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이종석이 마지막으로 호텔 옥상에서 몸을 던졌던 까닭은 단 하나였다. 더 이상 한효주는 웹툰 속 세계에서 불사신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종석은 또 다시 가족을 잃을 수 없었다. 그래서 목숨과 기억을 담보로 도박을 했다. 목숨은 건졌고, 기억은 잃었다.
오연주(한효주 분)는 지난 18일 방송된 MBC ‘W’에서 강철(이종석 분)의 마지막 요청대로 웹툰을 통해 그와의 모든 기억을 꿈으로 만들었다. 강철은 길고 잔혹한 꿈에서 깨어나 가족을 몰살하고 자신을 죽이려 한 진범을 찾는 일상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오연주와의 이야기는 으레 꿈이 그러하듯 휘발돼 버렸다. 이제 강철은 오연주를 알지 못한다.
한편 오연주는 제 손으로 행복했던 시간들을 지우고는 실의에 빠졌다. 왼손 약지에 반지는 아직 남아 있었지만, 강철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이 없었다. 오연주는 서점으로 나가 웹툰 ‘W’ 속 자신과 강철의 행복한 한때를 오려 벽에 붙였다. 그는 그렇게 연인과 자신을 분리시킨 후에도 문득 강철을 볼 때가 있다고 되뇌었다. 오연주의 상상, 혹은 꿈 속에 강철이 소환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은, 강철의 무의식이 오연주를 부르고 있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여태 오연주가 현실과 웹툰, 두 개의 세계를 오갈 때는 반드시 강철의 의지나 강렬한 감정 변화가 바탕에 있어야 했다. 이를테면 앞서 오연주가 웹툰 속 세계를 탈출하기 위해 강철에게 기습 키스를 하는 대목에서도 이 같은 설정을 확인할 수 있다.
오연주가 현실 세계로 돌아온 후 강철의 모습을 본 부분들을 살펴 보자. 제일 먼저는 진범의 습격을 받은 강철이 병원 침대에 누워 꿈을 꿀 때다. 두 번째 소환의 순간은 강철이 처음 오연주를 인생의 키라고 느꼈던 순간. 간호사가 강철의 상태를 확인하려 병실에 들어온 순간, 강철을 죽이려 하는 오성무(김의성 분)를 막은 오연주가 무의식 속에서 튀어 나왔다. 덕분에 또 다시 오연주와 강철은 잠깐 마주칠 수 있었다.
다음은 갑자기 병원에 나타나 오연주의 반지를 주워 주는 강철. 이때 강철의 옷차림은 과거 퇴원 후 오연주와 만났을 적과 같다. 반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퇴원을 하며 다시금 연인과의 만남을 떠올린 것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성무(김의성 분)의 얼굴을 빼앗은 진범이 웹툰 속 방송국에 총기 난사 사건을 벌였을 때, 현실의 명세병원은 웹툰의 성진병원으로 바뀌고 오연주가 소환됐다. 가장 위급한 상황에서 의사라고는 오연주 밖에 떠오르지 않았던 강철이다.
결과물은 소멸되더라도 그 과정은 흔적으로 남는다. 기억은 사라졌어도 사랑은 습관처럼 남았다. 연인의 아버지가 만든 이 얄궂은 운명 속을 살아가면서도, 강철의 무의식은 온통 오연주였다. 다시 두 사람 앞을 가로막고 선 예측 불가의 운명이 과연 이들에게 행복을 허락할지 궁금해진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W’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