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한예리는 연변인도 됐다가 또 탁구선수였다가, 사냥감도 되며 변신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JTBC ‘청춘시대’를 통해 그 누구보다 현실적인 청춘의 모습을 대변하며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건넸다.
한예리는 최근 종영한 JTBC ‘청춘시대’에서 생계형 철의 여인 윤진명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냉혹한 세상의 외면에 눈물짓고 또 사랑에 위로받는 그의 모습은 시청자들로부터 공감을 얻으며 극을 이끌었고 마침내 ‘웰메이드’ 드라마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작품을 택한 가장 큰 이유는 작가님이다. 작가님의 드라마를 보면서 자랐던 세대이기도 하고 그 특유의 감성이 있지 않냐. 이태곤 감독님도 신뢰를 많이 주셨다. 첫 만남에 바로 작품에 대해서 얘기를 할 수 있는 그런 감독님이셔서 좋았고, 촬영을 하는 내내 진명이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들이나 더 추가하고 싶었던 것을 막지 않으시더라. 감독님과 많이 얘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사실 ‘청춘시대’가 처음부터 뜨거운 인기와 화제를 자랑한 작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막상 방송이 시작되자 매회 주옥같은 대사들과 공감을 부르는 이야기가 아름다운 영상미와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내며 지금과 같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거의 매회 모든 대사들이 가슴을 울렸다. 신기하다. 작가님의 모든 엔딩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 현실적인 엔딩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해서 삶이 그렇게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대사 꼬집을 수 없을 정도로 좋다. 돌이켜보면 사춘기 시절이나 미숙했을 때는 혜수의 처음과 비슷했었다. 연애를 처음 했었을 때는 예은이랑 비슷했던 것 같다. 또 뭔가 투정을 부리거나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분노하는 건 화영이라 비슷한 것도 있고 여자애들이랑 하루 종일같이 있을 때는 지원이 같기도 하고 어느 누가 나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다 포함된 것 같다.”
이러한 현실적인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현실적이었던 것이 바로 한예리가 연기한 윤진명 캐릭터였다. 무채색의 옷, 늘 쉴 새 없는 발걸음과 지친 표정으로 ‘벨 에포크’를 누비는 그의 모습은 당장 어느 대학교 혹은 지하철이나 길거리에 서있어도 전혀 어색함이 없을 정도였다.
“윤진명 역을 연기하는 게 힘들지는 않았는데, 진명이가 너무 몰리는 상황이었고 벼랑에서 떨어졌다. 그래서 ‘사람들이 보기 싫어하면 어떡하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이 너무 힘드니까 ‘이걸 더 이상 안 보고 싶어하지 않을까’라고 걱정했다. 그래도 진명이가 하메들이랑 있을 때는 크게 위로를 받았고 그 안에서 웃고 떠들고 잘 먹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명이도 이렇게 잠시 잊고 기댈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그 때문일까. 윤진명이 하우스 메이트 외에 기대고 위로받을 수 있었던 존재인 재완 역 윤박과의 로맨스 역시 열띤 응원을 받았다. ‘청춘시대’ 속 그 어떤 커플보다 짠내나고 진도(?)도 가장 느렸지만 극중 존재감이나 ‘케미’만큼은 과연 독보적이었다.
“윤박이라는 배우가 좋은 마스크를 가지고 있고 가능성이 많은 배우라는 걸 알았다. 둘의 시너지랑 케미가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조금 더 많은 분들이 응원하는 커플이 되지 않았냐. 그런 것도 좋고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으로 인해 진명이가 갑자기 행복해지는 것도 아닌 게 현실적이더라. 대부분 현실이 힘들면 연애에 기대게 되는데, 그쪽으로 도피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특히 이미 충무로의 대세로 떠오른 한예리와 달리, 연기력이 입증되지 않았던 신예 배우들의 활약도 ‘청춘시대’의 흥행을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걸그룹 출신의 류화영과 한승연, 그리고 아직 대중에게는 낯선 박혜수의 활약이 시청자들의 우려를 기우로 바꿀 수 있었다.
