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유진모의 취중한담]DC스튜디오의 마블스튜디오에 대항하는 회심의 역작 ‘수어사이드 스쿼트’는 한국에선 안 통했다. 지난주 말 미국에선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지만 국내에선 7위로 떨어지며 누적 관객 수 182만8472명을 동원했다. 최종스코어 200만 명대 초반 턱걸이로 막을 내릴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이는 2년 전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131만1232명에 비해 앞선 수치지만 단순한 숫자놀음만으로 관객들의 반응을 절대평가할 순 없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경우 조커의 분량이 적었다는 불만이 제기되는 가운데 할리 퀸 혹은 그녀와 조커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만들어달라는 성원이 빗발치는 등 불만일색인 것과 달리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이미 2편이 제작됐고, 3편 소식이 전해오는 등 호평과 기대일색인 때문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잡범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정의를 구현한 이색적인 히어로물이라면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엄청난 흉악범으로 더 엄청난 악을 처치한다는 이이제이의 동양적 사상을 본격적으로 반영한 빌런 히어로물이다. 파격적이고 확실한 정체성적 측면에선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앞서지만 결과적으로 시나리오와 연출의 기본이 아쉬웠다.
요즘 관객들은 웬만한 제작자나 감독 못지않게 영화적 상식이 풍부하고 눈높이가 높다. 게다가 제3자이다보니 분석력 면에서 밖에서 숲을 보는 위치를 지킨다. 숲속에 들어가 나무를 가꾸거나 벌목을 하진 못해도 밖에서 전체의 상황을 넓은 시각에서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조커의 분량이 지나치게 적다거나 그나마 할리 퀸이 제일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강하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비교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유명 배우라봐야 조 샐다나(가모라 역)지만 솔직히 블록버스터의 주연급은 아니고, 빈 디젤이 참여했지만 얼굴은 감춘 채 나무인간 그루트의 목소리 연기만 했으며 대사는 2시간 내내 ‘I am Groot’였다. 마지막에 바뀐 대사가 ‘We are Groot’다.
주인공인 ‘스타로드’ 피터 퀼 역의 크리스 프랫은 국내 다수 관객에게 매우 생소한 얼굴인데다 꽃미남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마고 로비가 처음부터 끝까지 악녀와 색녀의 매력을 동시에 발산하고, 슈퍼스타 윌 스미스가 실질적인 주인공을 맡았으며, 자레드 레토가 양념 이상의 역할을 하는 가운데 벤 애플렉이 배트맨으로 우정출연했고, 10명 가까운 주조연이 맹활약을 펼친 ‘수어사이드 스쿼드’에 비해 매우 열악한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조롭게 속편이 제작되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1988년 소년 피터는 어머니의 임종에 놀라 밖으로 뛰쳐나갔다 우주선에 납치된 후 욘두가 이끄는 우주 도둑무리에서 성장해 20년이 지난 지금 독립해 자칭 스타로드라는 이름의 좀도둑으로 살아간다. 어느 날 그는 욘두의 의뢰로 오브라는 신비한 구체를 훔치게 되는데 뜻밖에 로난이란 무시무시한 존재의 부하들의 공격을 받고 간신히 탈출한다.
잔다르족과 크리족은 지난 1000년간 전쟁을 벌여왔으나 평화협정을 맺고 휴전한 상태. 그러나 크리족의 뛰어난 대형전함 네크로크래프트를 이끄는 리더 로난은 제멋대로 이 협정을 무시한 채 잔다르족을 전멸시킨 뒤 전 우주마저 정복하겠다는 무시무시한 야욕을 펼치고 있는 광폭한 초능력자다. 그는 전 우주를 지배하는 가장 위대한 신적인 존재 타노스의 명령을 받고 오브를 손에 쥐려한다.
오브를 손에 쥔 피터는 욘두를 배신하고 잔다르의 수도 노바로 가서 중간거래상 브로커를 만난다. 그로부터 거액을 약속받았던 것. 그러나 로난이 오브를 노린다는 얘길 들은 브로커는 사색이 돼 약속을 깨고 거래를 못하겠다며 황급히 숨는다.
