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생뎐’ 속에서 단아함의 절정을 보여줬던 임수향을 기억하는가. 아니, 이제는 발랄하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여우로 주말의 활력소와 같은 역할을 한 ‘진주’로 기억하는 이들이 더 많을 터. 어느 덧 데뷔 8년차를 맞았지만, 임수향의 변신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임수향은 최근 종영한 KBS 2TV ‘아이가 다섯’에서 대학 졸업반의 철부지 아가씨 진주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바 있다. 데뷔 이래 줄곧 사연 많고 진지한 역할들을 연기했던 임수향이기에 이번 캐릭터는 다소 낯설었던 것도 사실. 하지만 그 낯섦은 나쁜 의미가 아닌 긍정적인 의미의 낯섦이었다.
”이런 밝은 캐릭터 하니까 평소 생활에서도 오히려 조금 더 에너지를 더 많이 받는 것 같다. 평소 성격은 진주랑 비슷하지만, 그것보다는 조금 차분하다. 사실 전작들 때문에 많은 분들이 나를 차갑고 어렵다고 생각하시는데 전혀 아니다. 물론 어두운 캐릭터도 연기자로서는 연기하기 재밌는 캐릭터다. 고민하기도 좋고 표현하기도 더 극적이고.“
‘아이가 다섯’ 속 진주가 더욱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은 바로 태민(안우연 분)과의 알콩달콩한 로맨스. 극중 말미에는 양가 부모님의 반대로 잠시 이별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곧 다시 결혼을 약속하며 해피엔딩을 맞았다. 특히 커플 연기도 리얼하게 해낸 두 배우의 활약이 컸는데, 덕분에 ‘혹시?’하는 의심어린 눈초리가 향할 정도.
“실제로 잘 될 가능성? 없다. 우리는 이미 친구다. 만약 발전 가능성이 있었으면 진작 만나지 않았을까(웃음). 이상형은 예전에는 섹시한 남자가 좋다고 했는데 지금은 한 살씩 나이를 먹다 보니까 다정한 사람이 좋더라. 잘 챙겨주고 섬세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더불어 임수향이 ‘아이가 다섯’에 캐스팅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당시, 많은 이들의 관심이 향한 것은 성훈과의 재회. 두 사람은 임수향의 드라마 데뷔작이자 최고의 화제를 자랑한 작품 ‘신기생뎐’에서 애틋한 로맨스를 선보인 바 있다.
“성훈 오빠는 ‘신기생뎐’ 끝나고 거의 처음 보다시피 했다. 그동안은 서로 바빠서 볼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보니까 처음엔 조금 어색하더라. 그래도 호흡 맞추고 그러다 보니까 다시 예전처럼 친해졌다. 성훈 오빠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남다른 인연인 것 같다.”
‘아이가 다섯’은 막장 없는 주말극이라는 점과 ‘연애의 발견’을 집필했던 정현정 작가 특유의 달달한 로맨스로, 평균 시청률 29.1%, 마지막회 시청률 32.8%(닐슨코리아)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다. 연기 변신에도 성공했을 뿐 아니라, 이처럼 좋은 성적을 거둔 만큼 ‘아이가 다섯’은 임수향에게도 의미가 남다른 작품일 터.
“‘아이가 다섯’은 뭔가의 전환점이 된 것 같다. 계속 무거운 역할을 해서 이렇게 밝은 역할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임수향은 그런 거 못할거야’라고 했던 사람들도 ‘얘가 이런 것도 할 수 있네’, ‘생각보다 어려보이고 귀엽네?’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싶었다. 배우로서 가능성과 스펙트럼을 조금 더 넓혀준 작품이 아닐까 싶다.”
임수향은 종영 이후 예능을 통해 좀 더 편안한 모습으로 팬들과 만나고 싶다고 밝혔다. 앞서 SBS ‘주먹쥐고 소림사’를 통해 다소 차가워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엉뚱한 성격으로 반전 매력을 발산했던 그이기에 이번에는 어떤 예능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증이 향했다.
“‘런닝맨’에 한 번 더 나가고 싶다. 재밌기도 했고 워낙 승부욕이 있어서 게임하는 걸 좋아한다. 사실 스튜디오 녹화가 아직 조금 부담스러운 것도 있다. 앉아서 ‘얘기 하시오’, ‘웃기시오’ 하는 건 너무 떨린다. 오히려 게임으로 접근하는 예능들은 조금 더 편하다. 내가 몸을 쓰면 뜻하지 않게 웃겨서 예능이랑 좀 맞는 것 같다.”
이제 스물일곱, 한창 꽃다운 나이인 만큼 연애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었다. ‘아이가 다섯’ 속 진주처럼 여우같은 도도함을 지녔을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실제로는 꼬시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만남을 선호하는 편이라고.
“연애할 때 여우는 못 된다. 대신 속으로 계속 ‘날 좋아해라’라고 생각한다. 내가 먼저 ‘우리 사귀자’ 라고 하지는 않지만 관심의 표현도 하는 편이다. 짝사랑을 해서 만나는 것보다는 같이 눈이 맞아서 스파크가 탁 튀는 그런 게 좋다. 동종업계 사람도 괜찮았는데, 요즘은 일반분이 더 괜찮더라. 다른 직업군에 있으신 분들도 궁금하기도 하고, 이제 동종업계 분들은 거의 다 알지 않냐. 한 다리 건너면 다 알 수 있는 분들이니까 오히려 더 조심스럽다.”
‘아이가 다섯’ 속 철없는 아가씨 진주와는 다르게 임수향은 생각보다 진지하고 깊은 내면을 드러내기도 했다. 배우로서 자신에 대해 누구보다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뿐 아니라,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가라는 진지한 고민까지 털어놓는 그의 모습에서 성숙함이 느껴졌다.
“요즘 최대 고민은 ‘어떤 게 행복하게 사는 것인가’다. 그리고 항상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 같다. 내가 잘 살고 있는지. 성공 여부를 떠나서 내가 연기를 잘 하고 있는지, 사람들한테 잘 대하고 있는지 이런 것들을 계속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을 한다. 그래서 오히려 힘들기도 한다. 원래 주변 시선에 신경 많이 쓰고 상처도 잘 받고 칭찬해주면 또 금방 풀리는 편이다.”
배우라면 늘 이름 앞에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특정한 수식어가 붙기 마련. 그렇다면 늘 대중뿐만 아니라 스스로 자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보려 한다는 임수향이 듣고 싶은 평가는 무엇일까.
“동안 배우? 장난이고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말이 듣고 싶다. 그게 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궁극적인 목표고 이유인 것 같다. 결국 연기자가 연기를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게 제일 좋은 거니까 언젠가 그렇게 불러주셨으면 좋겠다. 언제쯤 연기를 잘 할 수 있을까. 해도 해도 어려운 것 같다.” / jsy901104@osen.co.kr
[사진] 손용호 기자 spjj@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