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유진모의 취중한담] SBS 월화드라마 ‘닥터스’는 종영을 1회 앞둔 지난 22일 19.5%의 시청률을 올리며 20%대 종영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시작부터 내내 동시간대 1위를 지켜온 이 드라마는 윤균상과 이성경을 새로운 스타로 발돋움하게 만든 부수입과 더불어 2011년 군 제대 후 복귀를 앞둔 시점에서 유흥주점 여종업원 폭행사건으로 이미지에 타격을 입어 잠시 주춤했던 김래원에게 새 전성기를 마련해줬다는 주수입을 올렸다고 봐도 무방하다. 박신혜라는 ‘작은 거인’의 존재감이 바탕이 됐을 때 어떤 시너지효과가 나오는가를 다시 한 번 보여줬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주중 미니시리즈의 주 시청층은 10~40대 여성이다. 특히 ‘닥터스’ 같은 멜로요소를 마케팅포인트로 앞세우는 드라마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남자주인공이 시청률의 절반을 책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래원은 지난 19회 내내 여성 시청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전형적인 ‘백마 탄 왕자’ 스타일의 캐릭터를 잘 소화해낸 그의 무르익은 연기력과 타고난 매력이 앞장섰다면 박신혜의 매번 튀지 않고 딱 자기 포지션을 지키는, 멜로의 여배우의 역할에 충실한 도움이 매조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닥터스’는 경기도의 한 여자고등학교에 유혜정(박신혜)이 전학 오면서 시작됐다. 엄마의 죽음과 아버지의 재혼 후 비뚤어진 혜정은 유일하게 믿고 따르는 할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이다. 할머니의 집엔 공교롭게도 담임선생 홍지홍(김래원)이 하숙을 하고 있었다.
주먹을 휘두르는 ‘쎈 언니’였던 혜정은 모범생 친구 진서우(이성경)를 만나면서 공부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고 의사가 되면서 원래 자신의 위치였던 병원으로 돌아간 지홍과 재회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로맨스가 시작됐다.
이 병원엔 출세욕에 불타는 진명훈(엄효섭)이 원장으로 있었고 그의 딸인 서우도 혜정과 함께 근무하게 된다. 동료인 정윤도(윤균상)는 혜정을 짝사랑하며 지홍과 공개적으로 경쟁한다. 학창시절 대놓고 지홍을 사랑했지만 상처만 입었던 서우는 윤도에게 감정을 숨기지 않지만 역시 이번에도 혜정 때문에 다시 한 번 아프게 된다.
명훈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지홍을 견제한다. 그런데 명훈은 혜정의 할머니의 수술을 집도했다가 의료사고로 숨지게 만든 장본인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혜정은 그를 무너뜨리기 위해 복수심을 불태웠지만 19회에서 그가 몰락하고 암에 걸리자 모든 감정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지홍의 프러포즈를 받는다. 그토록 혜정을 미워했던 서우 역시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의 잘못을 인정하고 혜정에게 무릎을 꿇는다. 결자해지 인과응보 권선징악, 해피엔딩을 예고한다.
이 천편일률적인 수학방정식 같은 플롯의 드라마가 그토록 시청자의 애를 태우는 진원지는 누가 뭐래도 지홍과 혜정의 뻔하지만 아름답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랑 만들기의 여정이다.
세상의 모든 사랑은 이뤄지고 나면 본인들의 노력과 주변의 조력을 잊은 채 만남 과정 결과를 인연이라 생각하기 마련이다. 지홍과 혜정의 운명적인 듯한 만남과 필연적인 듯한 재회가 그렇다. 그건 시청자에 대한 최면이다. 명훈의 음모에 희생되지 않고 해피엔딩의 문 앞에 선 게 신의 섭리이고 운명의 시나리오인 듯 착각하게 만듦으로써 시청자와 지홍 혹은 혜정으로 표면화하고 내면화하는 생성과 변천 그리고 완성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 단순하면서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플롯과 장치는 매우 선명하고 현실적인 기시감을 주기에 결코 유치하지 않고 진지한 것이다. 그리고 그 저변엔 나이보다 어려보이고 엄지손톱이 못생겼단 콤플렉스 때문에 네일아트를 할 정도로 스스로 외모적 불완전을 인정할 줄 아는 박신혜의 장점 혹은 단점이 깔려있다. 그건 개성일 수도 매력일 수도 있다.