부하로부터 오브 탈취에 실패했다는 보고를 받은 로난은 심복으로 거느리고 있는 타노스의 양녀 가모라를 급파한다. 낙담한 피터는 노바 시내를 헤매다가 현상금 사냥꾼인 로켓과 그의 보디가드 그루트의 눈에 띈다. 그에겐 욘두가 내건 현상금이 있었던 것. 로켓은 원래 인간과 같은 고등생명체였지만 누군가의 실험에 의해 끊임없이 변형돼 현재 너구리의 모습을 한 일종의 뮤턴트고, 그루트는 나무에서 변형된, 조금 머리가 모자란 슈퍼생명체다.
각자 다른 목적으로 피터를 제압하기 위해 로켓과 가모라가 개입된 싸움으로 도시는 난장판이 되고, 노바 캅스가 출동해 그들을 우주감옥에 가둔다. 어릴 때 타노스에 의해 부모를 잃고 자의에 상관없이 그의 수양딸로 자란 가모라는 오브를 손에 쥐어 힘을 얻음으로써 타노스에게 복수를 하려고 로난에게 복종하는 척했던 것.
이들은 감옥에서 로난에게 아내와 딸을 잃고 범죄자가 된 괴력의 사나이 드랙스를 만난 뒤 의기투합해 로난과 싸울 것을 약속하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결성해 탈옥한다.
가이언즈는 비교적 손쉽게 로난과 마주치지만 복수심에 눈이 먼 드랙이 팀워크를 무시하고 혼자 로난에게 달려들었다가 자신은 물론 팀원 전체를 위기에 빠뜨린다. 천신만고 끝에 다시 모인 팀원은 치밀하게 작전을 짜, 노바 캅스를 설득해 전쟁에 끌어들이곤 네크로크래프트에 승선해 로난과 마주친다. 이미 오브를 손에 쥔 초능력을 소유한 로난을 이기는 일은 쉽지 않아 다시 한 번 죽을 고비에 처한다.
스토리는 비교적 어렵지 않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그리스 혹은 유럽의 고대신화와 더불어 종교까지 담은 꽤 무겁고 진지한 뼈대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요소요소에 미국식 유머를 심어놓아 완성도와 재미를 동시에 만끽할 수 있다.
그루트는 그 어떤 질문에도 ‘나는 그루트’라고 말한다. 문장은 똑같지만 사실 그 뜻은 그때그때 다르다. 오직 로켓만이 제대로 알아듣는다. 네크로크래프트에 승선한 팀원들이 오브의 파워를 작동한 로난의 공격에 의해 함선과 함께 추락하는 위기에 처하자 그루트가 팀원들을 감싸 안고 자신의 몸에서 나뭇가지들을 뽑아내 두터운 방어벽을 형성한다. 내부엔 반딧불이 같은 작은 불꽃 무리들이 난무한다.
이 작은 불꽃 무리는 네크로에 간신히 승선해 로난을 찾을 때 어둠 속에서도 큰 도움이 된 바 있다. 이 돌발행동에 로켓이 “왜 그래? 그럼 너 죽잖아?”라고 울먹이자 그루트는 처음으로 다른 말을 하는데 그게 바로 “우리는 그루트”다.
이건 이 영화의 주제다. 우정 화합 희생 배려 등으로 ‘우리는 하나’라는 것이다. Groote는 공동생활을 하는 형제수도회를 창설한 네덜란드 출신의 헤이르트 흐로테인 한편 Grut는 영어와 네덜란드어로 쓸모없는 것을 의미한다.
그루트가 최첨단의 도시 노바에서 어리바리한 태도를 보이며 거리의 분수를 마시자 로켓은 “등신아, 마시지 말란 말야”라고 핀잔을 준다. 팀이 결성됐을 때 가장 쓸모없어 보였던 그루트가 팀을 구하고 자신을 희생했다. 전부 범죄자 출신이고 사연이 저마다 각각이어서 물과 기름 같았던, 그래서 로난에게 당했던 이들이 화합하게 된 시기는 로난에게 패해 물속에 가라앉아 익사당할 뻔했던 드랙스를 그루트가 구해준 뒤 로켓이 드랙스를 비난한 때다. 드랙스는 “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을 감추느라 극도의 분노를 표현했다”며 처음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빈다. 외모는 제일 거칠고 삼손 같지만 사실은 가족을 잃은 상처에 아파하는 여린 가장에 불과하다는 인간미를 드러낸 것.
