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끝자락 부산은 세상 가장 웃기고도 가장 슬펐다. 국내외 예능인들이 모두 모인 제4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이하 부코페)이 그 시작을 알리자마자 원로 코미디언 구봉서(90)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것. 코미디언들은 더욱 결연한 의지를 다지며 관객들에게 재미를 선사하기 위해 무대에 올랐다. 한평생 코미디를 위해 살다간 고(故) 구봉서 선생의 생전 의지처럼.
27일 이른 오전, 구봉서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바로 하루 전인 26일 부산바다는 화려하게 막을 올린 부코페로 설렘이 가득했던 상황. 모두가 잠든 새벽 한국 코미디계의 큰 별이 졌고, 후배들은 아침부터 전해진 비보에 침통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슬픔에 잠겨 있을 수만은 없었다. 관객들과의 약속이 코미디언들을 기다리고 있어서다. 먼저 이날 오후 3시에는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에 위치한 소향씨어터 신한카드홀에서 열리는 코미디 드림콘서트가 막을 올렸다. 이 공연을 비롯해 내달 3일까지 공연이 부산 전역에서 펼쳐진다.
고인의 발인 일정은 오는 29일 오전 6시. 예정돼 있는 공연 일정 때문에 많은 후배들이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부산을 떠날 수 없는 후배들을 대표해 전유성 명예위원장이 오는 28일 조문할 예정이다. 비통한 심경은 모든 후배들의 공통된 마음이지만, 이를 내색할 수 없는 것은 희극인으로서의 숙명이라 더욱 애달프게만 느껴졌다.
무대 뒤에서는 고인을 추모하는 의식이 치러졌다. 코미디언들은 페스티벌 일정 내내 전 공연장에서 무대에 오르기 직전 추모 의식을 가질 예정이다. 관객들에게는 비공개로 진행된다. 이는 함께 묵념하고 곧바로 코미디를 즐기기에 관객들에게 혹여 불편함을 줄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무대 위에서는 달랐다. 생전 구봉서 선생이 우리 국민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 위해 한평생을 바쳤던 것처럼 부코페에 참여한 모든 후배들은 그의 정신을 이어받아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로 무대에 오른 것. 먼저 코미디 드림콘서트는 ‘개그콘서트’, ‘웃찾사’, ‘코미디 빅리그’ 등 방송사를 대표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의 코너를 모두 모아놓은 공연. 김영철, 오나미, 유민상, 김민경 등이 참여한 가운데 그야말로 별들의 잔치로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이날 오후 5시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에 위치한 윤형빈 소극장에서는 코미디몬스터즈 공연이 진행됐다. 임우일, 송중근, 이승윤, 이상호, 이상민이 개그와 호러를 접목한 ‘호러 개그쇼’를 펼쳤다. 무더운 여름날에 걸맞은 웃음과 공포가 공존한 것은 물론 관객들과 가까이서 호흡한 생동감 넘치는 공연이었다.
공연마다 관객들은 큰 박수와 웃음소리로 화답했다. 어쩌면 후배들이 줄 수 있는 최고의 마지막 인사는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희극인의 인생, 공연장에 울려퍼진 관객의 웃음소리가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배웅은 없을 것이다.
한편 부코페는 다음달 3일까지 총 9일간 해운대 센텀시티와 경성대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 besodam@osen.co.kr
[사진] OSEN DB, 부코페 공식페이스북 영상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