 과거 혜인이 무관심과 이기심으로 사건을 모른 척 했음을 알렸다. 이를 알게 된 혜인은 자신의 의지대로 리얼리티 쇼 10회 방송을 진행,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과를 했다. 하지만 진짜 가해자인 SG케미컬의 함태섭(박호산 분)은 뻔뻔하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끝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더욱 소름 돋는 건 리얼리티 쇼가 아니었다면 여전히 자신이 앓고 있는 병의 원인을 모르고 있었을 피해자가 많다는 것. 언론과 경찰 등을 제멋대로 휘두르며 사건을 은폐하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는 대기업의 횡포는 끝까지 시청자들의 분노를 유발했다.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드라마가 건드린 가습기 살균제 유해 문제는 이미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이었기에 더 큰 충격과 씁쓸함을 안겼다.
'원티드'는 우리가 원하는 결말을 그리지 않았다. 하지만 갑의 횡포가 세상에 공개됐기 때문에 그 자체로 변화는 시작됐다는 것. 그리고 PD인 신동욱(엄태웅 분)은 리얼리티 쇼를 제대로 만들어보겠다고 다짐,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임을 알렸다. "이런 일이 내 주변에서 일어나거나 내가 당사자가 될 때, 혹은 그걸 다루거나 바라볼 때 우리는 어떤 자세여야 할까,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건던지고 싶었다"는 한지완 작가의 바람처럼 '원티드'는 마지막까지 시청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며 '역대 최고 용감했던 드라마'라는 평을 얻었다. /parkj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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