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이 필요없는 배우. 그의 자리를 위협하는 후배 '연기신'들이 많지만, 여전히 송강호는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최고의 배우'라고 첫 손가락에 꼽을만한 인물이다. 송강호가 출연한 작품이라면, 단지 이 '국민 배우'가 선택했다는 이유 만으로 '중요한 작품'이 되고 개봉 후에는 그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고는 한다. 물론 흥행 성적은 배우의 연기력이나 티켓 파워만으로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송강호가 출연한 영화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가 높은 것은 사실이다.
영화 '밀정'은 김지운 감독과의 네 번째 작품이라는 점 외에도 그가 출연한 세 번째 일제강점기 배경 시대극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송강호는 'YMCA 야구단',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이어 '밀정'으로 일제강점기 살아가는 인물을 연기했는데, '밀정'은 앞으 두 작품보다 더 정통적인 사고로 시대를 바라본다고 소개했다.
"(일제강점기는) 혼란과 혼돈의 시대가 아닐까요. 좌절의 시대이기도 하고요. 삶 자체가 어찌보면 길기도 짧기도 한 건데 개인의 삶에서 보면 인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긴 시간이죠. 그런 시대를 연기하고 작품을 찍는 것이 다른 작품에 비해서 마음 속에서부터 무게감이 들어요. 가볍지만은 않죠."
사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은 최근 충무로에서 새로운 트렌드로 여겨지기도 할 만큼 많은 작품이 나왔다. '암살'(최동훈 감독)부터 시작해 '대호'(박훈정 감독), '귀향'(조정래 감독), '동주'(이준익 감독) 등이 대표적이다. 같은 시대를 다룬 영화들이 많아 부담이 있을 수도 있었을 법하다. 특히 독립군들의 이야기를 다룬 '암살'이 불과 지난해 여름 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먼저 성공을 거두지 않았던가. 송강호는 "반복되는 이야기"임에도 "가볍지 않은 시대에 대한 경외감" 때문에 '밀정'을 택했다고 했다.
"배우로 수많은 소재의 이야기를 접합니다. 물론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가볍지 않은 시대에 대한 경외감이 있었어요. 부담감이 될 수 있지만 그 경외감 때문에 도전해 보고 싶었죠."
가볍지 않은 시대에 대한 '경외감'은 촬영을 하는 중에도 종종 이 베테랑 배우를 압도했다. 추운 겨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하며 발가락이 떨어져 나갈 듯 아팠던 그는, 그 공간에서 자신보다 세, 네 배 고통받으며 세상을 떠났을 조상들 때문에 울컥하고 말았다. 그런 송강호가 로케이션 장소인 상해에 도착해 가장 먼저 임시정부청사를 방문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상해에서 첫날, 배우들이 약속도 안 했는데 끼리끼리 상해 임시정부 청사를 다녀왔어요. 다녀오라는 강요도 없었는데 가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동시에 들었던 거죠. 임시정부청사는 일반 관광객도 상해에 오면 들리는 곳이에요. 저는 제작사 최재원 대표, 엄태구와 함께 갔습니다. 다 돌고 나서 방명록이 있는데 어깨너머로 태구가 '누가 되지 않는 최고의 작품을 만들겠습니다'라고 적는 걸 보는데 겁이 덜컥 나더라고요. 3층짜리 작은 건물인데, 이렇게 돌아 나오면 숙연해요. 이 좁은 공간에서 나라의 독립과 민족을 생각하신 분들이 있었구나, 짠하게 사진을 보면서 내려오는데, '누가 되지 않는 작품을 만들겠습니다'라고 적는데 뭔가 뿌듯한 느낌이 처음에 들어야 하는데, 겁이 덜컥 나는거죠. 내 스스로에게. 나중에는 뿌듯했지만. 내가 이렇게 거창한 얘기를 할 준비가 됐나 생각도 해보고. 그만큼 그 시대가 주는 무게감, 경외감이 있었습니다."
인터뷰②에 계속.... /eujenej@osen.co.kr
[사진] 워너브러더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