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화영은 더 이상 걸그룹 멤버가 아닌 배우다. 그런데 누구든 인생에서 한 번 쯤은 겪을 법한 이 진로 변경을 인정받기 위해, 그는 해야 할 것이 참 많았다. 먼저 완벽한 이미지 변신이 필요했고, 다음은 잡음이 따르지 않을 만한 연기력이 요구됐다. 다행히도 류화영의 고난은 오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청춘시대’를 통해 비로소 배우의 삶, 그 출발점에 섰으니 말이다.
류화영은 지난달 22일 첫 방송된 JTBC ‘청춘시대’에서 네 명의 하우스 메이트들과 더불어 사는 강이나로 분했다. 독보적으로 훤칠한 키와 뭇 남성들을 홀리는 몸매, 미모까지 갖춘 그는 이러한 자신의 장점들을 쉽게 사는 데 이용한다. 강이나는 외모 만으로 6000원이 조금 넘는 시급에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됐고, 몸으로 비싼 식사와 옷가지를 얻어낼 수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여대생이지만, 업계에서는 알아주는 프로다.
하우스 메이트 정예은(한승연 분)으로부터 창녀 소리를 듣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강단의 소유자이지만, 채 지우지 못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극 중 윤진명(한예리 분)이 극단적 현실을 뚜렷하게 묘사하는 인물이라면, 강이나는 존재하는 현실이지만 실체가 희미하다. 있어도 없는 듯 살아야 돌을 맞지 않는 캐릭터다.
그래서 강이나는 다른 하우스 메이트들보다 공감을 사기 어려운 인물이기도 하다. 류화영이 ‘청춘시대’를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고 배우로 거듭날 수 있게 된다면, 바로 강이나 캐릭터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었기 때문일 터다.
강이나로 변신한 류화영은 코믹함부터 진지함, 걸크러시 매력까지 다양한 얼굴로 입체적 인물을 완성했다. 그와 다른 하우스 메이트와의 관계성은 ‘청춘시대’ 이야기의 주요 골자가 됐고, 류화영은 관계의 각도마다 눈빛을 달리하며 이를 소화해냈다. 이를테면 윤진명에게는 질투를, 정예은에게는 연민을 보내는 것처럼.
감정을 진득하게 늘여야 하는 부분과 깔끔하게 끊어야 하는 부분도 영리하게 표현했다. 돌연 자신 곁에 나타나 이야기를 들어 주던 오종규(최덕문 분)를 향한 강이나의 심경 변화는 절절했고, 질척이는 고객(?)들을 바닥에 붙은 껌 떼듯 떼 내는 장면에서는 통쾌함까지 느껴졌다. 절친의 애인 고두영(지일주 분)을 향해 날린 시원한 욕설은 압권이었다.
지난 방송에서 물 속에 가라앉아있던 과거의 자신과 작별하는 대목은 류화영이 ‘청춘시대’에서 보여 준 최고의 연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수중 류화영은 과거와 현재의 강이나를 완벽히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원체 걸그룹 이미지가 굳어져 있던 탓에 류화영을 신인 배우로 알고 있는 시청자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는 방송 후 “강이나 역 배우가 류화영을 닮았다”는 의견도 나올 정도다. 이쯤이면 류화영을 따라다니던 ‘전 걸그룹 멤버’라는 꼬리표, ‘청춘시대’를 끝으로 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류화영의 ‘진짜 배우’ 데뷔를 축하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청춘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