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계의 거목인 故(고) 구봉서는 팍팍한 세상살이를 잊게 해준, 그리고 힘겨운 보릿고개를 웃게 해준 서민들의 희망 전도사였다. 풍자와 해학, 그리고 인생사가 담긴 코미디 무대로 대중에게 위로와 재미를 안겼다. 웃음 속에 슬픔이 있어야 하며, 웃음과 슬픔은 밑바탕이 같다는 그의 코미디 철학은 단순히 웃음을 안기는 일을 넘어 대중에게 희망과 위안을 안기고자 했던 그의 깊은 뜻이 담겨 있어 감동적이다.
고인은 지난 27일 오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1926년생으로 9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1945년 대동상고를 나온 후 19세 때부터 태평양 가극단에서 악사 생활을 했다. 며칠만 대역 배우를 하려다가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라디오, 영화, TV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는 생전 ‘막둥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1958년 영화 ‘오부자’에서 맡은 역할이 강렬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 그는 400여편의 영화에 출연한 영화배우이기도 했다.
1969년 MBC 개국 작품인 ‘웃으며 복이 와요’에서 희극인 겸 작가로 활동했다. 그때 그 시절 대본을 써주는 희극 작가가 없었기 때문. 손수 대본을 쓸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평소 책을 많이 있는 다독을 즐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봉서의 웃음 철학은 깊이가 있었다. 표피적인 웃음이 아닌 인생사를 꿰뚫는 통찰력이 담겨 있었다. 웃음과 슬픔의 맥락이 같아야 한다는 그의 생전 철학은 대중을 웃기고 울리기 위해 노력하는 코미디언의 소명 의식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구봉서는 평소 “웃음이 깔려 있는데 거기에 슬픔이 나와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해왔다. 자극적인 웃음이 아니라 공감하고 위로하는 이야기를 만드는 희극인이었다. 1960~1970년대 안방극장을 감쌌던 고인, 그가 있어 서민들은 하루의 고된 일상을 잊고 힘겨운 보릿고개를 견뎠다.
고인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인물이었다. 한국 코미디계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코미디의 전설이다. 엄용수 코미디협회장은 MBC ‘뉴스데스크’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코미디 발전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시고 평소 후배 사랑이 각별하셨던 구봉서 선생님이 서거했다”라고 안타까워 했다.
제 4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명예집행위원장 전유성은 “우리가 힘들고 어렵고 못 살고 추웠던 시절에 서민들이 웃을 수 있었던 건 코미디 덕분이었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어 그는 “대 선배님들이 한 분 한 분 가실 때 마다 굉장히 큰 기둥을 잃은 것 같아서 정말 마음이 굉장히 힘들다. 마침 후배들이 모여서 축제를 하는 기간이어서 잠시 구선생님을 위해 모였다”라며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코미디언들의 축제인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은 개막 2일째에 구봉서라는 코미디계의 거목 별세 소식이 비통한 가운데 웃음을 안기는 소명을 다하고 있다. 이들은 무대에서 애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무대가 끝난 코미디언들은 서울로 올라와 조문을 할 예정이다.
구봉서의 장례식장은 서울 성모병원 31호실에 마련돼 있다. 발인은 오는 29일 오전 6시이며, 장지는 모란공원이다. / jmpyo@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