잠깐 등장했지만 타노스는 우주 최고의 전지전능자인데 그는 바로 그리스신화의 크로노스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보인다. 원작에서 타노스는 토성의 위성 타이탄에서 태어난다. 크로노스는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자식인 티탄신족 가운데 최연소의 신으로 제우스의 아버지다. 우라노스가 낳는 족족 자식을 잡아먹자 가이아는 꾀를 내 크로노스를 살린다. 성장한 크로노스는 우라노스의 성기를 잘라 이 비극을 끝내지만 우라노스의 저주를 받아 자신도 자식을 낳자마자 잡아먹다가 결국 똑같이 위기에서 탈출한 제우스에 의해 지하세계 타르타로스에 갇히고 만다. 가모라는 가이아다.
노바에 ‘강림’한 로난은 “너희들의 하찮은 신을 버려라. 구원이 임박했다”고 외친다. 그는 오브를 손에 쥐자 타노스를 무시하며 그를 제거하러 가겠다고 도발한다. 그는 이교도의 교주 혹은 이단집단의 총수다.
로켓은 각종 생체실험으로 신이 만든 인류 혹은 자연을 파괴하고 변형시켜가는 오만한 인간에 대한 경고고, 그루트는 그에 반한 인류의 마지막 희망인 자연보호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피터는 그리스신화의 헤라클레스다. 초반에 거론조차 되지 않았던 그의 아버지는 말미에 ‘나쁜 우주인’으로 묘사된다. 모르긴 몰라도 욘두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존재라면 타노스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근접한 능력과 권력의 소유자일 것이다. 즉 또 다른 신이다. 신과 인간의 혼혈인 피터는 우주의 헤라클레스인 것이다. 그래서 자칭 스타로드다.
인트로에서 죽어가는 엄마의 손을 잡아달라는 유언을 외면하고 밖으로 뛰쳐나갔던 피터는 클라이맥스에 로난으로부터 오브를 빼앗은 뒤 그 엄청난 힘에 의해 우주의 먼지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그때 그를 구해준 것은 자신의 목숨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손을 잡아준 팀원들의 희생정신이었다. 그건 동료를 위한 희생이 곧 구원이란 종교적 가르침이다.
그는 먼저 이 희생을 몸소 실천한 바 있다. 로난과의 첫 전투에서 가모라의 우주선이 피폭당해 그녀가 우주공간에서 죽어가자 피터는 자신의 특수헬멧을 벗어 호흡을 도우며 자신은 죽어가다가 욘두에게 연락해 자신의 위치를 가르쳐줘 체포됨으로써 기사회생한다. 이 도박 역시 희생이다.
영화는 참다운 정의가 뭣인지 항상 고민하는 DC에 가르침을 주는 도발도 서슴지 않는다. 팀원들은 로난으로부터 120억 우주 인구를 구한 공로로 잔다르 정부로부터 과거의 잘못을 사면받고 상금과 부상까지 두둑히 챙긴다. 드랙스는 “나쁜 짓을 한 놈이 있어 그 놈 허리를 부러뜨리고 싶을 때는 그래도 되냐”고 경찰 책임자에게 묻는다. 그러자 경찰이 그것도 불법이라고 말하며 걱정하자 피터는 “내가 지켜보겠다”고 안심시킨다.
영화 속 미국식 유머로 케빈 베이컨을 소재로 한 게 압권이다. 피터는 가모라와 친해지는 과정에서 “우리 행성엔 당신 같은 사람들, 전설이 있어. 이름 하여 ‘풋 루즈’. 거기에 등장하는 위대한 영웅이 케빈 베이컨이라는 남자인데 엉덩이에 막대기를 꽂은 사람들한테 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임을 일깨워줘”라고 말하자 가모라는 “누가 엉덩이에 작대기를 꽂아?”라고 어리둥절해한다. ‘풋 루즈’는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연기파 케빈 베이컨이 주연을 맡은 1984년 출세작이다.
그런 영화와 음악적 유머는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전반에 걸쳐 퍼져있다. 1970~80년대 히트한 백인의 록음악과 흑인의 소울음악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것은 바로 전 우주의 화합, 즉 인종차별을 배척한다는 심오한 메시지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수어사이드 스쿼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