SBS ‘상속자들’에서 박신혜는 이민호 김우빈과 삼각관계를 형성했다. 아마 이 드라마의 차은상 캐릭터가 바로 모든 드라마 속에서 박신혜가 맡은 역할의 위상을 가장 적절하게 구분할 것이다. 탄(이민호)과 영도(김우빈)는 나름대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부잣집 도련님들이지만 은상은 지지리 궁상맞은 집안의 ‘하녀’ 신분이다. 왜냐면 엄마가 탄의 으리으리한 궁궐 밖 허름한 별채에 기거하는 24시간 풀타임 하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첩의 아들’이라는 탄과 일찍 할머니에 의해 어머니와 헤어진 영도의 상처를 치유해준 해결사는 은상이었다.
SBS ‘피노키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언론의 옐로우저널리즘에 아버지의 명예가 훼손되고 그 충격으로 어머니가 자살하고 형은 범죄자가 된, 한마디로 인생이 갈기갈기 찢어진 달포(이종석)에게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고 인생은 아름다운 면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 이가 바로 인하(박신혜)였다. 시청자들이 이민호가 왜 최고의 한류스타인지 새삼스레 인지하게 되고, 김우빈이란 멋진 신예가 있었다는 것을 새로 깨닫게 되며,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이종석이란 배우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징검다리가 돼준 장본인이 바로 박신혜였던 것이다.
현재 남자 주인공들은 웬만하면 키가 180cm가 넘는다. 전술한 세 남자배우가 186~7cm다. 그들보다 작다는 송중기도 178cm다. 그래서 여배우들의 키 역시 170cm가 넘거나 그 정도는 돼야 한다는 게 연출자 등 제작진의 생각이다. 2000년대 초 전성기를 연 전지현이 174cm에 가까우니 그건 이미 오래 전의 현실이었다.
박신혜의 키 공식 수치는 168cm지만 그보다 작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수치의 진실여부를 떠나 남자들의 키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송혜교의 그것은 ‘비밀’이다. 박보영 역시 그 점에선 분명히 한계가 있다. ‘상속자들’에서 친구로 설정됐지만 20cm 이상 키 차이가 나는 이민호의 품에 아기처럼 안기는 박신혜의 모습은 가나초콜릿 광고의 이미연과는 사뭇 달랐던 이유가 있다. 확실히 박신혜는 남자들로 하여금 보호본능의 호르몬이 강하게 분비되도록 만들고, 여자들에게는 백마 탄 왕자님에게 구조돼 보호를 받는 환상을 구체화하게 만드는 강한 힘이 있다.
지홍과 혜정은 9살 차이의 스승과 제자에서 이제 지홍이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를 하면 혜정이 꾸지람을 하는 사이로 바뀌었다. 혜정을 꾸짖고 훈계하며 인생과 학문을 교육하던 지홍이 이젠 혜정에게 꼼짝 못하는 순한 양이 됐다. 그건 사고 속의 고려와 소외의 개념이 만든 존경심에 근거한다.
두 사람, 아니 대다수의 사람들은 소외됐다는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살아가고, 그건 그리스신화의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의 아들인 자웅동체의 신 헤르마프로디토스를 향한 환상으로 나아간다. 자신의 반쪽을 찾아 합체함으로써 완성을 이루고픈 욕망이다. 그렇게 인간은 소외를 이겨내기 위해 고려로 삶의 빈 절반의 공간을 채우고자 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바로 지홍의 혜정을 향한 존경심이다.
박신혜는, 그녀가 드라마 속에서 맡는 역할은 바로 완성의 오작교다. ‘별에서 온 그대’의 전지현처럼 도도하거나 신비스럽지 않으며, ‘과속스캔들’의 박보영처럼 마냥 귀엽기만 한 게 아니라, 귀여우면서 여성스럽고 아름답지만 비현실적이지 않은 외모와 캐릭터는 드라마나 영화가 대중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현실적인 ‘Dreams come true’의 욕망을 대리만족하게 만들어준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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