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세월이 야속하다. 우리를 울리고 웃겼던 희극인 구봉서가 사망했다. 향년 90세. 몸이 성치 않은데도 대중 앞에 설 때마다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자신이 출연했던 최고의 코미디 프로그램 이름이자 따뜻한 위로와 조언을 했던 진정한 희극인이었다.
구봉서는 1926년생으로 평양 출신이다. 1945년 대동상고를 졸업한 후 19세 때부터 태평양 가극단에서 악사 생활을 했다. 대역 배우로 연기를 시작한 후 라디오, 영화, TV 프로그램을 섭렵했다. 1958년 영화 ‘오부자’에서 막둥이 역할을 맡으며 ‘막둥이’라고 불렸다.
'굳세어라 금순아', '돌아오지 않는 해병', '남편은 바람둥이‘, '대머리 총각', '남자는 괴로워', '남자 가정부' 등 400여편의 영화를 찍은 영화 배우이기도 했다.
1969년 MBC 개국 작품인 ‘웃으면 복이 와요’를 이끌면서 코미디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당시에는 코미디 상황극을 만드는 작가가 없던 시절. 구봉서는 손수 대본을 쓰고 연기도 하는 ‘만능 엔터테이너’였다. ‘비실이’로 불렸던 배삼룡, ‘살살이’ 서영춘, ‘후라이보이’ 곽규석 등과 호흡을 맞추며 그 시대의 힘겨운 서민들을 위로하고 웃겼다.
풍자와 해학이 담긴 구봉서의 코미디는 보릿고개에 힘겨웠던 1960년대와 1970년대 서민들의 위안의 안식처였다. 먹고 사는 게 참 쉽지 않았던 그 시절, 구봉서의 코미디를 보며 서민들은 하루의 고단함을 잊었다.
2013년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은 물론이고 방송국과 정부에서 안기는 숱한 상을 받을 정도로 한국 코미디계의 거목이자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문화훈장만 세 번이나 받았다. 후배 코미디언들은 구봉서의 코미디를 따라하며 존경심을 표했다. 구봉서는 평소 ‘책벌레’라고 불릴 정도로 다독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의 코미디가 깊이가 있고 웃음과 감동, 그리고 해학이 담겨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노환으로 몸이 성치 않을 때도 대중 앞에 설 때마다 “슬픔이 담긴 웃음을 만들고 싶다. 웃으면 복이 와요”를 말하고 다녔던 구봉서였다. 웃음과 슬픔의 본질이 같다는 게 그의 철학이었다.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대중은 구봉서라는 이름을 여원히 기억할 터다.
한편 구봉서의 장례식장은 서울 성모병원 31호실에 마련돼 있다. 발인은 오는 29일 오전 6시이며, 장지는 모란공원이다. / jmpyo@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