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팬들이야 배우 박보검의 다채로운 연기 스펙트럼에 대해 익히 알고 있을테지만, 대중적으로는 사랑 받으며 자란 막내 이미지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박보검은 ‘역전의 명수’였다. 이 같은 인상이 굳어질 참이면 항상 180도 다른 모습으로 매력을 뽐내왔다.
이를테면 tvN ‘응답하라 1988’ 속 최택으로 분한 박보검은 극 초반 여심은 물론 남심까지 자극하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뽐냈었다. 어눌한 말투, 삐뚤빼뚤 자른 앞머리에 잠에 들면 누가 와도 깨지 않는 그는 덜 자란 아이 같았다.
그러나 박보검의 최택이 문득 눈을 번뜩이며 일을 할 때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가장 어른스러웠고, 가장 박력이 넘쳤다. 일에 집중할 때 만큼, 사랑에 집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응답하라 1988’의 최택을 입체적으로 만들어 준 것은 눈빛의 완급조절부터 미세한 표정으로 감정의 진폭을 연기한 박보검의 역량이 컸다.
이는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중2병에 걸린 반항아인 줄만 알았던 왕세자는 단 4회 만에 애틋한 사랑꾼의 면모를 내비치기 시작했지만, 이 급작스런 변화가 어색하지 않은 것은 이영이라는 맞춤옷을 입은 박보검의 연기 덕이었다. “이영이다, 내 이름”이라는 한 마디의 대사로 이만큼의 설렘을 자아낼 수 있는 또래 배우는 드물다.
드라마 속 세상 모든 사내와 여인들에게 차갑지만 오로지 홍라온에게만 자상한 이영을 완성한 것은 박보검의 눈빛이었다. 이 같은 호연은 ‘구르미 그린 달빛’ 속 내 여자에게만 따뜻한 차가운 궁궐 남자를 자꾸만 더 보고 싶어지는 이유일 것이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구르미 그린 달빛’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