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유진모의 취중한담]DC스튜디오가 마블스튜디오의 ‘어벤져스’ 시리즈에 대항해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 리그의 시작’ ‘수어사이드 스쿼드’ 등을 내놨지만 연달아 실패한 데 굴하지 않고 ‘저스티스 리그 다크’를 만든다고 미국 언론이 보도했다. 감독은 ‘본 아이덴티티’ ‘본 슈프리머시’ ‘본 얼티메이텀’ ‘미스터 & 미스터 스미스’ ‘점퍼’ 그리고 최근의 SF 수작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더그 라이먼이 결정됐다고 한다.
양사의 지금까지의 영웅물이 외계의 강력한 적과 다퉜다면 ‘저스티스 리그 다크’는 ‘오컬트 어벤져스’라고 보는 게 적당하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자살특공대가 대결하는 악의 축이 인챈트리스, 즉 여자 마법사로서 오컬트적 요소의 맛보기 도입이었다면 ‘저스티스 리그 다크’는 본격적으로 악마와 대결한다. 멤버는 존 콘스탄틴을 비롯해 자타나, 데드맨, 스왐프 씽 등이라고 한다.
이 소식에 국내외 많은 팬들은 콘스탄틴이란 인물에 주목하고 있다. 2005년 키애누 리브스가 타이틀롤을 맡은 ‘콘스탄틴’이 무척 호평을 얻으며 속편에 대한 기대감을 키운 지 11년만에 그가 팀을 짜서 다시 등장하기 때문이다. ‘콘스탄틴’은 이미 TV에서 시리즈로 다루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온라인에선 아직도 ‘콘스탄틴’의 마니아들이 리브스를 주인공으로 한 속편을 만들라고 아우성이다.
과연 ‘콘스탄틴’은 어떤 영화이고, 리브스는 얼마나 맹활약을 펼쳤을까?
리브스의 존재감은 현 시점에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톰 크루즈, 브래드 피트, 휴 잭맨 등과 동등하다고 볼 수 없겠지만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달라진다. 워쇼스키 자매(당시엔 형제 혹은 남매)는 ‘매트릭스’를 한꺼번에 찍은 뒤 1999년에 1편을, 2003년 봄과 겨울에 2, 3편을 각각 개봉한다. 1편 개봉 직후 이 영화는 숱한 화제와 패러디를 낳으며 워쇼스키의 위대함을 알리고, 액션스타 리브스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우리나라 극장 관객 수가 공식적으로 집계된 게 2003년부터라 1편의 흥행기록은 남아있지 않고 다만 2, 3편 관객 수 합계가 575만여 명이니 국내에서도 흥행에 크게 성공한 것은 맞다. ‘콘스탄틴’ 역시 184만5000 명을 동원했으니 만만치 않은 흥행성적이다.
‘매트릭스’는 한마디로 정의가 어려운 매우 심오한 종교와 철학과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매트릭스라는 컴퓨터가 만든 가상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기계에 의해 멸종될 위기에 처한 시온의 마지막 인류는 니오(NEO), 즉 ‘One’이라는 메시아를 기다리는 게 유일한 희망이다.
이 영화 제작 당시의 워쇼스키 형제는 장 보드리야르의 저서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을 마치 경전처럼 달고 살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사물의 실체를 파악할 수 없고 다만 그 이미지(시뮬라시옹)의 복사물(시뮬라크르)만을 보고 사물을 안다고 착각한다는 주제를 담고 있다. 이는 프로이센(독일) 철학자 칸트의 이원론과 중국 ‘장자’의 ‘제물론’의 호접몽론과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여기에 시온(예루살렘의 성지)이 자랑하는 전함이 느부갓네살(바빌론제국의 전성기를 구가한 2대왕으로 하늘정원을 만든 장본인. 이스라엘 민족의 바빌론 유수도 유명하다)이다. 구약성서와 메소포타미아 문명 역사, 그리고 동서양의 심오한 철학(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아니면 여기가 실상인지, 내가 허상이라 여기는 게 실상인지)을 탐구한다.
이에 비교하면 ‘콘스탄틴’은 비교적 간단(?)하다. 뮤직비디오를 연출하다 이 영화로 데뷔한 프랜시스 로렌스 감독은 가톨릭을 기본으로 스릴러 서스펜스 오컬트 등을 혼합한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매우 훌륭한 상업적 수완을 보였다.
인간의 모습을 한 혼혈천사와 혼혈악마가 사는 세상. 그들은 서로의 영역을 정한 평화협정을 통해 인간계에 침입하는 것을 견제해왔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혼혈악마가 그 조약을 깨고 인간계에 내려오는 일이 빈번해졌다. 어릴 때 자살해 지옥에 갔다가 되살아난 존 콘스탄틴(키아누 리브스)은 술과 담배에 절어 산다. 그는 자살한 죄로 천국에 갈 수 없음을 알기에 혼혈악마를 물리치는 퇴마사로 일하며 속죄의 길을 모색한다.
