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초점]'구르미 그린 달빛’ 박보검 김유정 빼면 뭐가 남죠?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6.08.30 09: 31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새로 시작된 KBS2 ‘구르미 그린 달빛’은 도대체 국영방송사이자 기간방송사로서 번번이 ‘여러분의 소중한 수신료로 제작한다’는 ‘국민의 방송’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는 한국방송공사가 내보내야할 드라마인지 의문이 들게 만든다.
사극이 반드시 진지해야할 필요는 없다. 드라마라는 특성상 완벽한 고증이 불가능하기도 하다. 하지만 지상파의 국가기간방송이라면 최소한 사극에서 역사왜곡은 하지 말아야한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왕세자 이영(박보검)이다. 왕(김승수)은 구체적인 이름은 없지만 소개란에 홍경래의 난을 겪었다고 하니 당연히 순조다. 영은 순조와 순원왕후 김씨 사이에서 1809년 태어나 1812년(순조 12) 왕세자에 책봉됐으며 1819년 영돈녕부사 조만영의 딸 풍양 조 씨를 맞아들여 가례를 올렸다. 1827년 순조의 명령으로 대리청정을 시작했다.

인재등용과 공과구분에 공명정대하고 현명했으며 모든 백성을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한 정책을 펼쳤으나 4년 만에 죽고 말았다고 한다. 그의 아들 헌종이 즉위한 뒤 왕으로 추존해 익종이란 왕의 칭호를 얻었다.
이렇게 정식으로 왕위에 오르지 못했으며 짧게 살았으므로 비교적 대중의 관심과 거리가 있고, 그런 이유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다루지 않은 인물이다.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왕위계승서열 1위인 영과 대척점에 선 인물은 영의정 직을 맡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부원군 김헌(천호진)이다. 그는 영의 생모가 죽은 뒤 순조가 새로 들인 중전 김 씨(한수연)의 아버지이자 영의 죽마고우인 김윤성(진영)의 할아버지다.
익종과 헌종 시절 안동 김 씨와 풍양 조 씨의 양대 외척세력이 정권다툼을 벌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역사 속 안동 김 씨는 순조의 두 번째 왕비가 아닌, 바로 영의 생모의 친정이다. 역사에 통달한 마음 넓은 식자들은 ‘그러려니’ 하고 너그러이 지나갈 수 있겠지만 왜 국정교과서에 어른들이 들고일어나는지 잘 모르는 젊은이나 청소년들에겐 잘못된 역사를 가르칠 수 있는 심각한 오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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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박보검과 김유정은 10대 청소년 팬들이 제일 많은 청춘스타다. 당연히 이 드라마엔 중고생들이 많이 몰린다. 제목부터 ‘구르미’로 일부러 연음화한 것 역시 인터넷 신조어에 익숙한 청소년들을 겨냥한 의도가 다분하다.
KBS는 4년 전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차칸 남자’란 드라마를 새로 방송한다고 공지했다가 뭇매를 맞은 뒤 ‘착한’으로 정정하고 방송해 시청률과 명분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엔 시청자들이 관심이 없는 건지, 공사가 명예 따윈 의식치 않는 건지 양쪽 모두 무감각하다.
드라마의 축은 10대 후반으로 설정된 주인공들의 사랑얘기가 이룬다. 영은 세자라는 신분을 숨긴 채, 천민 출신으로 내관이 된 홍라온(김유정)은 여자라는 정체성을 숨긴 채 서로 우정인 듯 사랑인 듯 모를 아리송한 감정을 쌓아가고, 여기에 윤성이 끼어들며, 영을 짝사랑하던 예조판서 조만형의 딸 조하연(채수빈)까지 가세한다. 더불어 영과 윤성의 죽마고우였지만 지금은 영의 호위무사로 암약하는 김병연(곽동연)까지 엄청난 사연을 간직한 채 엮인다. 영의 여동생 명은공주(정혜성)의 풋사랑도 끼어든다.
아직 2회 방송이긴 하지만 각 시퀀스와 대사는 유치하기 이를 데 없다. 대놓고 하이틴통속연애소설을 써내려가도 이보단 진지할 듯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영 윤성 병연 등을 비롯해 내관들까지도 라온의 정체를 눈치도 못 채고 있다. 심지어 스킨십을 해도 모른다.
여기까진 메타픽션의 장치라고 너그럽게 봐도 무방할 듯하다. 하지만 그 다음엔 이게 ‘꽃보다 남자’인지, 국운이 스러져가는 조선의 후반기의 혼돈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인지 헷갈릴 정도로 참을 수 없는 가벼움만 넘쳐난다.
헌은 10년 전 관상가에게 뛰어노는 영과 윤성을 보여주고 “윤성이 왕이 될 상”이란 말을 듣는다. 짐짓 기쁘면서도 대역죄로 처벌될 것이 두려운 그는 관상가에게 “그런 말을 발설하면 목이 성치 못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영화 ‘관상’이다.
세자는 예측이 불가능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에 장난만 즐기는 철부지이지만 오히려 윤성은 진지하다. 거기까진 역시 드라마적 장치겠지만 헌의 세력과 다퉈야함에 따라 신변의 안전이 최우선인 영을 보호하는 병연 역시 매번 영과 농지거리 등의 유치한 장난만 칠 따름이다. ‘상속자들’은 재벌가를 배경으로 ‘하녀’ 신분의 차은상을 여주인공으로 내세워 하이틴로맨스임에도 꽤 탄탄한 완성도를 보였다. 굳이 이조 말미까지 가야했던 이유가 반드시 그려져야 전파낭비란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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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이 드라마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배경은 박보검과 김유정의 워낙 뛰어난 매력에 있다. 박보검은 영화 ‘차이나타운’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제 옷을 입은 듯하다. 그의 용모는 듬직하기보다는 아직은 귀엽다. 섹시하기보다는 아직은 달콤하다. 그래서 철부지 세자 역은 안성맞춤이다.
만 17살의 김유정은 벌써 여인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이번 남장 역할로 여성팬들의 마음마저 훔칠 기세다.
반면 진영과 곽동연은 신선하긴 하지만 설익은 연기가 이 픽션을 그저 픽션답게 보이게 만들 따름이다. 흡입력 몰입도 같은 단어를 언급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박보검과 김유정이 안타깝다.
KBS는 이승기 배수지 주연의 판타지 사극 MBC ‘구가의 서’를 핑계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구가의 서’는 역사적 사실과 전혀 상관없는 민간 구전설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판타지였다.
29일 SBS는 ‘닥터스’ 후속으로 이준기 이지은(아이유) 주연의 ‘달의 여인-보보경심 려’를 내보낸다. 이 역시 판타지 사극인데 시작 전부터 하이틴소설 냄새가 폴폴 풍긴다. 하긴 역사가 왜곡되고 정리도 안 되는 세상인데./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K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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