“아무래도 (박)혜수는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친구라서 본인이 어떻게 해야 하냐에 대한 걱정 반 두려움 반이었던 것 같다. 나중에는 잘 했고 다 자연스러웠다. 은재의 모습이나 지금의 혜수와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감독님이 캐스팅을 잘 하셨더라. 매일 ‘내가 잘 한 건 캐스팅 밖에 없다’고 하셨다. 그게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화영이랑 승연이도 둘 다 너무 잘했다. 사실 우리의 힘이 아니라 대사와 역할이 워낙 좋다 보니까 연기를 조금 못해도 그렇게 보일 수 있게끔 해주신 것 같다. 작가님한테 다 엎드려서 잘 해야 된다.”
마지막까지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현실적인 이야기로 유종의 미를 거둔 ‘청춘시대’에 벌써부터 시즌2를 외치는 시청자들 역시 적지 않다.
“작가님께서 아무 말씀 안 하시더라. 우리는 하게 된다면 될 수 있으면 이 멤버 그대로 갔으면 좋겠다고 얘기한다. 아무리 바빠도 하자고. 나한테도 애들이 ‘언니 학교 졸업하고 간 거 아니죠?’, ‘중국에 갔다 오는 거 맞죠?’라고 물어봐요. 근데 작가님이 뭔가를 다 완성하고 난 다음에 그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으신 분인지, 그걸 좋아하시는 분인지 모르겠다. 사실 ‘벨 에포크’라는 공간이 참 좋은 게 누가 빠지고 다시 들어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공간이라는 점이다.”
이번 ‘청춘시대’가 남긴 것은 비단 작품뿐만이 아니다. 또래 배우들인데다가 함께 한 시간 역시 많았던 덕에 실제 하우스 메이트처럼 끈끈해진 배우들의 우정 역시 빛났다.
“우리 드라마가 로맨스가 주가 되는 게 아니다 보니까 우리들끼리 오히려 서로 응원하고 소통을 해야 하는 상황들이 많았다. 앙상블이 중요한 드라마였기 때문에 더 많이 정이 든 것도 있다. 좋은 동생들이 생긴 것 같아서 기쁘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씩 보고 싶다. 연락도 했으면 좋겠고 잘 살고 있는지 알고 싶다. 다섯 명이 함께 하는 채팅방도 있다. 나는 말을 많이 안 하는데, 화영이가 말을 많이 한다. 류화영이 외로운 가 보다. 또 혜수랑 승연이는 이번에 세부로 스킨스쿠버하러 가기로 했다. 우리는 스케줄이 있어서 조만간 에버랜드를 같이 가기로 했다. 이용권은 화영이가 쐈다.”
이제 한예리는 ‘청춘’에서 ‘배우’로 돌아와 다시 ‘열일모드’에 돌입할 예정이다. 당장은 지난 25일 개봉한 ‘최악의 하루’의 홍보를 한창 진행 중이고, 차기작 역시 논의 중이다.
“다음을 생각하기보다 지금 좋은 걸 선택하면 되는 것 같다.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걸 해도 모자란 시간들이어서 내가 원하는 게 뭔가를 더 많이 생각하려고 한다. 그게 필모에 어떤 영향을 줄지, 배우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겠지만 다 나쁜 선택이었다고 생각 안 하고 그래야 후회도 적은 것 같다. 회사에서도 내 생각을 존중해준다. 뭘 안 하는 게 문제지 뭘 한다고 크게 문제가 아닌 것 같아서 크게 반대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 많이 겁내고 주저하면 그 다음이 힘들어지는 것 같다. 뭘 해도 크게 제 인생이 바뀌는 건 한방에 무너지거나 그런 일 없다.”
이제 우리의 청춘, 윤진명을 떠나보낼 시간이 왔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는 ‘청춘시대’ 마지막회의 부제처럼 한예리의 ‘열일’도 계속될 예정. 그 전에 마지막으로 한 달 동안 함께했던 이 세상의 모든 윤진명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윤진명은 중국 잘 갔다 와서 잘 살거다. 재완이랑도 계속 연애하고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힘든 시기를 잘 겪었고 나이가 있어서 만났기 때문에 둘은 잘 되지 않을까. 혜수는 헤어져도. 첫사랑은 다 그런 법이니까. 진명이에게 공감한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다. 무슨 위로의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언젠가는 꿈을 이뤘으면 좋겠다. 죽기 전에 하고 싶었던 무언가를 한 번이라도 시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당장이 아니어도 괜찮으니까.” / jsy901104@osen.co.kr
[사진] 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