인간계의 평화를 위해 천사들이 감췄던 ‘운명의 창’이 세상에 나타난다. 그건 타락천사 루시퍼의 아들 마몬을 인간계에 내보내 악마의 세계로 만들려는 계략을 꾸미는 수태고지천사 가브리엘이 마몬의 봉인을 풀기 위해 찾아낸 것. 이렇게 운명의 창이 세상이 나옴으로써 혼혈악마들의 인간계 침략이 본격화된다.
콘스탄틴에게 여형사 안젤라(레이첼 와이즈)가 찾아온다. 쌍둥이 여동생 이자벨의 자살이유를 수사하며 본 CCTV 속에서 콘스탄틴을 부르는 이자벨의 목소리를 들은 것. 콘스탄틴은 안젤라 자매 역시 자신처럼 악마가 눈에 보이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을 알아낸다. 가브리엘이 마몬을 인간계에 내놓을 매개체로 안젤라를 선택한 것.
안젤라를 죽임으로써 마몬을 부활시키려는 가브리엘에 대항하다 콘스탄틴은 치명상을 입고 죽어가던 중 줄곧 자신의 영혼을 직접 지옥으로 데려가고자 했던 타락천사 루시퍼를 불러 희생을 택함으로써 이자벨을 천국에 보내고 안젤라를 살리며 자신도 천국에 가는 묘수를 꺼내든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승천하는 콘스탄틴은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워 루시퍼를 조롱하는데 갑자기 루시퍼가 그를 잡고 폐암덩어리를 꺼내 살려준다. ‘네 영혼은 내가 꼭 지옥으로 데려갈 것’이라며.
콘스탄틴은 어려서부터 악마를 보는 능력이 있었다. 그 트라우마로 자살을 해 지옥에 갔다가 2분 만에 부활했고, 괴로움을 잊기 위해 15살 때부터 하루에 30개비씩 담배를 피워 그렇잖아도 폐암선고를 받고 죽을 날이 얼마 남아있지 않았던 터.
퇴마사가 된 이유는 인류평화라든가 신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이미 지옥행이 예고된 자신을 구원해 천국에 가기 위해서였다. 그는 멘토인 파파 미드나잇과의 대화 중 “내가 보낸 악마가 절반인 지옥에 어떻게 가냐”고 ‘왓치맨’의 로어셰크나 ‘베테랑’의 변재욱이 수감된 상황을 말한다.
죽기 직전의 콘스탄틴이 루시퍼에게 “마지막으로 담배 한 대 피워도 되겠냐”고 묻자 루시퍼는 “물론, 난 담배회사 주주거든”이라고 답한다. 이 얼마나 훌륭한 비유고 풍자며 야유인가? 콘스탄틴의 조수 채스는 퇴마이론서를 마치 성서처럼 여기고 행동하지만 결국 그 때문에 사망한다. 평소 콘스탄틴은 “책에 있는 게 전부가 아니다”라고 가르쳤다. 그 책이 뭔지 눈치 빠른 관객은 알아챘다.
이 영화가 불편한 기독교인이 있을 수도 있다. 영화는 그냥 영화일 뿐.
콘스탄틴(Constatine)은 3세기 후반~4세기 4개로 갈라진 로마제국을 통일해 ‘대제’란 호칭을 받았던 콘스탄티누스의 영어식 이름이다. 재위 기간 중 가장 큰 업적은 밀라노 칙령을 통해 그동안 다신교였던 로마제국의 공식종교를 기독교로 통일한 것과 더불어 중심지를 로마에서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으로 옮긴 것이다. 이후 콘스탄티누스의 활약과 업적이 유럽과 미국의 종교 문화 정서에 많은 영향을 끼쳤음은 역사가 입증한다.
만약 콘스탄티누스가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종교 구도와 세계의 헤게모니는 어떻게 됐을까? 결국 ‘콘스탄틴’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느님의 절대적 지위에 대한 반항이나 믿음에 대한 의심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양심과 희생 그리고 이 사회와 체제와 국가의 올바른 규율에 근거한 균형이다. 영화 말미 루시퍼에 의해 평범한 인간이 된 가브리엘이 천국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콘스탄틴에게 총을 건네주며 쏘라고 하지만 콘스탄틴은 대신 주먹으로 한 때 때리며 “인간의 고통을 느껴 보라”고 말한다. 그건 자신의 허락 없이 엉뚱한 일을 저지른 가브리엘에 대한 하느님의 징계가 아닐까?
기독교는 자살을 중대범죄로 분류한다. 사람은 언젠간 죽는다. 살고자 아등바등하는 게 본능이라면 삶이 힘들어 죽음을 선택하는 것 역시 종교외적 인간적인 시각에서 보면 행복추구권으로 볼 수도 있다. 최소한 남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남의 죽음으로 이득을 봐가면서까지 살려는 사람들에 비할 땐 그게 정의다.
영화는 회개와 자기희생을 중심으로 세상의 모든 균형을 노래한다. 철학과 종교를 때론 주창하고 때론 비아냥거리는 플롯은 상당히 재미있고 볼 만한 블록버스터의 외형으로 포장돼있다. ‘매트릭스’로 이미 SF액션스타로서 확고하게 자리매김한 리브스의 액션과 유머는 특유의 매력과 함께 충분히 빛난다. ‘콘스탄틴’ 마니아들이 열광하는 이유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콘스탄틴'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